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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외딴 초원 마사이들의 삶은 현대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간소하고 고요하며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문명의 편리함과 자원의 풍족함을 누리던 내가 갑자기 마사이의 생활에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오지(奧地) 마을로 들어가며 준비한 식빵과 식수는 떨어져 가고, 씻지 못한 몸은 찝찝해지고, 잦은 돌풍에 텐트는 모래로 가득찼다.

배고픔과 모래, 우글우글 바퀴벌레는 자연 친화적인 마사이 삶의 일부라고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스멀스멀 온몸으로 퍼져 가는 빈대의 가려움은 견디기 힘겨웠다. 사흘을 지내고, 텐트를 접었다.

소중한 우유와 차를 나누어준 마사이 가족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물과 화장실, 전기와 오만 가지 음식이 있는 문명 사회를 향해 초원을 떠났다. 두발 오토바이 '보다보다', 세발 오토바이 '바자지', 네발 버스 '달라달라'를 타고 오지에서 벗어나 도시 다르에스살람에 도착했다. 

결혼 직후 세계 여행을 떠나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을 찾아가 영어와 레크리에이션 수업 봉사 활동을 하는 두잇부부(Do It Bubu), 그림을 그리고 드론 촬영을 하며 여행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큐리어뜨(Curi✕Earth) 커플, 배낭여행자들의 후원자 김태균 추장과 함께, 쿤두치 빈민촌 아이들의 재활용품 장남감 만들기 축제를 열고, 마사이족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국제협력, 사업, 선교, 교육을 위해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한인(韓人)들에게 환영의 쌀밥과 응원의 고깃국을 한참 얻어먹으며 기운을 차린 뒤 여행자들은 남쪽으로 북쪽으로, 각자의 길을 이어갔다. 

"아싼떼 싸나, 고마워요,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쿤두치 빈민촌 아이들의 재활용 장남감 만들기 축제 모습 다르에스살람 쿤두치 빈민촌 아이들의 재활용 장남감 만들기 축제 모습
▲ 다르에스살람 쿤두치 빈민촌 아이들의 재활용 장남감 만들기 축제 모습 다르에스살람 쿤두치 빈민촌 아이들의 재활용 장남감 만들기 축제 모습
ⓒ 두잇나우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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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라 열차를 타고 '천둥 치는 연기' 폭포를 향해  

탄자니아와 잠비아를 잇는 '타자라(TAZARA)' 기차는 '평화의 항구' 다르에스살람에서 '피난의 언덕' 카피리음포시까지 1,860킬로미터를 달린다. 타자라 철도는 소수 백인들의 정권이었던 남로디지아(짐바브웨)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통과하지 않고 잠비아 광산의 구리를 항구로 보내기 위해 계획되었다. 식민주의와 인종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잠비아와 탄자니아 정부의 범아프리카주의적 협력과 미국,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지원에 의해서 1975년 개통됐다.

아프리카를 종단하며 기차로 국경을 넘는 건 처음이었다. 기차는 일주일에 딱 두 번 오가는데 완행은 3박 4일, 급행은 2박 3일이 걸린다. 다르에스살람에서 금요일에 출발하는 2박 3일 급행 열차는 출발부터 다섯 시간이 연착됐다. 사흗날 밤늦게 도착한 종착지 카피리음포시 역에서 쪽잠을 자야 했으니 3박4일 같은 2박3일의 기차 여행이었다. 기차의 속도는 느렸지만, 그래서 천천히, 잠비아와 탄자니아의 마을과 사람들,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을 만날 수 있었다. 
 
타자라 열차 타자라 열차에서 만난 잠비아 철도 노동자. 내 우쿨렐레를 바이올린처럼 켜며 즐거워했다.
▲ 타자라 열차 타자라 열차에서 만난 잠비아 철도 노동자. 내 우쿨렐레를 바이올린처럼 켜며 즐거워했다.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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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 수도 루사카를 거쳐, 아프리카에서 세렝게티만큼 대표적인 관광지, 이구아수, 나이아가라와 함께 세계 3대 폭포라 불리는 빅토리아 폭포의 도시 리빙스턴에 닿았다. 의료선교사이자 탐험가인 영국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1855년 이 폭포를 '발견' 하여 서구 사회에 알리며 당시 영국 (여)왕 빅토리아의 이름을 붙였다. 원주민 콜로로족이 이 폭포를 부르던 원래 이름은 '모시 오아 툰야(Mosi-oa-Tunya), 천둥 소리가 나는 연기'다.

빅토리아 폭포가 원래 이름을 찾기까지는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까. 폭포 이름에서도 도시 이름에서도, 스스로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고 불렀던 식민주의 침략국 영국의 폭력과 오만이 느껴졌다. 

남미 이구아수 폭포에서 거대한 놀라움을 느꼈기에, 아프리카에 들어설 때부터 모시오아툰야 폭포를 내심 기대했다. 2019년 잠베지 강의 건기가 유독 심했던 걸까. 마침내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폭포는 완전히 말라붙어 있었고 천둥소리가 난다는 연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계획이 어긋나고 기대와 환상이 깨지는 것도 여행의 과정이지만, 기나긴 세계 일주 여정의 막바지에 마주한 실망이라 아쉬움이 더 깊었다.
 
