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운 선수(오른쪽)

정다운 선수(오른쪽) ⓒ ufc korea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 21일 부산의 밤은 '좀비'로 인해 뜨거웠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UFC 파이트나이트165 대회 메인이벤트에서 전 라이트급 챔피언 프랭키 에드가를 1라운드3분18초 만에 KO로 제압하며 관중들을 열광시켰다. 정찬성은 유효타에서 46-9라는 일방적인 차이로 앞섰을 만큼 압도적인 기량으로 UFC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7시간15분) 옥타곤에서 싸웠던 '완성형 파이터' 에드가를 제압했다.

정찬성은 경기가 끝난 후에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잊지 않았다. 정찬성은 22일 개인 SNS를 통해 "에드가의 결정 덕분에 부산 경기가 열릴 수 있었다. 2주 만에 부산까지 와서 싸우겠다는 결정을 내린 에드가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부산 대회 출전을 수락한 에드가의 결정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에드가 역시 "코리안 좀비의 멋진 경기에 경의를 표한다"며 정찬성의 승리를 축하했다.

정찬성으로 인해 뜨거운 하루였지만 이날 부산에서는 정찬성 외에도 4명의 한국인 파이터가 옥타곤에서 승리를 만끽했다. 물론 모든 선수들의 승리가 다 뜻 깊고 가치 있었지만 정찬성을 제외하고 관중들의 가장 많은 환호를 이끌어 낸 파이터는 따로 있었다. 2015년 프로에 데뷔해 4년 만에 옥타곤에서 2연속 피니시 승리를 거둔 '격투 강백호' 정다운이 그 주인공이다.

호기롭게 UFC에 진출했다가 한계 깨달은 양동이와 임현규

UFC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합격투기 단체로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단체에서 날고 기던 선수들이 총 집결해 자웅을 겨룬다. 따라서 중소 단체의 챔피언 출신 파이터들이 호기롭게 UFC에 진출했다가 쓴맛을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한국인 파이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UFC의 높은 벽을 깨달았던 대표적인 파이터가 현재 국내 격투 단체 더블G FC에서 활약하고 있는 '황소' 양동이와 '에이스' 임현규다.

2007년 프로파이터로 데뷔한 양동이는 'Deep, 센코쿠,HEAT 등 아시아의 여러 단체에서 활약하며 9전 전승8KO1서브미션이라는 완벽한 전적을 기록하며 UFC에 진출했다. 유도와 태권도를 베이스로 그라운드&파운드라는 비교적 단순한 경기스타일을 가지고 있지만 근력이 워낙 뛰어나 세계무대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옥타곤에서 양동이의 성장 속도는 격투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UFC와 계약했던 양동이는 5년 동안 옥타곤에서 2승3패라는 평범한 성적을 남기고 2017년2월 UFC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승리한 두 경기는 모두 KO였지만 판정으로 패한 3경기에서는 단순한 스타일의 한계가 드러나며 격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작년 신생 단체 더블G FC와 계약한 양동이는 더블G FC에서 1승1패를 기록한 후 올해 추성훈이 속한 ONE챔피언십으로 임대됐다.

201cm의 압도적인 리치를 자랑하는 웰터급의 임현규도 괌을 기반으로 하는 격투단체 PXC 웰터급 챔피언의 자격으로 지난 2013년 UFC에 진출했다. UFC 진출 후 2경기 연속 KO승리를 따낸 임현규는 2014년1월 타렉 사피딘과 명승부를 펼치며 김동현의 뒤를 이을 동양인 웰터급 파이터의 차세대 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임현규는 축복 받은 하드웨어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이내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2015년5월 닐 매그니전에서 UFC 진출 후 첫 KO패를 당한 임현규는 2016년 8월에도 마이크 페리에게 1라운드 KO로 무너졌다. 급기야 2017년9월에는 임현규보다 신장 10cm, 리치 20cm가 작고 이날 UFC 데뷔전을 치른 아베 다이치와의 한일전에서 판정으로 패하며 UFC와의 계약이 끝났다. 아베가 임현규전 승리를 끝으로 연패를 당한 채 UFC에서 퇴출된 것을 고려하면 임현규의 옥타곤 적응 실패는 격투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옥타곤 데뷔 후 2경기 연속 피니시 승리, 정다운의 무한한 잠재력

중학 시절 권투선수로 활약하던 정다운은 한국의 명문 MMA도장으로 꼽히는 코리안탑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종합 격투기 훈련을 시작했다. 신장 194cm에 팔길이 199cm라는 축복 받은 신체조건을 가진 정다운은 2015년 프로 무대에 데뷔해 데뷔전을 1라운드 KO승으로 장식했다. 이후 곧바로 연패를 당하기도 했지만 이는 정다운이 더 높은 곳으로 성장하기 위한 작은 시련일 뿐이었다.

헤비급으로 데뷔해 라이트 헤비급에 정착한 정다운은 HEAT와 Art of War, TFC 같은 국내외 크고 작은 단체에서 8연승을 거두며 아시아 무대가 좁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국 정다운은 지난 4월 TFC에서 함께 활약하던 '닌자 거북이' 박준용과 함께 UFC 진출에 성공했다. 특히 정다운은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초로 중량급인 라이트 헤비급 파이터로 UFC에 진출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정다운은 지난 8월 중국에서 열린 옥타곤 데뷔전에서 러시아의 하디스 이브라기모프를 상대해 초반 이브라기모프의 타격에 밀려 크게 고전했다. 하지만 수 많은 유효타를 허용하면서도 이브라기모프가 지쳐 간다고 판단한 정다운은 침착하고 견고한 수비를 통해 이브라기모프의 타격을 견뎌냈다. 이브라기모프의 공세를 버틴 정다운은 3라운드 반격과정에서 스탠딩 길로틴 초크를 성공시키며 이브라기모프의 항복을 받아냈다. 

21일 부산에서도 정다운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199cm에 달하는 리치가 장점인 정다운은 210cm의 팔길이를 자랑하는 왼손잡이 타격가 마이크 로드리게스를 만나 큰 고전이 예상됐다. 하지만 정다운은 침착하게 거리를 재다가 경기 시작 1분 만에 로드리게스의 안면에 강력한 오른손 펀치를 꽂으며 64초 KO승리를 만들어냈다. 격투기 데뷔 후 한 번도 KO패가 없었던 로드리게스에게 데뷔 첫 KO를 선사한 것이다.

UFC 라이트 헤비급은 40대의 다니엘 코미어가 2위, 글로버 테셰이라가 10위, 자카레 소우자가 15위, 심지어 은퇴를 선언한 알렉산더 구스타프손도 여전히 7위에 올라 있다. 그만큼 세대교체가 시급한 체급이라는 뜻이다. 물론 단 두 번의 승리로 정다운이 라이트 헤비급의 랭커를 노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양동이 이후 UFC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중량급 파이터가 없는 현실에서 신예 정다운의 깜짝 등장은 격투팬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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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N 165 정다운 격투 강백호 마이크 로드리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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