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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함께 프라하(Prague) 구시가의 중심부, 구시가 광장을 향해 걸었다. 구시가 광장 한가운데로 들어서면 주변을 압도하는 한 동상을 만나게 된다. 종교개혁을 주장한 얀 후스(Jan Hus)의 동상이다. 14세기 말 체코의 기독교 신학자인 얀 후스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타락할 대로 타락한 교회가 초기 기독교의 믿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가톨릭 종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1415년에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그의 사후 개신교 지지자들은 가톨릭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1434년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얀 후스의 사상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그의 사상과 활동은 오늘날에 큰 자리를 잡게 된 개신교의 불씨가 된 것이다.
 
얀 후스 동상 그의 사상은 개신교 활동의 불씨가 됐다.
▲ 얀 후스 동상 그의 사상은 개신교 활동의 불씨가 됐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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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이 얀 후스의 동상을 처음 보면서, '동상만을 보고도 감명을 받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다. 다시 보아도 그때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는다. 구시가 광장의 중심에 우뚝 선 거대한 얀 후스의 입상은 오늘도 세상을 선도하는 듯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호하는 듯한 체코 시민들의 청동상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동상을 주변으로 체코 구시가의 중요한 건축물들이 구시가를 내려다보고 있다. 후스의 동상은 그가 생전에 강론을 하던 틴 성당(Church of Our Lady before Tyn)을 바라보고 있다. 높이가 80m에 이르는 틴 성당의 쌍탑은 프라하 시내 어디에서든 보여서 나에게 길잡이의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다. 

사람들이 시계탑 앞에 모여든 이유
 
틴 성당 이 성당의 쌍탑은 프라하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다.
▲ 틴 성당 이 성당의 쌍탑은 프라하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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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년에 완공된 틴 성당의 쌍탑이 황금빛 노을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쌍탑 위에 마치 아기들이 안기 듯 박혀 있는 작은 탑들이 너무나 이색적이었다. 나는 이 성당이 왜 이렇게 신비롭게 보이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쌍탑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다가 성당 앞에 성당을 둘러싸듯이 서 있는 건축물들 때문에 더 은밀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틴 성당의 입구는 성당 앞 상가 건물에 잘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숨어있다. 그래서 나는 틴 성당을 둘러싼 블록을 한바퀴 빙 돌면서 입구를 찾았다. 거대한 성당은 구시가 광장을 면한 서쪽에 작은 입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온통 황금빛으로 화려했다. 얀 후스의 개신교파와 가톨릭파와의 전쟁을 지켜보았을, 황금 장식의 온갖 성화들이 아직도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놀랍게도 성당 입구에는 저녁에 성당 내부에서 음악회가 열린다고 적혀 있었다. 이 역사적인 성당이 아직도 시민들 곁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부러웠다.
  
구시청사 앞 시계탑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 구시청사 앞 시계탑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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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정말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구 시청사 앞으로 향했다. 천문시계 바로 아래에는 더 이상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구 시청사에는 매시 정각을 알리는 천문시계, 프라하 오를로이(Pražský orloj)가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답고 유명한 천문시계에서는 매시 정각마다 전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재미있는 쇼가 펼쳐진다. 

시계가 6시 정각을 알리자 위쪽 시계의 우측에 서있던 해골이 줄을 당겨 종을 울렸다.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이 종을 쳐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해골 옆에는 여러 인형들이 있다. 기타 치는 인형은 탐욕스런 사람, 지팡이 짚은 인형은 욕심 많은 사람, 거울을 보는 인형은 증오가 깊은 사람을 나타낸다. 이 사람 인형들은 모두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해골을 본 죽음의 순간에 사람들이 다급해진 모습이다.

해골이 또 줄을 당기자 시계판 위에 있는 두 개의 창문이 열렸다. 이 창문에서 12사도(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핵심 인물들)가 나타나더니, 시계판 앞을 지나가며 죽음을 맞는 인간 인형들을 지켜본다. 12사도가 모두 지나가자 황금 수탉이 울음을 울었다. 새벽이 오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형들의 움직임은 끝이 났다. 명성에 비해 천문시계의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천문시계 정시를 알리는 인형들의 쇼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 천문시계 정시를 알리는 인형들의 쇼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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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공부를 하고 왔기 때문인지 천문시계탑은 놀라워보였다. 사실, 시계탑 인형들의 퍼포먼스도 유명하지만 시계탑에 붙어 있는 2개의 천문시계가 더욱 놀랍다. 라틴어와 기호를 통해 해와 달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위쪽의 시계판은 동지와 하지, 밤낮의 길이, 년도, 월일과 시분을 보여주고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 위쪽 시계는 왕과 귀족 등 천문학을 공부한 귀족들을 위한 시계였다.

