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프로농구는 2010년대 이후 장기간의 침체기를 거쳤다. 스타 선수 부재, 경기력 하락, 국제 경쟁력 침체, 연맹의 형편없는 행정력 등 프로농구의 흥행성을 이끌만한 콘텐츠가 실종됐고, 승부조작-탱킹 같은 악재들도 터졌다. 1990년대 야구-축구 못지않은 국민스포츠로 인기를 끌었던 프로농구가 마니아 스포츠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올 시즌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KBL은 이달 초 2라운드 종료 시점 기준으로 정규리그 90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전 시즌 대비 약 24%의 관중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프로농구를 중계하는 온라인 포털 사이트의 중계 시청률과 접속자 수도 꾸준하게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프로농구를 향한 관심이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로농구의 인기 상승 비결은 역시 달라진 시대 환경에 걸맞게 팬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애쓰는 구단 및 선수단의 스킨십에서 비롯됐다. KBL의 경우 주말 경기 편성을 확대하여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수있는 기회를 늘리는가 하면 각 구단들과 협업하에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 팬서비스라고 하면 기껏해봐야 경기 종료 후 팬사인회나 하이파이브를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면, 최근에는 선수는 물론이고 감독들이 방송-유튜브 등 미디어에 출연하여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에 앞장서기도 한다. 또 마이크 착용과 라커룸 공개 등을 다양한 이벤트 연출로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SK나이츠-DB프로미의 경기에서 SK 최준용이 골밑슛을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SK나이츠-DB프로미의 경기에서 SK 최준용이 골밑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선수들의 역할 증가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프로농구는 출범 초기부터 외국인 용병이 성적을 좌우하고 국내 선수들은 들러리를 서는 리그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올시즌에는 그동안 외국인 선수제에서 가장 비판받던 장단신 구분이 폐지되고 2인 출전에서 1인 출전으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증가했다. 허훈(KT)-송교창(KCC) 등 스타성을 갖춘 젊은 선수들의 활약, 울산 현대모비스와 전주 KCC의 대형 트레이드 등의 이슈들은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몰고 있다.

또한 10개 구단의 전력평준화와 함께 올시즌 프로농구에선 역대급으로 치열한 순위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서울 SK와 안양 KGC 인삼공사가 선두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슈퍼팀'을 구성한 전주 KCC, 두경민의 복귀로 황금 가드진을 구축한 원주 DB 등도 언제든 선두를 노릴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성적상 하위권팀인 고양 오리온이나 창원 LG도 종종 선두권 팀의 덜미를 잡는 도깨비 행보를 보이는 등 어느 하나 만만한 팀이 없는 실정이다. 4쿼터 종반까지 박빙의 승부가 연일 계속되다보니 농구팬들이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호재에도 불구하고 전반기 프로농구에 긍정적인 요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몇몇 장면들은 농구계가 반짝 인기에 도취되기 전에 진지하게 돌아봐야할 대목이다.

전주 KCC는 지난 11월 어린이 팬서비스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KCC는 인삼공사와의 경기에서 대패한 뒤 라커룸으로 퇴장하다가 관중석에서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며 손을 내밀던 어린 소녀팬을 한두명 외에는 대부분 외면하여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은퇴 선수이자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던 김승현이 팟캐스트에서 당시 경기에 대패했던 선수들의 기분을 옹호하며 '팬도 잘못'이라고 실언을 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고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된 한국 스포츠에서 '프로의 최우선 기본은 팬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사건이었다.

지난 4일에는 LG 강병현과 SK 최준용의 충돌이 큰 이슈가 됐다. 볼경합을 펼치던 상황에서 공을 잡은 최준용이 플로어에 넘어진 강병현을 바라보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동작을 취한 게 발단이었다. 강병현은 최준용의 행동을 도발로 판단하고 격분하여 코트에 밀쳐 넘어뜨렸고 최준용은 오해라고 항변했다. 결국 양팀 선수들이 뒤엉켜 잠시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KBL은 재정위원회를 열고 강병현과 최준용에게 각각 벌금과 경고 징계를 내렸다. 지금도 이 사건은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프로스포츠에서 개성과 표현의 자유, 그리고 상대에 대한 존중과 페어플레이의 균형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보게 한 사건이었다.

리그 선두 경쟁을 펼치던 김승기 안양 KGC 인삼공사 감독은 태업 논란에 휩싸이며 이미지를 구겼다. 김 감독은 11일 창원 LG와의 경기에서 패색이 짙어진 연장 종료 1분 40초를 남겨두고 사실상 경기를 포기한 모습으로 도마에 올랐다. 인삼공사 선수들은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제한 시간동안 공격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으며 무성의한 경기 내용으로 일관했다. 김승기 감독의 설득력 없는 변명도 논란을 오히려 부채질했다. 농구팬들은 몇 년 전 프로농구를 강타했던 승부조작 논란의 후유증을 벌써 있었느냐며 김 감독과 인삼공사를 질타하고 있다.

심판 판정 논란이나 프로농구 경기력의 질적인 문제 역시 꾸준히 지적받고 있는 대목이다. 과거에 비하면 수위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은 농구팬들은 심판의 잦은 오심이나 편파적인 판정에 의혹을 제기한다.

겉보기에 치열한 승부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경기의 수준은 '프로'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장면이 많다. 노마크 찬스에서도 슛이 빗나가거나 심지어 에어볼(슈팅한 공이 림에도 맞지 않는 것)이 나오는가 하면, 자유투는 역대 최악의 수준이었다. 농구 원로가 신동파가 KBS와의 인터뷰에서 "연봉 몇 억을 받는다는 프로가 노마크도 제대로 못 넣는다는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일갈한 장면은 많은 농구팬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과거의 한국농구는 신체조건이 떨어져도 정확한 슛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선수들의 체격조건이나 몸값, 농구 환경은 전반적으로 향상됐지만 개인기술은 오히려 과거보다 퇴보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는 한국보다 더 크고 빠르면서도 슛까지 좋은 선수들이 이제 즐비하다. 하지만 선수들만 노력이 부족하다고 탓하기 전에 선수들의 개인기와 창의성을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는 한국농구의 구조적인 문제를 돌아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몸싸움을 기피하고 지나친 플라핑으로 여전히 심판의 눈을 속이려는 선수들의 행태도 지적받고 있다. KBL은 최근 눈속임 동작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구단과 선수리스트까지 공개하며 플라핑 근절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KBL은 세계에서도 가장 수비적인 리그 중 하나로 꼽힌다. 수비농구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선수 개개인의 공격 능력과 창의성이 부족하여 그만큼 더 조직적인 수비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문제다. 농구는 다득점 스포츠로서 빠른 공수전환과 공격적인 플레이에 그 매력이 있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이 큰 인기를 모았던 이유도 NBA만큼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한국농구만의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는 플레이가 주는 매력 때문이었다. 이제 달라진 시대 흐름에 걸맞게 한국농구만의 장점과 색깔을 다시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숙제가 됐다.

무엇보다 올시즌 일시적인 인기 반등에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 팬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 경기장을 찾아주고 농구라는 콘텐츠를 선택한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다. 팬들의 관심과 응원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최선의 콘텐츠와 팬서비스로 보답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아야 농구가 진정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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