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포스터

<아이리시맨> 포스터 ⓒ 넷플릭스 코리아


한 국가의 역사에는 긍지와 자부심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이 있으면 밤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도려내고 싶은 어두운 부분이 있다. <아이리시맨>은 이민자들의 국가 미국의 정체성을 갱스터무비의 색으로 풀어낸다. 찰스 브랜드의 논픽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국의 유명 미제사건인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다룬다.

영화는 두 번의 시간이동을 보여준다. 새하얀 백발과 주름이 가득한 노인 프랭크 시런은 자신이 페인트공(청부살인업자를 뜻하는 속어로 피가 페인트처럼 벽에 튄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다음으로 시간은 프랭크의 50대 시절을 향한다. 프랭크는 결혼식 참석을 위해 차를 운전한다. 비행기를 타기 싫어하는 러셀 버팔리노를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차에는 프랭크 부부와 러셀 부부가 탑승한다.

잠시 차를 정차하고 아내들이 담배를 피우는 사이 러셀은 차로 건너편의 주유소를 가리키며 기억나느냐고 묻는다. 프랭크는 기막힌 우연이라며 약 20년 전 러셀을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운송업을 하던 프랭크는 창고 직원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물품을 몰래 빼돌린다. 하지만 재수 없게 걸려 일거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프랭크는 변호사 윌리엄의 도움으로 위기를 탈출한다.
 
 <아이리시맨> 스틸컷

<아이리시맨> 스틸컷 ⓒ 넷플릭스 코리아


재판장에서 잘못한 건 프랭크지만 판사는 오히려 회사 측을 탓한다. 윌리엄을 따라간 축하연에서 프랭크는 주유소에서 자신의 차를 수리해 줬던 남자 러셀을 만나게 된다. 그가 필라델피아의 마피아 보스 안젤로 브루노와 함께 있는 걸 보고 프랭크는 러셀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러셀의 사촌인 윌리엄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연결시켜 준다.

이 두 번의 과거는 각각 러셀이 무엇을 잃는지를 보여준다. 30대의 러셀은 가족을 잃는다. 안젤로와 러셀의 사주를 받는 살인청부업자, 일명 페인트공이 된 그는 범죄의 세계에서 점점 악랄해져 간다. 이런 프랭크의 변화는 가족마저 겁에 질리게 만든다. 그는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쏟아버려 주인에게 혼난 딸 페기의 복수를 위해 가게 주인을 두들겨 팬다.

이 모습에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가족은 없다. 특히 이 기억을 간직한 페기는 평생을 프랭크를 타인처럼 여기며 뉴스에 등장하는 살인 소식에 프랭크에게 시선이 제일 먼저 향한다. 딸 돌로레스의 세례식에 모인 조직원들은 프랭크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음을 의미한다. 평생을 사랑하고 돌봐 줄 가족의 사랑이라는 강을 말이다.  

50대의 러셀은 우정과 신뢰를 잃어버린다. 영화가 3분 1즈음 진행될 무렵 프랭크와 러셀에 이은 주인공이자 작품의 핵심적인 사건을 담당하는 호파가 모습을 드러낸다. 트럭 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는 미국에서 가장 큰 노조를 지닌 인물이자 파업을 방해하는 암흑가의 세력과 암묵적으로 결탁해 높은 위치에 오른 인물이다. 그의 성공에는 미국 정치계와 마피아들에게 흘러간 공적 자금이 바탕에 있다.
 
 <아이리시맨> 스틸컷

<아이리시맨> 스틸컷 ⓒ 넷플릭스 코리아


하지만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호파는 온갖 범죄 혐의로 감옥에 가게 된다. 케네디가 암살되고 노조의 자금지원으로 대통령이 된 닉슨의 조치로 출소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노조는 호파가 조용히 살아가길 바라지만 호파는 다시 노조 위원장 자리에 오르길 원한다. 사적으로 노조를 움직였던 호파는 여전히 노조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러셀은 프랭크를 찾는다.

프랭크는 사적인 우정을 나누고 자신에 대한 신뢰를 보여줬던 호파를 배신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쩌면 이 우정이란 키워드는 프랭크를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끈일지도 모른다. 마피아가 돈과 살인이 결탁한 어둠의 세계 속에서도 인간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살아갈 수 있는 건 조직 내의 믿음에 있다. 프랭크는 그 끈을 자신의 손으로 끊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현재에서 과거로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프랭크의 이야기는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지고 이뤄진 미국의 역사를 보는 듯하다. 미국은 원주민을 몰아내고 국가를 세운 피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피의 역사 위에 또 다른 이민자들은 피의 역사를 새긴다. '아이리시맨'인 프랭크는 아일랜드 출신이고 러셀은 이탈리아 출신이다. 이 두 사람은 미국에서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마피아들의 모습은 정적으로 그려진다. 숱한 명장면을 만들어 낸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처럼 극적인 역동성을 지니지 않는다. 마치 흘러가는 역사처럼 때론 딱딱하게 느껴질 만큼 그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이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선보인 <카지노>, <갱스 오브 뉴욕>, <좋은 친구들> 같은 마피아 영화와 다른 느낌을 지니며 진중하고 그윽하게 그들의 세계에 빠지게 만드는 힘을 보여준다.
   
 <아이리시맨> 스틸컷

<아이리시맨> 스틸컷 ⓒ 넷플릭스 코리아


이런 정적인 흐름은 폭발력와 감정적인 격화를 줄이며 자연스럽게 기존 마피아 영화가 보여줬던 낭만과 로망을 제거한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그들의 옆에는 어떻게 죽었는지가 표시된다. 이런 연출은 블랙코미디의 느낌마저 주며 시대의 격렬한 흐름 속 목숨을 바친 사내들의 로망이 아닌 세월과 권력의 무상함을 담아내며 쓸쓸하고 공허한 감성을 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런 감성의 전달을 위해 무려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정적으로 전개한 건 물론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조 페시라는 갱스터 무비의 역사를 함께 해 온 세 배우를 동시에 캐스팅했다.(조 페시는 은퇴했지만 이 작품을 위해 다시 복귀한다) 디에이징 기술을 통해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온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모습은 비록 동작은 굼뜨지만 그들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연기로 깊은 감흥을 준다.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란 플랫폼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흥행이 아닌 작품성을 먼저 논할 수 있고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전형적인 포인트가 아닌 내면의 깊은 감성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연구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지난 22년간 숱한 명작을 만들어 온 마틴 스콜세지-로버트 드 니로 콤비가 23년 만에 만나 방점을 찍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아이리시맨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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