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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주 5일째 되던 날 첫 태동이 있었어요."

윤민채(26)씨는 임신기간 일기를 썼다. 아기와 함께 있는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첫 태동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혼전 임신이었지만, 한번도 낙태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혼자서 아이를 기르겠다고 결정했을 때 그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

민채씨에게는 꿈이 있었다. 일찍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엄마에게도 힘이 될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다. 그는 17세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아둔 돈이 꽤 되었다. 그 돈으로 집을 떠나 자취를 시작했다. 빨리 사회로 나가고 싶었다. 직장도 구했다. 병원에서 간호보조 일을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점수를 높게 받아 간호대에 입학할 계획이었다. 그 사이 3살 많은 남자친구가 생겼다. 재미있고 친절한 남자친구는 삶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민채씨는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간호대에 갈 수 있는 성적에는 못 미쳤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아기가 생겼다. 임신 사실을 안 순간부터 민채씨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 이외의 선택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 아빠는 달랐다. 그는 민채씨에게 주변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줄곧 출산에 반대했다. 낙태 얘기도 했고, 심지어 낳아서 버리라는 말까지 했다. 그들은 매일 싸웠고, 민채씨는 매일 울었다. 결국 아이 아빠는 '너 좀 혼나봐라'는 심산으로 자기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신한 민채씨를 만나는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의 친할아버지를 보며 민채씨는 더욱 속이 상했다. 결국 임신 8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는 아이 아빠와 결별했다.

'헤어진 뒤 연락이 온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민채씨는 두 번 정도 있었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 아이 아빠가 임신한 민채씨의 자취방에 와서 옥신각신하다 화장실 유리문을 손으로 쳐서 깨뜨린 것을 계속 내버려두었다가, 아기가 생후 한 달쯤 되었을 때 와서 고쳤다. 그때 그는 아기를 보고 펑펑 울었다. 민채씨는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를 용서했다.

그 후로 돌 전에 한 번 더 연락이 와 아기를 보여달라 해서 보여줬다. 그러나 아이가 4살쯤 되었을 때 아이 아빠의 새 여자친구가 전화해 아이 문제를 캐묻자 민채씨는 선을 그었다. '그동안 엮이고 싶지 않아서 양육비를 안 받았는데, 이런 식이면 지금까지의 양육비를 청구할 것이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민채씨는 그냥 각자의 선택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아이 아빠도 스물두 살밖에 안 되었으니, 무섭고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으며 '그렇다면 당시 열아홉 살의 민채씨는?'이라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윤민채씨는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네이버 카페와 인터넷 채팅 모임방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아이 엄마들이 민채씨의 사정을 듣고 택배로 출산 육아 용품을 보내왔다.  그는 아기 옷이 한 보따리 들어 있는 택배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손편지 때문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윤민채씨는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네이버 카페와 인터넷 채팅 모임방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 온라인에서 만난 아이 엄마들이 민채씨의 사정을 듣고 택배로 출산 육아 용품을 보내왔다. 그는 아기 옷이 한 보따리 들어 있는 택배 상자 속에 들어 있던 손편지 때문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 김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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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한부모 성장TV' 운영하며 당당히 홀로 육아

아이 아빠와 헤어지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나가기로 결정한 윤민채씨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출산과 육아에 관한 책들을 사서 혼자 공부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꾸준히 돈을 모았다.

"출산 전후로 SNS에서 만난 분들이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네이버 카페와 인터넷 채팅 모임방을 통해 정보를 많이 얻었거든요. 온라인에서 만난 아이 엄마들이 제 사정을 듣고, 택배로 출산 육아용품을 엄청 챙겨주셨어요. 그분들이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출산준비가 다 되었죠."

그는 아기 옷이 한 보따리 들어 있는 택배상자 속에 들어 있던 손편지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많은 이들이 민채씨를 응원했다. 그때 교류했던 사람들 중 94년생 아이를 낳은 동갑 모임은 3, 4년 정도까지 이어졌고,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도 했다.
 


