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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란 곳은 대체로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하달되는 지시를 적절히 이행하기 위해 명확한 위계 질서가 잡혀 있다. 특히나 규모가 큰 한국 회사들의 직원 구성을 흔히 피라미드에 비유하곤 하는데 이 구조에서는 적은 수의 윗사람들이 많은 수의 아랫사람들을 부린다. 다른 기업에서 이직을 해오거나 오너의 친인척이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의 직장 생활은 이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된다.

직장상사는 내 운명

직장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하는 것은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는 출생과 비슷한 것 같다. 신이 신생아를 부모들에게 무작위로 배정하는 것처럼 규모가 큰 조직의 인사관리 부서도 신입 직원들을 부서에 무작위로 배정한다. 부모를 내맘대로 선택할 수 없듯이 상사도 내 입맛대로 선택할 수 없다. 어떤 상사를 만나게 될지는 운명에 달려 있다. 

어떤 부모를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인생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는 것처럼 어떤 상사를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 직장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진다. 직장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절반 이상은 상사와의 궁합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상사의 리더십 스타일과 내 스타일이 운좋게 잘 맞는다면 행복할 것이지만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물론 상사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 행복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 거의 접해 보지 못했다. 직장에서 오가다 만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상사욕을 하며 대화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 하나 만족할 만한 상사를 만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나도 상사욕을 하는 직원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가장 보통의 상사
 가장 보통의 상사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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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짧다고 하기엔 길고 길다고 하기엔 좀 부족한 듯한 어중간한 정도의 내 직장생활. 그동안 운명이 점지한 많은 상사들이 나를 거쳐갔다.

팀장만 따져보면 지금이 다섯 번째, 팀장 아래 소그룹을 리드하는 중간 관리자를 기준으로 보면 여덟 번째다. 직장에 있는 동안 내 직속 리더는 총 열세 번이 바뀐 셈이다.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으로 보면 거의 1년에 한 번씩이다.

이게 정상적인 회사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회사는 아직까지 망하지 않았다. 조직에서 리더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리더십 교육을 전담하는 팀도 있는 회사인데 왜 이렇게 리더가 자주 바뀌는 걸까. 뭐 조직운영상 사정이 있겠지만 직원 입장에선 리더가 자꾸만 바뀌는 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다. 매번 적응해야 하니까!

달갑지 않아도 어쩌겠는가! 직장을 그만둘 것이 아니라면 어떤 상사를 만나든 적응해내야 한다. 그나마 누군가 팀장급 정도에 앉게 되면 회사에서 공통 교육을 시켜서 그런지 직원들에게 업무상 요구하는 수준은 대동소이했다. '개인보다 조직이 우선이다', '야근은 조직을 위한 희생이다', '희생에 대해서는 보상을 해주겠다(초과근무 수당이 아니라 인사고과를 잘 주겠다는 얘기)'.  

그마나 통일성은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위와 같은 요구에 상사들과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난 단호하고도 지속적이고 통일성 있게 정시퇴근으로 맞섰다. 지금까지 만난 상사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사고과라는 권한을 활용해 나를 길들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공손히 인사하지만 단호하게 돌아서 퇴근하는 직원을 강제로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상사들은 나를 설득하거나 길들이려 하는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저렴한 인사평가 점수로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단지 무급 초과노동으로 회사에 충성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다는 게 억울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가 세운 리더이고 그 리더가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회사는 리더편이다. 현실이 그러니 참고 지낼 수밖에.

리더십 없는 상사는 견디기 힘들다

상사들의 이런 요구에는 굳은 의지로 대응했고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 견디기 힘든 건 상사들의 리더답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말로는 조직을 위한다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해 윗사람 눈치만 살피는 상사,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것이라며 합리화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상사, 팀원의 성과로 자기 포장하기 바쁜 상사,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이용해 협박을 일삼는 상사.

그동안 나를 지나쳐간 많은 상사들 중 상당수가 이런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상사는 팀원들을 모아놓고 팀 운영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곤 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중은 절이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중이 싫어서 절을 떠납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회사는 괜찮았고 너님이 싫었다).

이런 상사들을 만날 때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안 그래도 직장에서 일하는 의미를 찾기가 어려운데 이런 상사를 만나면 시키는 일조차도 하기 싫어진다. 그냥 해야 하는 최소한의 선만 지키면서 매우 소극적으로 일하게 된다. 이 사람도 어서 지나쳐가길 고대하면서... 이런 모습은 회사에게도 개인에게도 큰 손해다.

이런 상사 어디 없나요?
 
 진정한 리더십을 기다린다
 진정한 리더십을 기다린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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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들의 스타일과 요구가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리더란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구성원들이 대체로 인정할 만한 공통적인 리더십 모델은 있다.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상사, 구성원의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면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상사, 솔선수범하는 상사, 소통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를 가진 상사를 만나고 싶다.

아직까지는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상사를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상사가 한 사람 있었다. 그도 물론 모든 구성원들에게 좋은 리더는 아니었다. 어떤 팀원들에게는 최악의 리더로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줬다. '쟤가 집에는 일찍 가지만 뭔가 하나 해낼 거야'라고 말해주곤 했다. 이 한 가지 때문에 그와 함께 있는 동안 내가 가진 역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었다.

조직에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구성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는 리더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의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그들이 가진 역량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리더가 있다면 회사가 구사하는 그 어떤 당근과 채찍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아, 이런 리더가 없으니까 자꾸만 이상한 인사제도를 만들어내 사람들과 조직을 망치고 있는 것일지도.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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