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마산역광장에 세워진 이은상 '가고파 시비'가 2013년 3월 14일 아침, 누군가에 의해 페인트 훼손되었다. '노산 이은상'이라는 글자를 중심으로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마산역광장에 세워진 이은상 "가고파 시비"가 2013년 3월 14일 아침, 누군가에 의해 페인트 훼손되었다. "노산 이은상"이라는 글자를 중심으로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창원 의창구 고향의봄도서관 안에 있는 '이원수문학관'.
 창원 의창구 고향의봄도서관 안에 있는 "이원수문학관".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특정 개인의 이름이 붙는 ○○○기념관, 그것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시민의 혈세로 짓는 기념관이라면 아무리 공적이 많고 유명한 인물이라 해도 그들의 경력과 작품에 대해 검증하고 평가하는 것은 절차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당연한 일이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백서편찬위원장이 최근 펴낸 백서 <친일‧친독재가 어깨 펴고 사는 나라>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단체는 지난 20년간 창원마산 등지에서 조두남, 이원수, 유치환, 장지연, 반야월, 남인수, 이은상 등 친일‧친독재자의 기념사업을 막는 활동을 벌였다.

특히 옛 마산시가 '조두남음악관'과 '이은상문학관'을 지으려고 하자 이 단체가 중심이 되어 반대운동을 벌였고, 이런 활동의 영향으로 옛 마산시(의회)는 '조두남'이나 '이은상'의 이름을 버리고 '마산음악관', '마산문학관'으로 이름 지었다.

친일‧친독재 청산을 하자고 하면 으레 나오는 질문들이 있다. 이에 대해 김영만 위원장은 책에서 "친일‧친독재 청산 20년, 수없이 듣고 수없이 답한 11문 11답"으로 정리를 해놓았다.

① 고장의 자산 아니냐?

친일‧친독재를 한 문화예술인들이라도 "우리 고장의 자산이고 자랑인데, 이념적 잣대로 작품까지 폄훼하는 게 옳나"는 주장이 있다.

이에 대해 김영만 위원장은 "기념관을 시민들로부터 헌정 받을 주인공은 현재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시민‧학생들의 표상이 되어 존중과 존경을 받게 된다"고 했다.

장관 등에 대한 국회 청문회와 비유할 수 있다는 것. 청문회 때 후보자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탈탈 털리게 된다. 김 위원장은 "청문회가 무서워서 장관직 제의를 받아도 손사래를 치는 인사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관직이 그런데, 기념관은 한번 건립되면 영구히 시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존중과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존재하기에, 그 주인공은 더 철저하고 혹독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친일, 친독재 경력이 있느냐 없느냐, 그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경중을 떠나 그들의 기념관 건립을 반대한다"고 했다.

② '가고파' '고향의봄'은 전 국민이 애창하지 않느냐?

김영만 위원장은 "기념관과 관련된 작가들의 친일, 친독재가 끊임없이 말썽이 되다보니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명으로 지원금을 받아내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했다. 창원에는 '가고파 거리', '고향의봄 도서관'이 있다.

김 위원장은 "제자들이나 문학동호인과 같은 사적 모임과 공공장소가 아닌 곳에서 100% 자신들만의 회비로 하는 사업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③ 기념관에 공적과 잘못을 같이 전시?

"20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라고 한 김영만 위원장은 "친일‧친독재 행위를 부정하거나 억지 주장으로는 기념관 건립이나 존립이 어렵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일종의 타협안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언뜻 들으면 매우 합리적인 방안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기념관을 짓는 그 자체가 친일‧친독재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기에 반대다"고 했다.

마산역 앞 광장에 세워진 '가고파 시비' 옆에 이은상의 친독재 전력을 적은 '민주성지 마산 수호비'가 있고, '고향의봄 도서관' 안에 있는 '이원수문학관'에는 그의 일부 '친일 행적'이 전시되어 있으며, 마산음악관에서는 조두남이 전시되어 있다.

김영만 위원장은 "지금 이원수문학관이나 마산음악관의 기능이 이제는 친일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일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고 했다.
  
