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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여전히 제사를 지내고 가족과 친지 간에 왕래를 하는 집들이 많지만, 삶의 방식이 다양해진 만큼 해외로 나가거나 집에 들어박혀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다. 또 요즘에는 제사를 지내고 친척 집을 방문한 다음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 가족들도 많다.

이렇게 다양한 '명절 나기'가 있지만, 1년에 몇 번 없는 연휴인 만큼 가족과 친지가 하루 이틀 정도는 나들이를 가는 것도 괜찮겠다. 명절이 누군가에게는 노동절이 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함께' 나들이를 함으로써 바람을 쐬고 공통의 추억을 쌓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기자말]
경포호는 동해안의 일몰 명소이다. 경포호에서는 태백산맥 너머로 해가 지지만, 마치 호수 너머로 해가 지는 듯한 일몰을 볼 수 있다.
▲ 경포호 일몰  경포호는 동해안의 일몰 명소이다. 경포호에서는 태백산맥 너머로 해가 지지만, 마치 호수 너머로 해가 지는 듯한 일몰을 볼 수 있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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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과 일출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동해안

우리나라에는 같은 동네에서 일몰과 일출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서해안의 충남 당진 왜목마을, 충남 서천 마량포구, 전남 해남 땅끝마을, 부산 다대포 해안 등 여러 곳이다. 그런데 동해안에도 일출,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유명한 강릉 경포대와 경포호.

얼핏 생각하면 동해안은 태백산맥이 빈틈없이 동해안을 남북으로 병풍처럼 가로막기 때문에 서쪽으로 지는 해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런데 강릉 경포호에 가면 서쪽 태백산맥 너머로 지는 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비록 바다로 지는 해는 아니지만, 해 지는 풍경의 감동은 그대로다. 특히, 경포호라는 잔잔한 석호가 마치 배 모양으로 길게 깔려 있는데, 이 거울 같은 호수에 실루엣을 남기며 서쪽으로 사라지는 일몰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이 경포호의 동쪽, 즉 해안 쪽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저 멀리 경포호를 내려다보는 경포대의 그림자와 호수에서 노니는 겨울 철새들이 아름다운 배경을 이루며 일몰 풍경을 선사한다. 해는 산 너머로 지지만, 호수와 산줄기 사이의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해의 붉고 강렬한 색채가 태백산맥 산줄기의 그림자를 지워 버린다.

그래서 해가 호수 너머로 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이 풍경 속에서 청둥오리나 원앙 등 경포호의 그림에 한 점을 더 찍는 철새들이 물에서 노니는 모습이 아름답다.
 
일몰시에 철새들의 실루엣이 호수에 아늑한 풍경을 더한다.
▲ 경포호 저녁 풍경 일몰시에 철새들의 실루엣이 호수에 아늑한 풍경을 더한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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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는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강릉시 초당동, 저동, 운정동에 걸쳐 있는 둘레 4km의 자연 석호이다. 과거에는 바로 옆 경포해수욕장과 이어져 일종의 만이었지만, 둘 사이에 오랜 세월 모래가 쌓여 지금은 바다와 육지의 호수로 분리되어 있다.

이런 석호가 동해안에 여럿 있지만, 이 경포호가 가장 유명한 '맏형'의 지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경포호는 흐름이 거의 없는 잔잔한 수면이 인상적이며 호수를 따라 길이 이어져 어디서든 접근이 가능하다. 이 석호를 내려다보는 유명한 누각이 관동팔경의 하나로 옛날부터 칭송되어 온 경포대이다.

일몰이 끝나면 이 경포대로 가라. 관동팔경의 하나로 오랫동안 강릉의 명소 역할을 했던 경포대는 야경이 좋다. 희미한 호수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전망도 좋지만, 경포대 자체의 야경도 훌륭하다.

경포대는 본래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박숙정이 인월사 옛터(현재 방해정 뒷산)에 설립했는데, 조선 중종 3년(1508) 강릉 부사 한급이 현재 위치로 옮겼다. 그리고 500년 이상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현판의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글씨는 힘과 자부심이 넘치지만, 동시에 경포호의 잔물결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곳 강릉에서 태어난 율곡 이이는 10세 때 '경포대부'라는 시를 지어 "하늘은 유유하여 더욱 멀고, 달은 교교하여 빛을 더한다"라고 읊었다. 지금이야 빛으로 야경을 만들고 있지만, 인위적 야경이 아니라도 호수와 어울린 당시의 달밤 풍경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리라.
 
잔잔한 경포호를 배경으로 뜨는 해를 감상한다. 촬영시에는 경포대 누각을 실루엣 삼아 찍는 것이 인상적이다.
▲ 경포대 일출  잔잔한 경포호를 배경으로 뜨는 해를 감상한다. 촬영시에는 경포대 누각을 실루엣 삼아 찍는 것이 인상적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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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경포대는 아침 일출의 명소이다. 누각을 실루엣으로 삼아 아침해를 맞으면 다른 데에서는 보기 힘든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다만 경포대에서 보는 바다는 옛날의 바다가 아니다.

호텔과 리조트를 비롯한 각종 인공 시설들로 인해 경포호와 바다 사이에 한줄기의 벽처럼 가로막혔다. 지금처럼 각종 인공 시설들이 들어서지 않았을 때의 경포호를 상상한다면, 호수와 바다가 어울려 한적한 풍경을 이루었을 그 시기가 부럽기만 하다.