아래쪽의 시계에는 프라하의 상징인 세 개의 탑이 시계판 가운데의 작은 원 안에 들어 있다. 중심원 바깥에는 황도 12궁, 즉 별자리가 그려진 열 두 개의 작은 원이 감싸고 있고, 그 바깥으로는 절기가 그려진 12개의 큰 원이 둘러싸고 있다.

놀랍게도 이 12개의 그림판도 1년에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의 12시 방향에 고정된 황금바늘이 있는데, 이 바늘에 걸리는 그림이 해당 별자리와 절기가 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백성들이 24절기를 보고 농사를 했듯이 아래쪽 시계는 당시 체코의 일반 시민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리던 유용한 시계였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카를교 중세시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다.
▲ 카를교 중세시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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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많은 인파를 떠나 추억 속의 카를교(Charles Bridge)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학생 때 배낭여행을 다니며 접했던 물안개 위의 카를교를 나는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카를교를 향해 걸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의 제일 가는 명소에도 그 이름값을 확인하려는 듯한 수많은 여행 인파가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체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 4세(Karel IV)가 블타바(Vltava) 강 위에 세운 카를교는 강 우안의 구시가지와 강 좌안의 프라하성 지역을 연결해 주고 있다. 16개의 품격 있는 아치가 돋보이는 카를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서 오늘도 중세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우리는 원래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운 다리 입구의 탑을 지나, 길이 520m에 이르는 다리 위에 올라섰다. 중세시대에 마차가 다니던 다리가 지금은 보행자 전용 다리로 사용되고 있어서 편안하게 다리 위를 걸을 수 있었다. 다리 위에는 17세기부터 300년에 걸쳐 설치된 30개의 조각상들이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이 조각상들은 성경에 나오는 성인들이거나 그 이후 기독교 활동에서 성인으로 추앙 받은 성인들이다.

다리 위에 일렬로 늘어선 성인상 중에서도 유독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조각상이 있다. 많은 이들이 만져보려고 하는 성인은 바로 성 얀 네포무츠키(Svatý Jan Nepomucký)이다.

그는 보헤미아의 국왕 바츨라프 4세(Wenceslaus IV) 의 두번째 부인인 소피(Sophie) 왕비로부터 불륜과 관련된 고해(告解) 내용을 들었으나 그 비밀을 끝까지 지키다가 죽임을 당한 신부였다. 그는 왕비의 고해 내용을 말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거부하다가 혀가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은 끝에 카를교 아래 블타바 강으로 잔인하게 내던져졌다.
 
네포무츠키 성인상 그의 좌대에 새겨진 부조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닿아 반질거린다.
▲ 네포무츠키 성인상 그의 좌대에 새겨진 부조들이 사람들의 손길을 닿아 반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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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포무츠키의 머리 위에는 황금빛 별 5개가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많은 손길이 닿은 것은 네포무츠키 상의 좌대이다. 좌대에는 그가 강에 거꾸로 떨어지는 순교장면을 새긴 부조와 함께 그가 고해내용을 전했다는 개를 새긴 부조가 유난히 반질거리고 있었다. 이곳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아내와 줄을 서서 소원을 빌었다. 옛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 다리에 얽힌 스토리텔링에는 믿음을 지키다 죽어간 한 인간의 아름다움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카를교에서 본 전경 프라하성과 블타바 강의 전경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 카를교에서 본 전경 프라하성과 블타바 강의 전경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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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이 다리 위에서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했다. 유럽 중세 건축의 걸작인 다리도 아름답지만 다리에서 보는 프라하의 전경은 유럽의 어느 도시도 결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카를교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변치 않고 빛나는 카를교 위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이 아름다운 전경을 벗어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프라하 시내를 거닐다가 이 카를교를 몇 번이나 다시 찾았다. 그래도 카를교는 추억 속에 계속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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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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