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MBC 대표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의 인기 및 화제성은 예전 같지 않다. 경쟁사의 인기 예능(백종원의 골목식당)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다 연예인들의 사생활, 뒷이야기는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수시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더이상 새롭지 않다. 

여기에 터줏대감 MC 윤종신의 공백도 <라디오스타> 약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객원 MC체제로 매주 새 인물이 찾아오고 있지만 단발성 기용이라 기존 MC와의 원활한 호흡 또한 기대하기 힘든 편이다. 그런데 지난 1일 방영된 올해 첫번째 <라디오스타 >는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던 프로그램이 찾아야 할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 여겨볼 부분이 많았다. 물론 4% 대의 시청률 약세는 여전했지만 시청자들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초대손님을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프로게이머 페이커의 출연
 
 지난 1일 방영된 < 라디오스타 >에 출연한 LOL 게이머 페이커(이상혁)

지난 1일 방영된 < 라디오스타 >에 출연한 LOL 게이머 페이커(이상혁) ⓒ MBC

 
이번 <라디오스타>에서 관심을 받은 부분은 LOL(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 1위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의 출연이었다. 그동안 특집 다큐멘터리나 뉴스 등을 통해 소개된 적은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온라인 게임 팬들, 페이커를 좋아하는 팬들에겐 좋은 기회였다.  

반면 "페이커가 누구야?"라고 생각하는 다수의 시청자 상대로는 자칫 위험한 섭외가 될 수도 있다. 제작진 입장에선 자칫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또한 사실상 일반인이기 때문에 전문 연예인같은 능수능란한 화술을 기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 측면에서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본 방송이 진행되면서 앞서 갖게된 우려감은 곧장 재미로 바뀌게 된다.

물론 이날도 페이커의 수십억 원 연봉설 등 게이머로서의 인생보단 돈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도 없지 않았지만 "선수의 연봉보단 그 사람이 걸어온 길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도티의 지적처럼 방송은 가급적 프로게이머 생활을 중심으로 남다른 페이커의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자칫 신변잡기 위주로 흐를 수 있는 내용에 균형감도 유지한다.

낯선 초대손님 위한 적절한 출연진 배치
 
 지난 1일 방영된 < 라디오스타 >에 출연한 김희철, LOL 게이머 페이커

지난 1일 방영된 < 라디오스타 >에 출연한 김희철, LOL 게이머 페이커 ⓒ MBC

 
특별 출연한 객원 MC 도티(어린이 전문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게임 마니아면서 페이커의 열혈 팬인 김희철을 초대손님으로 함께 불러 요즘 온라인 게임, 인터넷 문화에 익숙치 않은 김국진, 김구라, 안영미 등 고정 MC와 기성 세대 시청자들의 이해롤 도왔다.  

세계 유명 경제지 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에도 이름을 올린 페이커의 주요 활약상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라디오스타>는 출연진에 대한 장벽을 조금씩 낮춰준다. 또 도티의 친절한 설명, 유머 넘치는 김희철의 입담을 첨가해 e스포츠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준다.  

"취미 활동도 없고 술도 안마신다. 책 읽는 것 외엔 딱히 할 일이 없다", "이태원 가본적 없다. 가로수길이 어딘지도 모른다", "은퇴 후엔 기부를 하고 싶다" 등 이야기는 이른바 방탄소년단, 손흥민과 더불어 한국을 세계로 알린 3대장 답지 않은 검소하고 솔직함을 담으면서 보는 이들에겐 놀라움과 존경심을 함께 선사했다.

생소한 출연진의 등장에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는 MC 안영미의 19금 개그에 당황해 연신 물 마시기 급급한 페이커의 모습 등으로 희석하는가 하면 '페이커 덕후' 김희철의 도움을 거치며 이날의 <라디오스타>는 예상 밖 재미를 만들어낸다.

김희철, 정샘물의 의미 있는 이야기
 
 지난 1일 방영된 < 라디오스타 >의 한 장면

지난 1일 방영된 < 라디오스타 >의 한 장면 ⓒ MBC

 
1일 <라디오스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건 페이커였지만 그를 돕기 위해 나선 김희철, 메이크업아티스트 정샘물의 이야기는 재미 이외의 숨은 의미를 전달하면서 새해 첫날에 어울릴 만한 내용을 방송에 담기도 했다.

명품, 고가 스포츠카엔 전혀 취미가 없지만 게임에만 거액을 쓰는 김희철은 이를 이해 못하는 김구라 등 기성세대 MC에게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음주운전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자동차를 처분하고 택시를 이용한다는 평소 일상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주변인들의 가슴 아픈 일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희철은 악플 문제에 대해 강경한 어조로 비판하는 등 평소 생각했던 바를 <라디오스타>에서도 굽힘없이 말한다.

두 자녀의 입양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정샘물은 "입양은 전혀 숨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대단하다라고 하는 말이 불편하다"며 응원보다는 침묵이 좋다는 말로 나름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단순히 재미만 생각했다면 김희철, 정샘물 등의 이야기는 예능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일 수도 있었겠지만 진행자와 출연자들 사이 자연스런 교감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등장하면서 시청자 입장에사도 거부감 없이 공감하면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간 <라디오스타>가 고전했던 건 되돌아보면 웃음에만 집착했던 선택의 오류도 일정 부분을 차지한다. 의외의 출연진 섭외로 재미를 뽑아내는 걸 가장 잘해왔던 게 <라디오스타>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뻔한 초대손님, 신작 홍보로만 흘러가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를 감안하면 유머, 재미, 공감, 감동이 적절히 어우러진 1일 새해 첫날 방영분은 흔들리던 <라디오스타>가 모처럼 제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면서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제공했다. 토크 예능이 힘 못쓰는 요즘이라지만 여전히 이를 필요로 하는 수요층은 분명 존재한다. 그들의 기대감을 만족시키는 데 오랜 시간 큰 역할을 담당해온 <라디오스타>라면 분명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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