창원 의창구 고향의봄도서관 안에 있는 '이원수문학관' 내 '이원수 친일 작품 전시물'.
 창원 의창구 고향의봄도서관 안에 있는 "이원수문학관" 내 "이원수 친일 작품 전시물".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④ 어쩔 수 없었던 '생계형 친일'이라 볼 수 있지 않나?

김 위원장은 "감히 저항하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조선백성들을 그 누두고 친일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념관이나 기념행사로 말썽이 된 사람들은 문화예술 활동으로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대동아성전 등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찬양하며 조선의 청년들을 일제의 총알받이 지원병으로 나설 것을 독려하고 선동함으로써 일제에 협력한 자들이다"고 했다.

아동문학가 이원수(창원), 문학평론가 조연현(함안), 작곡가 조두남(마산), 박곡가 박시춘(밀양), 가수 남인수(진주), 가수 반야월(마산), 극작가 유치친(통영), 시인 유치환(통영거제), 화가 김은호(진주), 언론인 장지연(마산) 등이 친일부역자들이다.

이들은 거론한 김 위원장은 "그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반민족 친일행위를 하고 있을 때,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가족의 생계도 돌보지 못하고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풍찬노숙을 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수많은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어디 감히 그들을 생계형 친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⑤ 자신의 친일‧친독재 행위를 반성한다면?

2011년 이원수의 딸이 '사과'한 언론보도 등의 사례를 든 김영만 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참회와 사과는 어떤 것일까?"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진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여러분, 저를 위한 기념관은 절대 짓지 마세요. 그것은 제가 우리 민족에게 또 다른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고 하는 것이 진짜 참회하고 반성하는 게 아닐까"라며 "행여 이렇게 참회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하고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김영만 위원장은 "친일, 친독재가 연좌제가 아닌데 아버지 대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이원수 딸이 안타까울 따름이다"며 "차라리 '우리 아버지 기념사업을 중단하시라'고 했다면, 그게 아버지 이원수에게 남은 최소한의 명예라도 지켜드리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⑥ 1000편이 넘는 작품 중에 친일작품은 5편뿐?

이원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원수의 친일작품은 "지원병을 보내며", "낙하산-반공비행대회에서", "보리밭에서-젊은 농부의 노래", "농촌아동과 아동문학", "고도감회-부여신궁 어조영 봉사작업에 다녀와서"가 있다.

김 위원장은 "이원수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고작 다섯 작품 밖에 안 된다고 하지만, 유명한 동시작가인 이원수의 일제말기 문필활동은 독립을 열망하던 조선 민중들에게 절망과 좌절을 안겨준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라고 했다.

그는 "시민이 낸 세금으로 이원수문학관을 유지하고 운영하느냐 마느냐는 친일작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친일을 했느냐 아니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은 시인과 비교했다. 김 위원장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물망에 올랐던 고은 시인은 미투운동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지자체로부터 받은 각종 지원과 혜택을 하루아침에 다 잃었다"며 "미투운동에서 횟수 즉, 양을 따지는 것은 의미 없다. 친일이 미투보다 결코 작은 죄가 아니라 생각한다"고 했다.
  
창원시립마산음악관에 전시되어 있는 '친일' 반야월의 전시물을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백서편찬위원장이 가리키고 있다.
 창원시립마산음악관에 전시되어 있는 "친일" 반야월의 전시물을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백서편찬위원장이 가리키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⑦ 가곡 '선구자'는 왜 사기극? 밀가루 투척은 왜?

옛 마산시는 2001년 '조두남 음악관' 계획을 발표했고, 2003년 5월 29일 '개관식'을 했다. 이 때 열린사회희망연대는 행사에 참석한 당시 황철곤 마산시장한테 밀가루를 투척했다.

가곡 '선구자'는 작사(윤해영), 작곡(조두남) 모두 친일 인사가 만들었다. 그리고 '선구자'는 거짓으로 판명 났다. 옛 마산시(의회)의 진상조사 과정에서 '선구자'의 본래 제목은 '용정의 노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두남의 '선구자' 곡은 박태준의 '님과 함께'를 표절한 것이다. 두 곡의 가락의 거의 같다. 조두남의 '선구자'는 1933년작이라고 본인이 밝힌 바 있고, 박태준 곡 '님과 함께'는 1922년에 나왔다.

⑧ 서정주‧채만식 문학관도 있는데 왜 마산은 안 되나?

