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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이렇게 대답해도 되나?' 하고 문득 두려워질 때가 있다. 아이는 말이 점차 늘면서 부쩍 질문이 많아졌는데, 질문의 속도와 범위가 종횡무진이라 아직 예습도 하지 못한 내겐 너무 난도가 높았다. "하늘은 왜 파래?" 같은 질문이야 상상력을 발휘해 대답할 수 있겠지만, "끈끈이주걱은 어떻게 벌레를 먹어?"라든지 "백혈구는 어떻게 세균을 죽여?"라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멈칫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질문이 들어오면 '잠깐만, 한 번 찾아볼게' 하고 휴대폰을 검색하는 통에 이제 아이는 내가 대답에 뜸을 들이면 곧바로 '엄마, 핸드포니한테 물어봐'라고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검색조차 쉽지 않은 질문의 영역이 곧 생겨났다. 바로 '성교육'이었다. 하필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가 큰소리로 '아빠 고추는 크지? 내 친구 고추는 작대"라고 물었던 때, 나는 비로소 새로운 영역이 열렸음을 실감했다.

당시에는 이성을 앞질러 당황스러움이 먼저 솟구쳐 무어라고 했는지도 모르게 일단 엘리베이터에서 황급히 내렸다. 아이에겐 부모가 허둥지둥했던 상황이 먼저 각인됐는지, 그 이후에는 '고추는 부끄러운 거야'라고 말하고 다녔다. 성교육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나라도 '이건 아니지' 싶어 일단 책을 찾았다. 고르고골라 집은 책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심에스더, 최은경 지음, 오마이북 출간)였다.
 
최대한 솔직하게, 차근차근 대화를 나누는 성교육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심에스더, 최은경 지음, 오마이북(2019)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심에스더, 최은경 지음, 오마이북(2019)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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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해도 되나요?>는 책 제목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성교육과 관련된 여러 질문들로 목차가 구성돼 있다. 글은 공저자인 최은경 <오마이뉴스> 기자가 상황을 설명하며 물어보고, 이에 대해 성교육 전문가인 심에스더(일명 '심쌤')이 대답하는 대화 구조로 쓰였다.

책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나오는 질문은 '섹스라는 말, 해도 될까요?'다. 아니 왜 갑자기 섹스부터? 너무 높은 단계에서 시작하는 거 아니야? 의문이 피어오르는 찰나, 아래와 같은 답변이 이어진다.
 
"제가 왜 갑자기 섹스 이야기부터 하는지 궁금하시죠? 섹스를 섹스라고 제대로 부를 수 있으면, 섹스에 대해 정확히 알고 편하게 말할 수 있으면, 아이들과 성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훨씬 자연스럽고 수월해지기 때문이에요" (22쪽)

확실히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신의 몸에 대해 눈을 뜬다. 우리 아이의 경우에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해하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신이 엄마 배 속에서 자라다가 태어났다고 하는데 배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를 몹시 궁금해했다. "엄마 나는 뱃속에서 '이얍!' 하고 나왔어?" 하며 배를 찢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여기저기에서 성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해줘야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출산에 대해 설명해주고는 싶었지만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화제를 돌리곤 했는데 이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솔직하게 차근차근 설명"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있었다. "아빠가 가진 아기씨가 엄마의 성기에 있는 길(질)을 통해 들어와 엄마 아기씨와 만났어. 그리고 그 아기씨가 아기가 되어 뱃속에서 자라다가 다시 그 길을 통해 너가 태어났어."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더니, 아이는 놀랍게도 '아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교육의 '매너'를 지키는 건 부모의 몫이기도

성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어야 하는 건 맞지만, 심쌤은 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때와 장소를 가리는 매너' 역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성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해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성 얘기를 무작정, 큰 목소리로 꺼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심쌤은 이를 '매너'로서 이야기한다. 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성기를 만지고 노는 성 행동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언행을 주변 사람들과 상황에 맞게, 배려하며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성교육의 몫일 것이다. 매너를 가르쳐야 한다고 또 어려운 말로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지금 사람이 많으니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 이야기하자'라고 침착하게 대답하는 것이 바로 교육일 것이다.

또한 성교육에 대한 '매너'는 부모들에게도, 그리고 아이를 대하는 수많은 이들에게도 해당된다. "삼촌 안아주면 이거 사줄게"처럼, 어떤 어른들은 특정한 것들을 매개삼아 아이에게 스킨십을 강요하기도 한다. 심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아이들이 예뻐서 하는 말이겠지만, '남에게 대가를 받으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애정 표현을 할 수 있다'는 나쁜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23쪽)

결국 성교육은, 소통의 '태도'다

이 책의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성교육은 결국 '지식을 어떻게 전달하는가'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보다는 '성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대화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하는 소통의 태도가 핵심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외모 고민하는 아이, 예쁘다고만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두고 심쌤은 오히려 "아이들은 정말 예뻐지고 싶은 걸까요? 더 정확히 말하면, 그저 예뻐지고만 싶은 걸까요?"라고 반문한다.
 
"먼저 스스로를 못났다고 여기는 마음, 예뻐지고 싶은 마음,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면 좋겠어요. 너무 속상해하지도 않고, 너무 걱정하지도 않는 태도로 담담하게 말해주세요. (...)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이런 공감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꾸준하고 일관적인 태도로 어른들의 가치관을 표현한다면, 아이들이 당장은 듣지 않는 듯해도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며 힘을 얻을 거예요." (75쪽)

이런 '공감'의 태도는 스마트폰 콘텐츠와 유튜브에 대한 부모들의 두려움에도 처방전이 된다. '심쌤'은 유튜브를 많이 보는 아이에게도 규제보다는 관심을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무조건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가 즐기는 것을 같이 보고 대화를 나누는 매개로써 활용하라는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성교육의 순간이 온다.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탓에 당황스럽고 놀랄 때도 있지만, 한 번의 실수는 꾸준한 대화로 다시 메울 수 있다.

<이런 질문 해도 될까요?>는 성교육을 매개로 하지만, 단순히 섹스와 몸에 대해 정보를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아이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아이가 성에 대해 눈뜨지 않았더라도, 아이와 건강한 가치관을 함께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부모라면 이 책 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심에스더, 최은경 (지은이), 오마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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