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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에서 반사경을 통해 들여다 본 절집의 돌담길.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놀이는 나만의 해찰방식 가운데 하나다.
 금둔사에서 반사경을 통해 들여다 본 절집의 돌담길.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는 놀이는 나만의 해찰방식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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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있는 전라남도 순천에 갔다. 광주에서 국도와 지방도를 번갈아 타고 화순, 보성을 거쳐 갔다. 속도에 구애받지 않고 '느림보' 드라이브를 즐겼다. 고속국도를 이용하면 한 시간이면 거뜬한 거리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해방구'로 묘사된 보성 율어를 지나 주릿재에 차를 세웠다.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유신리 시목마을과 벌교읍 추동리 백동마을을 경계 짓는 해발 355미터의 고개다.

신작로가 생기기 전, 옛길이 새끼줄처럼 산허리를 두루 휘감으며 돌아간다고 '주릿재'라 이름 붙었다. 옛날 머슴들이 고개를 넘기 힘들어 주리를 틀어도 못가겠다고 버텼고, 도둑들이 오가는 행인을 붙잡아 주리를 틀었다고 '주릿재'라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지난 5일 주릿재에서 내려다 본 보성 율어. 율어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해방구'로 그려졌다.
 지난 5일 주릿재에서 내려다 본 보성 율어. 율어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해방구"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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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릿재에 세워져 있는 '태백산맥 문학비' 설명판. 太白山脈의 한자 표기가 ‘太白産脈’으로 잘못 돼 있다.
 주릿재에 세워져 있는 "태백산맥 문학비" 설명판. 太白山脈의 한자 표기가 ‘太白産脈’으로 잘못 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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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릿재에 '태백산맥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설명판에는 소설의 2부가 시작된 곳이 주릿재라고 써 있다. 끝부분에 '太白産脈'이 눈에 띈다. '太白山脈'이 아니다. 본문에서 '벌교'를 '별교'로 잘못 쓴 것은 단순한 실수로 넘겨온 터였다.

이건 뭐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도 잘못 쓴 것 같다. 세우기 전에 검토를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지나면서 본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설명판을 세운 것도 꽤 오래 전이던데...

사진을 찍어두고, 다시 길을 나섰다. 집에서 나오면서 염두에 둔 목적지를 향해서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그날의 목적지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두 시간 남짓 시간을 보냈다.
 
지난 5일 순천 금둔사에서 만난 납월매. 연분홍 매화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난 5일 순천 금둔사에서 만난 납월매. 연분홍 매화가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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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금전산 금둔사로 방향을 잡았다. 납월매가 한두 송이씩 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납월매는 음력 섣달인 12월(臘月)에 피는 매화를 가리킨다.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먼저 피어 다른 매화보다 예찬의 대상이 된다.

예상대로다. 절집에 연분홍 납월매가 하나씩 피고 있다. 납월매는 꽃잎이 두 겹이다. 향기도 진하다. 꽃망울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머금고 있다. 겨울비가 그치면, 경쟁이라도 하듯이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절집의 선방과 선방을 이어주는 돌담도 호젓하다. 찾는 사람이 없어 그 풍경을 혼자서 누린다. 산사에서 맛보는 호사다. 반사경에 비치는 돌담과 오솔길도 멋스럽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보는 느낌도 색다르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낙안읍성민속마을. 지난 5일 해가 지고 성곽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낙안읍성민속마을. 지난 5일 해가 지고 성곽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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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둔사에 딸린 야생의 차밭까지 돌아보고, 집으로 향한다. 낙안읍성민속마을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다. 가로등에 불이 하나씩 들어오고 있다. 민속마을의 초저녁 풍경이 그려진다. 서문 앞에 차를 두고 민속마을로 들어갔다. 고샅을 따라 하늘거리다가 성곽으로 올라가 걸었다.

성곽에서 내려다 본 초가 풍경이 어여쁘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초가집 방에도 등불이 하나씩 켜진다. 한없이 정겨운 옛 고향집 같다. 그 사이 어둠이 초가집 마당에까지 깔렸다.

다소 밋밋한 글이 길었지만 나의 여행법은 이런 식이다. 나의 여행은 집을 나서면서 시작된다. 목적지는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오가는 길에 하는 해찰이 주를 이룬다. 해찰의 연속이다. 발걸음은 사부작사부작, 눈은 사방으로 돌아간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내 아버지의 여행법이었다.

해찰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고, 곁가지에 관심을 갖는 걸 일컫는다. 그 재미가 쏠쏠하다. 운전을 하다가도, 눈에 들어오는 경물이 있으면 차를 세운다. 도로변의 밭이랑이나 산비탈의 선율에 넋을 놓기도 한다. 이파리를 다 떨쳐낸 나무의 매혹적인 자태에 빠지기도 한다.  

아버지뿐 아니라, 모든 것을 손끝으로 만져보는 시각장애인 김갑주 광주장애인종합지원센터 상임이사에게도 여행법을 배웠다. 김 이사는 1급 시각장애인이면서 음식산업을 하는 최고 경영자다. 시력을 잃어서, 삶이 더 건강하고 깊어졌다는 그다.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한다. 그는 여행길에서 눈을 뜨고 다니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넓게 본다. 내 여행의 본보기다.

같은 도로를 타지 않는 것도 나만의 여행법이다. 갈 때 고속국도나 국도를 타면, 올 땐 지방도를 이용한다. 아예 다른 지역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강변 둔치나 산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같은 곳일지라도,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산이 산답고, 들이 들답고, 바다가 바다다운 곳이 남도다.

설명판도 꼬박꼬박 읽어본다. 다음에 다시 가면 또 훑어본다. 궁금한 점은 주변에 묻거나 인터넷을 찾아본다. 어느새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관심이 늘어난다. 기삿거리를 생각해서 부러 눈여겨보기도 한다. 
 
보성 군학마을 풍경.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 재거을 끝낸 이순신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포구다.
 보성 군학마을 풍경. 정유재란 때 조선수군 재거을 끝낸 이순신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포구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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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기는 발품을 팔고 자료를 뒤적이며 썼다. 전통마을이나 노거수를 찾아가는 여행기도 매한가지다. 올해는 5.18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는다. 광주 시내 주요 사적지를 돌아보며 익히고 있다. 올해 욕심을 내고 싶은 분야다.

여행기를 쓸 때 고민하는 건 접근방식이다. 지난 2001년 기자회원으로 가입해 지금까지 3천여 건에 달하는 기사를 썼다. 대부분 남도여행기를 쓰다 보니, 같은 곳을 두세 번 다루기도 한다. 내용은 다르다. 같은 박물관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소개를 한다. 특별전을 중심에 두고, 박물관을 곁들여 소개하기도 했다.

사족 하나. 가끔 사람들한테 오해를 받는다. 전남도청에서 일하며 남도여행기를 쓰다 보니, 무슨 특혜라도 받은 줄. 전혀 없다. 취재를 이유로 여행지를 그냥 드나들지도 않는다. 관람료를 꼬박꼬박 내고 들어간다. 앞으로도 그렇게,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광주 광천동성당에 있는 들불야학의 흔적. 들불야학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윤상원과 박관현 열사가 활동했던 노동야학이다.
 광주 광천동성당에 있는 들불야학의 흔적. 들불야학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윤상원과 박관현 열사가 활동했던 노동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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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해찰, #낙안읍성민속마을, #남도여행, #태백산맥, #금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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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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