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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채수영2 -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말라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가짐, 사랑으로 대하되 남을 대하듯 해야.
20.01.17 22:49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일간 채수영2> - 아이들을 기다려주지 말라
 
-인연
경남 남해, 상주해수욕장 한켠에 상주중학교가 있다. 공립형 대안학교다. 인구감소로 폐교위기에 있는 이 학교를 기숙학교로 만든 것이다. 여태전 선생이 교장으로 계신다. 산청간디학교를 시작으로 창원의 태봉고(최초의 공립형 대안학교) 초대 교장을 지내고 상주중학교로 오셨다.

대안학교의 베테랑이며 공교육에서 대안학교의 정신을 실현하기위해 동분서주 하시는 분이다. 대안학교 정신이란 게 뭘까. 오늘은 대안학교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니깐 짧게 정리하면, 시험공부 대신 인생공부, 진학보다는 꿈 만들기에 집중하는 학교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태전 선생님은 나의 절친 두 명과는 절친이었지만 나와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었다. 경북 상주의 카페 '버스정류장' 마담과는 교사생활을 함께 한 절친이었고, 강원도 양양에서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초등교사 성진씨의 존경하는 선배였지만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 2월, 내가 상주중학교 학부모교육에 강사로 가게 된 거다. 여태전 선생님은 나를 모르실 텐데, 도대체 누가 나를 추천한 거지... 나의 이력이라고는 샨티학교라는 평범한 대안학교에서 8년간 근무한 것뿐인데, 대외활동을 많이 한 것도 아니고 책을 낸 것도 아닌데...
 
알고 보니 그 학교 학부모 회장이 추천을 하셨댔다. 몇 년 전에 아들을 상주중학교에 입학시키고, 고등부 대안학교를 알아볼 요량으로 전국의 대안학교를 방문하다가 우리학교에 왔고 나와 상담을 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겨우 기억을 꺼집어 낼 수 있었다. 그래도 대안학교에는 많은 교사와 교장이 있고 대안교육연대에는 대안학교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아는 분들이 있는데, 왜 나를 불렀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만나서 물어봤다.

"무슨 마음으로 저를 부른 거예요?"
"선생님이 대안학교에 대해서 가장 솔직하게 말해주실 것 같아서요."

역시... 결국, 이유는 내가 막말을 하기 때문이었다. 대안학교의 장점이든 단점이든 까놓고 다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내가 강사로 오는 게 맞네요."

- 학부모 교육

여태전 선생님은 신입생 학부모 교육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신입생 학부모는 필수로, 재학생 학부모는 선택적으로 2박3일간의 학부모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 나도 공감한다. 대안학교에 보내는 부모들 중에는 믿고 맡기기보다 아이를 일시적으로 위탁하는 마음으로 보내는 분들이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까칠하고 방황하고 공부를 안 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니, 대안학교에서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마음만 안정되면 다시 일반학교로 돌려보낼 요량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지닌 부모들은 아이가 정신적으로 안정되는 것 같으면 바로 학교에 요구한다. '검정고시와 수능공부 하는 수업을 개설해주세요.', '우리 애 시험공부 좀 따로 봐줄 수 없을까요.', '일과 후에 학원에 다니게 해주세요.' 이런 요구들은 대안학교 교사들을 힘 빠지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학교에 집중하지 못 하게 한다.

당연히 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도 시험공부를 강요 할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지금 다니는 대안학교의 수업과 프로그램이 별로 의미 없다는 메시지를 받으면서 개인적으로 부모의 요구사항인 시험공부를 해보려 하지만 잘 안 된다. 결국 둘 다 집중하지 못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애매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대안학교의 커리큘럼에 따라 책 읽고, 글 쓰고, 토론하고, 자기발견과 꿈 만들기 과정에 충실하다보면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서 진학을 결심하기도 진로를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대안학교 프로그램에 집중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는 학교의 지향과 프로그램을 인정하고 맡겨야한다. 이것이 여태전 선생님이 부모교육을 꼼꼼히 준비하고 열정적으로 진행하는 까닭이다.
 
- 기다려 주지 마라.

대안학교에서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기다려 줄 것'을 요구한다. 아이가 뭔가 마음을 먹기 전에 부모가 계속해서 끼어들고 미리 결정해주지 말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한편으로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른 한켠으로 답답해한다. 아이들의 행동이 맘에 안 드는 것도 많고, 또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정보와 깨달음을 말해주고 싶은 데 기다리라고만 하니 참기 힘든 것이다.
 
강의 도중에 나는 부모들에게 참지 말라고 했다. 참다가는 화병만 생기고, 참다가 참다가 욱 하고 터지는 게 더 안 좋다고 했다. 한 학부모가 바로 반문을 했다. 우리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을 기다려 주라'고 하시던데요...
 
'기다려 주라'는 말은 아이들의 인생을 대신 결정하고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지, 덮어놓고 참아라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다려주라는 말의 핵심은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 부모 자식도 남남이다

기다려줘야 한다의 근본적인 의미는 부모자식 사이도 남남이란 걸 깨닫는 것이다. 남남이란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남이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기다려주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친구든, 직장동료든, 그냥 아는 사람이든 남에게도 충고하고 제안도 한다. 하물며 피를 나눈 자식에게 함께 사는 아이에게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겠는가.
 
남에게는 조언도 하고 제안도 하지만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다. 자식도 남이란 말은 결국 조언하고 제안도 하되, 인생을 결정해주지 말라는 것이다.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지 말고 하되, 남에게 말한다는 생각으로 하라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말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을 얘기해본다면,
먼저 삶의 방향, 이건 정말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부모는 내 생각을 꺼내 놓을 뿐, 그것을 집을지 말지는 아이가 결정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대안학교와 공교육의 선택, 대학진학과 대학거부, 결혼과 비혼 등등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정말 참지 않아도 된다. 아니 참지 말아야 된다. 남남끼리도 동거를 하거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면 생활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문제에 대해서 제안하고 조정한다. 하물며 한집에 사는 가족끼리야... 다만 이 경우에도 강요와 강제가 아닌 조정을 통한 합의나 인정이 필요하다. 합의했는데도 안 지키면 개지랄을 할 수도 있고, 반복적으로 거슬리는 행동에 인정이 안 되면 나가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명심해야 할 것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나 좋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너 인생이 걱정 되서 이런 말 하는 거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런 말은 쓰면 안 된다.
가령 아이가 양말을 아무데나 던져 놓으면,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앞으로 인생 어떻게 살래." "미래가 걱정된다."
이렇게 말하지 마시고,
"나는 집에 오면 니 양말 때문에 너무 힘들어."
"난 니 뒤치다꺼리 하는 노예가 아닌데..."
너화법이 아니라 나화법이어야 하고 강요조가 아니라 고백조면 좋다.
 
아이들은 부모의 몸을 통해서 태어났지만 그건 경유지일 뿐 종착지가 아니다. 그들의 영혼은 부모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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