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프로농구 원주 DB 프로미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에서 DB 두경민이 중거리슛을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최근 군복무를 마친 두경민은 이날 복귀전에 투입됐다.

15일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프로농구 원주 DB 프로미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에서 DB 두경민이 중거리슛을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최근 군복무를 마친 두경민은 이날 복귀전에 투입됐다. ⓒ 연합뉴스


 
스포츠 세계에는 공식적인 규정엔 없지만 암묵적으로 통하는 여러 가지 '불문율'이 존재한다. 야구에서는 홈런을 친 타자가 루상을 천천히 걸어서는 안 된다든지,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경기 막판에 무관심 도루나 잦은 투수교체를 하지 않는 것 등이 유명하다. 농구나 축구에서는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쪽에서 추가점을 뽑기 위하여 무리하게 공격을 하지 않거나,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는 게 일종의 관행으로 여겨진다.

물론 상황에 따라 불문율이 꼭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일 상대가 납득할 만한 명분 없이 고의적으로 불문율을 어겼다고 판단될 경우, 응징을 위한 보복성 플레이(고의적인 빈볼, 거친 파울 등)가 나오는 것 또한 일종의 불문율로 여겨진다. 심할 경우에는 팀간 벤치클리어링이나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불문율도 스포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면 최근 시대가 달라지면서 불문율의 당위성에 대한 의구심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프로농구에서 또다시 불문율을 둘러싼 해프닝이 발생했다. 지난 15일 열린 원주 DB와 서울 SK의 경기에서 DB 두경민이 9점차로 앞서 승리를 눈앞에 둔 경기 종료 직전 장거리 3점슛를 날린 것이 논란의 발단이 됐다. 두경민의 슛은 종료 버저와 함께 림을 가르는 버저비터가 되어 득점을 인정받았고 DB는 SK에 최종스코어 94-82로 승리했다. 두경민은 슛을 성공시킨 이후 멋진 세리머니를 연출하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런데 몇몇 SK 선수들이 종료 직후 두경민에게 불만을 표시하면서 잠시 소란이 벌어졌다. 이미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종료 몇 초를 남겨두고 느슨하게 수비하던 SK 선수들은 두경민이 공을 들고 림을 향하여 돌진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두경민도 SK의 예민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등 상대 선수들을 향하여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행히 주변에서 만류하여 큰 충돌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끝날 수 있었던 승부에 불필요한 오점을 남긴 장면이었다.

두경민의 공격, 불문율에 해당되는 상황일까

SK 측의 시선에서 봤을때는 이미 DB의 승리가 굳어진 상황에서 굳이 두경민이 추가 득점을 위하여 공격을 시도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는 있다. 보통 농구에서 경기종료가 몇 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승부가 결정난 경우에는 양팀 모두 공격을 자제하고 남은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며 경기를 마무리할 때도 많다.

NBA(미프로농구)에서도 큰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이기고 있는 팀이 무리하게 공격을 시도한다는 이유로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진 적이 있다.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팀은 되도록이면 상대를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승자와 패자간 존중에 대한 불문율이다.

하지만 이 경우가 불문율에 해당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두경민에게 공격을 지시했던 것은 바로 DB 벤치였다. 실제로 DB 선수들은 마지막 공격권을 잡고 그대로 경기를 마무리하려는 듯한 분위기였으나 이상범 감독이 선수들에게 호통을 치며 끝까지 공격을 독려하자 화들짝 놀란 두경민이 코트를 넘어가 슛을 시도한 것이다.

DB가 오해의 소지를 감수하면서 추가득점을 노린 것은 바로 '공방률'이라는 변수 때문이다. 순위싸움이 치열한 프로농구에서 팀간 승률과 상대전적까지 같을 경우 공방률로 순위가 갈린다. DB는 올시즌 SK에 상대 전적에서 3승 1패로 앞서고 있지만 지난 경기에서 대패를 했고, 남은 2경기가 SK의 홈인 잠실에서 열린다.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노리는 DB는 2위 SK를 1.5게임차로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의 경우까지 감안해야했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불문율을 따지더라도 일관된 형평성은 필수

일각에서는 DB의 마지막 공격시도보다도 경기후 두경민의 세리머니가 더 SK를 자극했다는 지적도 있다.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추가 득점 시도만으로도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데 굳이 세리머니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두경민은 슛을 성공시킨 후 두 팔을 치켜들고 환호하며 동료들과 승리를 만끽했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DB의 홈이었고 경기를 잘 마치고 승리를 자축하는 것은 엄연한 홈팀의 권리다. 두경민의 세리머니가 특별히 '오버액션'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두경민은 코트에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을 뿐, 딱히 SK 벤치나 선수들 앞에서 도발을 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 장면을 두고 불문율로 논쟁을 한다면 SK로서도 '제 얼굴에 침뱉기'가 될수밖에 없다. SK도 크게 이기고 있던 경기에서 몇 번이나 공방률을 의식하여 마지막까지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친 전력이 있다. SK 포워드 최준용은 슛을 성공시키고 상대 팀 혹은 관중석을 향해 '화살을 쏘거나' '돈다발을 뿌리는 듯한' 퍼포먼스로 유명한데, 이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상대에 대한 도발로 보일 소지가 있다. 불문율을 따지더라도 모두에게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형평성은 필수다.

가장 큰 문제는 스포츠에서 이러한 불문율을 어디까지 수용하고 기준을 맞추느냐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스포츠에서 불문율의 취지는 '페어플레이에 대한 존중'이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관행적으로 내려온 불문율이 고정관념으로 굳어지면서 오히려 규정에도 없는 '그들만의 규칙'을 내세워 팬들의 상식이나 정서에 역행하는 부작용도 벌어진다.

최근 안양 KGC 인삼공사는 창원 LG와의 경기 종료 1분 40초를 남겨놓고 경기를 포기하는 듯한 무성의한 플레이로 빈축을 샀고 결국 감독이 벌금과 출장정지 징계까지 받았다. 농구팬들이라면 인삼공사의 LG전 마지막 1분 40초와, 두경민의 SK전 버저비터, 둘 중 어떤 장면을 더 보고싶어할까?

결국 스포츠에서 어떤 관행보다도 가장 중요한 불문율은 '승패를 떠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자세'에 있다. 승부가 기울었든, 경기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든, 혹은 경기에 져서 기분이 나쁘다는 핑계를 대든, 어떤 이유로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스포츠와 팬들을 위한 가장 최상위의 불문율을 어기는 행위인 셈이다.

오늘날 시대에 뒤처지고 팬들의 상식에도 맞지 않는 낡은 불문율은 이제 사라져야한다. 선수와 감독 모두 더 이상 시시콜콜한 관행이나 고정관념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농구팬들을 위하여 가장 최선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만을 생각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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