서정주와 채만식도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고, 각각 고창과 군산에 문학관이 있다.

김영만 위원장은 "도시마다 역사와 전통이 다르고 시민들의 집단 경험도 다르다"며 "그러나 친일, 친독재를 대접하는 문화나 정서는 대한민국 어디서도 서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다"고 했다.

서정주‧채만식 문학관 반대운동이 있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문학관이 개관되고 나면 반대운동이 몇 배나 어려워진다"며 "우리가 고창, 군산의 친일작가 문학관을 본받아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는 "전국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지자체나 시민운동단체가 있다면 마산, 창원의 사례를 참고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⑨ 이은상의 친일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추문'(이은상을 추앙하는 문인들)은 이은상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은상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논란이다.

그래서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그의 '친독재' 행적이 차고 넘친다며 기념사업을 반대해 오고 있다. 이은상은 창원마산의 자랑인 '3‧15의거'를 폄훼했다.

김영만 위원장은 "14년 전 '마산문학관 운영조례안'이 마산시의회에서 표결에 붙여진 그 날 박중철 마산시의원은 '차라리 현재 상태로 두는 것이 그 분(이은상)의 명예를 살리는 일이고 마산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가져본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박중철 의원의 충고가 진정 이은상을 위하는 말이었다. 그때 멈추었더라면 이은상의 이미지는 추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작 이은상을 욕보이며 두 번 죽이는 사람들은 이은상을 문학관으로 추존하고자 하는 문인들이다"고 했다.
  
창원마산에 있는 '마산문학관'.
 창원마산에 있는 "마산문학관".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창원시립마산음악관.
 창원시립마산음악관.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⑩ 이은상은 이승만의 3‧15부정선거를 비판했다는데?

이승만 정권은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조선일보>는 그해 4월 15일 문화 각계 인사 27명한테 '마산사태를 이렇게 본다'는 제목의 특별기사를 실었고, 이때 이은상은 "불합리, 불합법이 빚은 불상사다"고 했다.

이은상의 말에 대해, 김영만 위원장은 "주어가 생략된 말이다. 이 발언으로 인해 나중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 이은상다운 어법이었다"며 "정부통령 선거 국면 당시 이은상이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면 이 말뜻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잠시 난감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은상의 시각은 이승만과 자유당의 입장과 일차한다. … 이은상은 이승만, 이기붕과 부정선거라는 한 배를 탔으니 입장이 같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며 "이은상은 다른 문항에서도 '지성을 잃은 데모', '비정상적인 사태', '무모한 흥분' 등의 표현으로 3‧15의거와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어 일어난 4‧11민주항쟁을 폄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은상은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 전두환에게도 충정을 다 바친 사람이었다"며 "'가고파'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은상이 진정 가고파 했던 곳이 독재권력의 품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⑪ 마산에서 이은상은?

김영만 위원장은 "마산에서 이은상이 진짜 욕을 듣는 불미한 사건, 이게 사실인가?"라는 제목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은상의 행적을 정리한 김 위원장은 "1982년 사망 당시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위원이었던 이은상은 장례를 '사회장'으로 치르고 묘소는 국립묘지 현충원에 있다"며 "파묘가 되거나 이장해야 할 걱정도 없다. 후손들이 돌보지 않아도 나라가 돌봐준다"고 했다.

이어 "그뿐 아니다. 마산시내 곳곳에 '가고파 비'가 7개나 서 있고, 그가 어릴 적 살던 동네도 그의 호를 딴 '노산동'으로 부르며, 노비산 자락 일대를 '가고파 거리'라 한다"며 "죽어서 이만큼 대접받고 고향사람들이 하루도 몇 번씩 불러줄 이름을 남기고 간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추문'과 관련해, 김영만 위원장은 "이은상을 진정 좋아하고 존경한다면 문학관 타령이 결국은 이은상을 욕보이고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그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문학관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죽은 자를 위한 것인지, 산 자들을 위한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라고 했다.
 
창원마산 '마산문학관' 뜰에 있는 이은상 시비.
 창원마산 "마산문학관" 뜰에 있는 이은상 시비.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태그:#친일, #친독재, #열린사회희망연대, #마산음악관, #마산문학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