온라인상으로 만난 낯선 이들의 응원과 아낌없는 도움은 민채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도 나중에 그렇게 남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는 지금 '한부모성장 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민채씨는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당당하게 잘 살 수 있고, 아이를 더 잘 기를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주위의 한부모들과 많이 나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한부모들이 힘들어하는 지점이 그와는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싱글맘들은 아이를 혼자 기른다는 것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거나 늘 미안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계획해서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생긴 뒤의 모든 결정은 전부 제 의지에 따른 것이었으니까요. 어차피 혼자 기르고, 숨기려고 해봤자 변하는 건 없거든요. 오히려 제겐 아이가 자랑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한부모들 스스로 생각을 바꾸면 당당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을 넘어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한부모들에게 하고 싶어서 유튜브를 찍기 시작했다.

육아와 일자리 병행, 너무나 어려운 일

물론 윤민채씨에게도 힘들었던 순간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부딪힌다. 아이가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모아두었던 돈이 떨어졌다. 천주교에서 하는 미혼모시설인 '모니카의 집'에 들어갔다. 난생 처음 짜인 일정에 맞춰 집단 생활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민채씨에게는 스트레스가 됐다. 식생활을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간 수치가 올라가고 원형탈모 증상까지 생겼다. 계속 고열이 났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오자 원장수녀님은 '아이를 맡아줄 테니, 하루만 자유롭게 나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니 정말 열이 내리며 기력이 회복됐다. 홀로 출산과 육아를 도맡으며 쉴 새 없이 달려왔던 그에게 그 하루가 그만큼 귀했다.

그곳에 있으면서 민채씨는 부지런히 자기계발을 하고 돈을 모았다. 주변사람들이 '그만 좀 하라'고 말릴 정도였다. 그곳에서 그는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땄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2015년 7월 민채씨는 자립했다. 그동안 모은 돈이 1000만 원 정도 되었다.

혼자 살아갈 자신이 있었지만,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소위 말하는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일자리를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그 전에는 이력서를 넣어서 하대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아르바이트조차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3개월 동안 극한 어려움을 겪었다.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점심, 저녁을 먹여 오고 자신은 굶는 날들이 많았다. 한부모지원센터에서 보내온 생일 케이크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안 되겠다 싶어 원장수녀님께 연락해 미혼모 3차 보호시설인 모자원을 알아봤다. 수녀님은 일찍 얘기하지 않았다고 나무라며, 바로 모자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모자원에 들어간 뒤 민채씨가 실습했던 종합병원 의사선생님으로부터 간호조무사로 일해달라는 연락이 와서 취업도 됐다. 그렇게 모자원에서 2년을 보내고 LH 임대주택 서비스를 받아서 다시 자립했다.

우리 그냥 행복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되나요?

민채씨가 아이 엄마라는 사실을 밝히면, 꼭 귀찮은 질문들이 따라온다.

'애 아빠는 뭐해? 결혼은 언제 했어? 둘째는 안 낳아?'

이 질문은 그가 받을 것들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늘 예사로 이런 것들을 묻는다. 몇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난 뒤 그는 묻기 전에 먼저 얘기하는 길을 택했다. 직장에서도 자기소개를 하게 되면, 아이를 혼자 기른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 얘기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민채씨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거기서 멈춘다. 그리고 응원해 준다. 민채씨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른 한부모들에게도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왜 우리는 얘기도 하기도 전에 겁먹고 숨기려고 할까요? 똑같은 엄마인데 왜 우리는 아이가 있는 것을 숨겨야 되죠?"

물론 가끔은 대놓고 비난하며 상처 주는 사람들이 있다. 한번은 민채씨가 면접을 보러갔는데, 면접관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책임감 없다,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키우려 하니? 남들이 보기엔 네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넌 너무 철없고 아이한테 못할 짓을 한 거야."

민채씨는 순간 놀랐지만, 바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민채씨 자신의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많은 한부모들이 남들의 시선을 걱정하는데, 남들의 편견을 의식하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럴 힘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아이와 자신의 삶에 쏟아 붓는 게 옳지 않겠는가?