아예 바다로 나가 경포해수욕장에서 바로 수평선 위로 뜨는 해를 감상할 수도 있다. 동해안에서 정동진 일출이 유명하다지만, 명소가 된 지 불과 30년도 안 된 정동진보다, 그리고 그저 수평선으로 해가 뜨는 장면밖에 없는 정동진보다, 호수와 누각과 바다가 어우러진, 700년을 헤아리는 명소인 경포 일출에 비할 바는 아니다.

만약 일출 사진을 찍겠다면, 기왕이면 일직선상의 수평선으로 뜨는 해를 찍는 것보다 해안의 그네와 같은 지형지물을 배경 삼아서 찍는 건 어떨까. 검은 실루엣이 있는 일출이 사진으로는 더 포인트가 있다.

혹은 바다 위로 돌출한 작은 바위를 실루엣 삼아 일출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 어떤 풍경이든 설 명절을 맞이하는 벅찬 마음으로 아침 해를 보는 것, 경포호와 경포 해안만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드물다.
 
바다로 뜨는 해를 보려면 경포해수욕장으로 간다. 그네의 풍경과 어울리는 일출이 인상적이다.
▲ 경포해수욕장 일출 바다로 뜨는 해를 보려면 경포해수욕장으로 간다. 그네의 풍경과 어울리는 일출이 인상적이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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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역사, 초당마을의 순두부

경포호 바로 남쪽에 초당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보다 이 마을의 이름을 딴 순두부, 초당 순두부가 유명한 곳이다. 초당 순두부 하면 요즘은 거의 보통명사화 되어 있다.

그 옛날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집안이 살았던 초당동 안쪽으로 들어가면 곳곳에 소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펼쳐지고, 그 안에 허균 허난설헌 생가가 있다. 이 마을 곳곳에 초당 순두부집들이 들어서 있다.

초당은 허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이다. 조선 명종 때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이 강릉에서 살았는데, 집 앞의 맛 좋은 샘물로 콩을 가공하고, 소금이 아닌 깨끗한 바닷물로 간수를 써서 두부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두부의 맛이 좋다고 소문나자 두부에 자신의 호 '초당(草堂)'을 붙였다고 한다. 허엽이 16세기의 인물이니 이 초당 두부는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순두부는 콩으로 두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콩의 단백질이 몽글몽글하게 응고되었을 때 압착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것이다. 이 순두부가 초당의 이름과 붙어 초당 순두부로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순두부는 아침 일찍이나 오전 중에 먹는 것이 좋다. 마치 거품이나 솜사탕처럼 보이는 순두부를 떠먹으면, 씹지도 않았는데 입안에서 목까지 부드럽게 타고 넘어가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좋다. 바닷물을 사용해 만든 두부라 양념을 하지 않아도 짭짤한 맛이 입속에 남는다. 
 
몽글몽글한 순두부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 초당 순두부  몽글몽글한 순두부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 홍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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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초당 순두부를 내건 집집마다 순두부 요리도 다양해졌는데, 특히 매운 것 좋아하는 사람들 입맛에 맞춘 짬뽕 순두부가 개발되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는 해물도 들어간다.

매운맛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말릴 수는 없지만, 짬뽕 순두부는 매운맛이 순두부 본래의 맛을 덮어버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매운맛 속에 순두부 특유의 부드러운 맛이 녹아 있지만, 그래도 초당 순두부를 먹을 때는 본래의 순두부찌개를 먼저 먹는 것이 좋다고 본다.

아침에 경포대 혹은 경포해수욕장에서 일출을 보고 초당마을에서 순두부찌개나 순두부백반을 먹으면 뜨끈하고 든든해서 그 느낌이 하루 내내 유지되는 편안한 날이 될 것이다.

여행 정보

- 초당마을의 순두부집들은 대개 1월 25일 설날만 영업을 안 하는 집들이 많다. 26일부터는 대부분 정상 영업을 한다.
- 일몰 풍경은 경포호 동쪽 끝자락 호수길에서 보고, 아침 일출은 경포대와 경포해수욕장에서 보는 것이 좋다.
- 주차는 경포대 앞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100여대 이상 주차가 가능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다니면 된다. 경포대 동쪽 해안길에도 주차할 곳이 있으므로 주차가 불편하지는 않다.
- 경포호 일대를 여행하면 허균 허난설헌 생가도 둘러보고, 선교장 답사를 해보면 좋다. 젊은 층이나 부부라면 경포해수욕장 남쪽의 안목 커피거리에서 데이트하면 좋고,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경포호 바로 옆의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에 들러가면 좋다.

가는 길

- 자가용으로는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동해고속도로 동해 방향→강릉 IC→35번 국도→강릉 시내→경포호로 들어간다.
- 강릉까지는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원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가 자주 가고, 서울 청량리역과 충북 제천역에서 영동·태백선 기차가 간다.
강릉에서는 강릉고속버스터미널과 강릉역 등 시내 주요 지점에서 202번, 202-1번(20~30분 간격 운행) 시내버스를 이용, 경포대와 경포해수욕장 입구에서 하차한다.

태그:#경포대, #경포호, #경포해수욕장, #초당 순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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