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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아프니까 청춘 대신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본소득을 요구하고 있는 청년들의 일상을 소개하고, 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기자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보면 김밥 판매 매대 앞에 한참이나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몇백 원 비싸긴 하지만 먹고 싶은 김밥을 고를 것인지, 가장 싼 김밥을 고를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한다. 편의점 바로 옆에는 김밥천국도 있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김밥에 몇백 원을 더 하면 갓 지은 밥으로 만든 김밥을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편의점 매대에 붙어 한참을 고민하던 사람들은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1+1 삼각김밥 세트를 고를 때가 많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 현실을 반영하는 장면이 반지하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한 가족이 마시는 맥주의 종류가 가장 현실적인 모습일 수 있다. 영화 초반 이들이 필라이트 맥주를 마셨다면, 후반에는 삿포로 맥주를 마신다. 이들이 가족 외식을 하는 공간은 돼지고기볶음이 나오는 6000원짜리 한식 뷔페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반지하라는 공간을 주목했다. 이런 일은 왜 생길까.

애매한 가난, 애매한 불행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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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았던 손님들의 모습과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가족들을 보며 나는 몇 년 전에 봤던 <여중생 A>라는 웹툰이 기억났다. 공장에 다니는 어머니가 있어서 복지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중학생인 주인공은 웃으며 "애매하게 가난한 건 쓸 데가 없네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하루하루 애매한 가난을 목격하며 살아가고 있다.

애매한 가난은 무엇인가. 애매하게 가난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수 있다. 동시에 2500원짜리 참치 김밥과 2000원짜리 원조김밥 앞에서 고민하다 원조 김밥을 선택하는 모습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진짜 가난한 사람'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필라이트 맥주보다 반지하를 주목하는 이유는 반지하라는 공간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반지하가 필라이트 맥주보다 '진짜 가난'이라는 정의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때로는 반지하에 사는 것보다 해외 맥주를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더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난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가난한 사람들은 차고 넘치니까.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애매하게 행복하지 못하다. 몇백 원에 자신의 욕구를 접어야 하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만, 어떠한 사람들에게 티끌은 모으면 조금 더 큰 티끌이 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개미처럼 일하면 개미만큼만 모을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의 사회가 그렇다. 자동화로 일자리도 줄어드는데 높으신 분들이 하는 "일자리를 창출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지도 않는다.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가게 매대 앞에서 인생의 비용을 지급하지만 이 비용은 한 번도 국가 체계 내에서 환산되지 않는다. 애매하게 가난하면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기에 당연히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역시 "애매하게 가난한 건" 쓸 데가 없다. 선별적 복지만 있는 사회 속에서는.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요구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까. 기본소득과의 만남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것을 포기하라는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왜 하필 기본소득인가요?"

지난해 9월 8일, 한국 최초 원이슈 정당인 기본소득당 발기인 대회가 진행되었다.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나는 당연히 이 행사에 참여했다. 기본소득당을 창당한다고 말했을 때 많은 사람이 물었다. "왜 하필 기본소득인가요?" 기본소득당에 가입한 많은 사람에게 내가 물었던 말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제가 부자는 아니라서 반대할 이유는 없었죠."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요, 그래도 이번엔 실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차별이 없는 것 같았어요." "실현되면 나도 받을 수 있어서요."
  
기본소득은 어떠한 조건도, 어떠한 심사도 요구하지 않는다. 유일한 기준은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공동체의 일원인지다. 기본소득이란, 조건과 심사 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의미한다. 당연히 낙인효과나 선별비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가난한 사람들도 모두 소득을 배당받을 수 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기본소득의 재원이 되는 세금을 조금 더 많이 내고, 덜 가진 사람들은 조금 내고 기본소득으로 더 많이 돌려받는다.

복지 제도가 취약 계층을 보조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다면, 기본소득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기본소득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사회는 불가능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소득은 분명 지금의 사후적인 복지와 다르다.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게 만든다.
 
기본소득당 창당 발기인 대회
 기본소득당 창당 발기인 대회
ⓒ 기본소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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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당은 발기인 대회를 한 지 4개월 만에 당원 숫자가 1만 7000명을 넘었다. 그중 80%는 10대와 20대이다.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고, 평균 나이는 27세다. 당원들이 쓴 직업란에는 '갓수', '백수', '무직', '아르바이트'가 넘쳐난다. 일주일 후에는 정식 창당대회가 진행되고, 정식 정당으로 등록될 예정이다.

나는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가난하지만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 가난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아기를 돌보고 싶은 남성, 가난하지만 7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하루는 쉬고 싶은 사람. 이들이 기본소득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지금의 사회가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락하지 않는 미래였다.

예전 사람들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다. 아프니까 청춘이고,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유행을 타고 번졌다. 그보다 오래전에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라는 말이 유행이었다. IMF 시기에는 국가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식의 돌 반지를 국가에 내는 젊은 부부들이 있었다.

그리고 돌 반지가 하나도 없는 세대가 성장했을 때, 그 모든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최소한의 보호를 해주는 국가도, 돌 반지도, 직업도, 일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내 또래 사람들은 대부분이 애매하게 가난하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야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감각이 없는 시대에 그 말은 허황한 것이었다.

기본소득당에 모인 새로운 세대는 정말로 새로운 것들을 원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믿음,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복지를 해야 한다는 믿음, 개인이 아니라 가족이 최소 단위여야 한다는 믿음, 그러므로 개인은 때로 희생해야 한다는 믿음은 사라져야 하는 믿음이다.

하루에 200명씩 쏟아지는 당원 가입자들을 보며 나는 그것을 체감한다. 이들을 만나 기본소득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하다가 화상을 당한 후 길거리에 쪼그려 앉아 울었던 기억, 쉬고 싶었던 기억, 독립하고 싶어 앱으로 집값을 알아보다 포기했던 기억.

그리고 새로운 말을 만들고 싶어진다. "열심히 일해야지"가 아니라 "쉬고 싶을 때는 조금 쉬어도 되는 사회가 필요해"라는 말로. "모두는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가 있어"라는 말로. 그리고 이렇게도 말해보고 싶다. "더 욕심부리며 살아도 되는 사회가 필요해!"

2020년, 인간이 절벽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상처를 치료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정책들은 필요하지 않다. 대신 아무도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애매한 가난보다는 기본소득이 낫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민주씨는 기본소득당 서울시당 상임위원장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태그:#기본소득, #빈곤, #가난, #기생충, #기본소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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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정치에 관한 책 <판을 까는 여자들>과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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