아이가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는 민채씨만 당당하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하루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민채씨 아들에게 '아빠' 얘기를 했다.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 아빠 없는데?"라고 하자, 그 아이는 대뜸 "불쌍해"라고 했다. 민채씨가 "친구야, 왜 불쌍하다고 생각해?"라고 물으니, 그 아이는 "아빠가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아들은 저만치 그네를 타며, "나는 원래 아빠 없는데"라고 무심히 말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민채씨는 아들에게 그 친구가 아직 배우지 않은 내용이라 몰라서 그러니, 다음에 혹시 또 그런 얘기하면 네가 알려주면 된다고 말해줬다. 그러고 보니 유치원, 어린이집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가족(양부모 혈연가정)'만 있는 것처럼 교육이나 행사를 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서 아이들이 편견을 익히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일어난다.

"아이랑 나, 우리끼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 사회가 그대로 두지를 않아요. 가해자가 따로 없는데, 사회 전체가 가해를 하는 상황이랄까요? 한부모 가정이 154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소수도 아닌데. 그리고 소수라 하더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냥 여러 가지 가정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인데요. 조손 가정도 있고, 친척이 기르는 경우도 있고…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지 않듯이 가족의 모습도 다양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서로 다를 뿐이지 이상하거나 잘못된 건 아니죠."
 
윤민채씨 가족 “아이랑 나, 우리끼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 사회가 그대로 두지를 않아요. 가해자가 따로 없는데, 사회 전체가 가해를 하는 상황이랄까요? 한부모 가정이 154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소수도 아닌데. 그리고 소수라 하더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냥 여러 가정 형태 중 하나일 뿐인데요. 조손 가정도 있고, 친척이 기르는 경우도 있고….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지 않듯이 가족의 모습도 다양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서로 다를 뿐이지 이상하거나 잘못된 건 아니죠.”
▲ 윤민채씨 가족 “아이랑 나, 우리끼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꾸 사회가 그대로 두지를 않아요. 가해자가 따로 없는데, 사회 전체가 가해를 하는 상황이랄까요? 한부모 가정이 154만이라고 하더라고요. 소수도 아닌데. 그리고 소수라 하더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냥 여러 가정 형태 중 하나일 뿐인데요. 조손 가정도 있고, 친척이 기르는 경우도 있고….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지 않듯이 가족의 모습도 다양할 수 있는 거잖아요. 서로 다를 뿐이지 이상하거나 잘못된 건 아니죠.”
ⓒ 윤민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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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들을 위한 회사 설립하는 게 꿈

그는 간호조무사, 마케팅, 웹디자인 등 다양한 일을 해보았고, 지금도 재택 근무가 가능한 많은 일을 배우고 또 하고 있다.

"현재는 프리랜서이기는 하지만 한부모들이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에요. 한부모들이 아이 보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거나, 출근시간을 아이에 맞춰서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대형회사에서는 인건비를 절감해서 효율성을 높이고 싶어하니, 필요할 때 필요한 인력을 필요한 만큼 고용하는 한부모 인력풀을 만들어 외주를 받는 거죠."

그렇게 일종의 업무대행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지 민채씨가 배우고 해보는 것이 중요하기에, 지금은 될 수 있는 대로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 있다. 그가 한부모회사를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한부모들이 일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아이와 함께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저는 친구들이 '독한 년'이라고 할 정도로 너무 열심히 살았어요. 미혼모시설에 있을 때는 수녀님도 '제발 좀 쉬라'고 했죠. 학원도 일부러 안 보내주려고 하시기도 했어요. 저는 못 먹어가면서도 돈을 계속 모으고 그랬죠. 그때는 도움이 됐겠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내가 행복하고 아이도 같이 행복한 게 우선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이젠 좀 더 여유를 가지려고 하죠. 그때와 똑같은 시기가 와도 여유를 갖고 감사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세상이 이렇게 생겼으니, 개인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어왔다. 그렇지만 이제 대한민국도 사회가 개인을 배려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나라가 됐다.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그런 사실을 알기만 한다면,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불안해하며 마음의 빗장을 꼭꼭 닫고 개인만 탓하는 '지옥'은 사라질 수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감싸 안는 '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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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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