모시오아툰야 폭포  강물이 줄어들어 대부분이 말라버린 모시오아툰야 폭포 잠비아 쪽 모습. 멀리 보이는 마르지 않은 폭포에 가려면 비자 비용을 내고 짐바브웨 국경을 넘어야 한다.
▲ 모시오아툰야 폭포  강물이 줄어들어 대부분이 말라버린 모시오아툰야 폭포 잠비아 쪽 모습. 멀리 보이는 마르지 않은 폭포에 가려면 비자 비용을 내고 짐바브웨 국경을 넘어야 한다.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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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베지 강을 건너 아프리카의 남쪽으로 

잠비아,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 네 나라가 국경을 마주하는 카중굴라(Kazungula)에서 바지선(barge)을 타고 잠베지 강을 건넜다. 유유히 흐르는 황톳빛 강물 위로 먼지를 날리며 잠비아와 보츠와나를 잇는 다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부 아프리카까지 진출한 한국 대기업 대우건설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집트부터 잠비아까지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동안, 국경을 가로지를 때마다 25달러에서 150달러까지 꽤 부담스러운 비자 비용을 내야 했는데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했다. 

남아프리카 나라들이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좀더 외부 세계와 여행자에게 개방적인 걸까. 2019년 IMF에서 발표한 세계 190개 나라의 1인당 GDP 자료를 살펴보니, 잠비아(1307달러, 158위), 에티오피아(953달러, 165위), 남수단(714달러, 190위) 등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에 비해 보츠와나(7860달러, 80위)와 남아프리카공화국(6100달러, 91위)은 경제력이 훨씬 높은 편이었다. 주민 구성도 확연히 다른데, 탄자니아의 경우 비아프리칸 인구를 모두 합쳐도 1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구의 약 20퍼센트가 백인이었다. 

에티오피아를 제외하고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 모든 지역이 식민 지배를 겪었지만 그 영향은 지역마다 달랐다. 보츠와나의 프랜시스타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포트엘리자베스, 이스트런던 등의 지명에서, 중부, 북부 아프리카와는 또다른 식민지의 흔적과 백인 문화와의 혼합을 느낄 수 있었다. 

칼라하리 사막을 횡단하는 히치하이커들

적도에서 멀어져 남반구의 남쪽으로 이동하면 날씨가 점점 서늘해지리라 기대했는데, 보츠와나의 전 국토, 칼라하리(Kalahari) 사막 전역의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었다. 보츠와나는 대한민국보다 여섯 배쯤 넓은 땅(582,000㎢)에 이백만 명이 사는 한적한 나라인데, 그래서인지 내가 입국한 북부 지역에는 공공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국경 인근 길가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주민들은 모두 길가에 서서 엄지를 들고 히치하이킹을 했다. 보츠와나 북부의 공공 교통수단은 버스가 아닌 히치하이킹이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히치하이킹을 불법으로 규정한 나라도 있는데, 대부분의 주민이 히치하이킹을 하고 또 대부분의 운전자가 거리낌 없이 그들을 태워 주다니, 이곳은 천국인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건 사고가 많고, 타인에 대한 의심과 조심이 강조되는 '위험사회' 에 살던 사람으로서 보츠와나의 히치하이킹은 무척 낯설고,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나도 길가에 서서 차를 잡았다. 멈춰 선 차에 뛰어가 자리를 잡지 않으면 또 다음 차가 설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모든 사람들의 동작은 재빨랐다. 몇 번의 기회를 놓치고 가까스로 탑승에 성공했다. 버스도 택시도 아닌 자가용이고 차의 종류도 상태도 제각각이지만, 차비는 잔돈 단위까지 깔끔하게 정해져 있었다. 차를 잡은 사람도 태워 준 사람도 거리에 따른 금액을 택시처럼 정확히 알고 있어서 다투는 일도 없었다. 카중굴라에서 프랜시스타운까지 500킬로미터의 거리를, 어느 나라에서보다 수월한 히치하이킹으로 이동했다.  

보츠와나는 길가에서 타조와 기린과 코끼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활하고 아름다운 나라지만, 여름이 다가와 너무 무더웠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GDP가 부쩍 높은 나라답게 숙박비가 무척 비싸 오래 여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프랜시스타운에서 수도 가보로네로 이동해 호스텔 주차장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낸 뒤, 기나긴 세계 일주 여행의 마지막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국경 버스에 올랐다.  
 
보츠와나 타조 보츠와나에서는 길가를 지나는 코끼리와 기린, 타조를 자주 볼 수 있다
▲ 보츠와나 타조 보츠와나에서는 길가를 지나는 코끼리와 기린, 타조를 자주 볼 수 있다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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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라 열차에서 본 아프리카의 노을 타자라 열차에서 본 아프리카의 노을
▲ 타자라 열차에서 본 아프리카의 노을 타자라 열차에서 본 아프리카의 노을
ⓒ 유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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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라 열차가 정차하는 마을의 상인들 타자라 열차가 정차하는 마을의 상인들
▲ 타자라 열차가 정차하는 마을의 상인들 타자라 열차가 정차하는 마을의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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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달동네 생활영화인 늘샘. 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자라, 지리산 골짜기 간디학교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노래합니다. 인디언식(式) 이름은 '땅을 치고 춤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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