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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서 담임 업무를 맡고 있는 필자의 경험에 근거한 기사로 소년원의 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기자말]
16살 소년은 소년부 법정에서 7호 처분(의료처우)을 받고 대전 의료소년원에 수용되었다. 비행명은 절도, 폭행, 특수협박, 재물손괴, 공갈 등이었다. 반 배치를 받은 날, 소년은 담임인 필자와 상담을 위해 마주 앉았다. 소년은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얘기해 나갔다. 

양모에게 맡겨진 6살 아이, 12살까지 학대 당하다
  
 보호처분 중 7호 처분(의료처우)을 받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 대전소년원  보호처분 중 7호 처분(의료처우)을 받은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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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살 소년은 엄마의 손을 잡고 양모의 집에 들어섰다. 나이가 어렸던 소년은 양모가 자신의 친엄마인 줄 알고 자랐다. 그러나 커가면서 양모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양모의 폭행은 날로 심해졌다. 양모는 소년을 수시로 창고에 가두고 밖에서 자물쇠를 채웠다. 자신의 친자식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게 했고, 수시로 폭행했다. 소년이 탈출하던 날, 양모는 커피포트에 끓인 물을 소년에게 부어 화상을 입게 했다. 그날 12살 소년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4층 창문에서 밖을 내려다 봤는데 이상하게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보던 것보다 가까워 보이더라고요.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렸어요. 당시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거든요. 

건물 1층에 과일가게가 있었거든요? 죽기 살기로 뛰어내렸는데 가게 천막에 부딪친 후 바닥에 떨어지면서 오른쪽 무릎만 골절됐어요. 당황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들었는데 사실 아픈 줄도 몰랐어요. 양모의 집에 들어선 6살 이후 처음 집 밖으로 나온 거였거든요."


4년 후

양모의 집에서 탈출한 후 소년은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녔다. 파란 하늘과 드넓은 운동장,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등 학교는 소년에게 낯선 세계였다. 그러나 또래 아이들은 화상을 입어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소년의 손을 놀리거나 피했다. 소년의 곁에는 사람이 없었다. 소년은 사람들이 많은 곳만 가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소년은 보육원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과 교사들의 물건을 훔치고, 자신을 험담하고 다녔다는 이유로 동료를 협박하고 폭행했다. 분노 조절이 되지 않아 보육원의 기물을 파손하고 자해를 했다. 

소년은 어린 시절 학대받은 기억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공포, 불안, 분노 등의 감정을 느끼고 있고, 이러한 감정들이 공격성이나 반사회성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에 '7호 의료소년원' 처분을 받았다.

입원 초기, 소년은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분노조절장애와 지적장애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산만한 모습을 자주 보이고 동료들과 관계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에 필요 이상으로 반응하며 갈등을 유발했다. 결국 소년은 1인실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만들어서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
  
소년은 프라모델을 조립할 때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 소년이 만든 프라모델 소년은 프라모델을 조립할 때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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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실에 웅크리고 앉아 TV를 보던 소년에게 필자는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소년은 또래들이 조립하는 데 보통 3~4시간 걸리는 프라모델을 1시간 만에 만들었다. 설명서를 집중하여 정독하고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서 조립했다.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손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는 모습에서 숙연함이 느껴졌다.

"전 원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주면 기쁘고 행복해요. 보육원에 있을 때도 나무판자와 못으로 작은 책꽂이를 만들어서 선생님들에게 선물했어요. (중략) 저를 학대했던 양모가 꿈에 나타나는 악몽을 자주 꿔요. 힘든 일이 있는 날에는 거의 악몽을 꾸었어요. 하지만 만들기를 할 때는 집중을 하니까 쓸데없는 생각이 안 들고, 과거 기억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요."

필자는 소년에게 꽤 많은 프라모델을 사주었다. 프라모델을 만드는 동안 소년은 오직 만들기에만 집중했고, 다른 학생들과 다투지 않았다. 관물함이 프라모델로 가득 찰 무렵, 필자는 군고구마 장사를 시작했고 소년은 자신도 군고구마 봉사 활동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군고구마 봉사 활동을 하는 학생들이 일주일 후에 퇴원할 예정이라 후임 직원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관련 기사 : 대전소년원 숲에 있는 군고구마통의 정체 http://omn.kr/1lyd7)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아이들이 장작불을 피워 군고구마를 구웠다
▲ 대전소년원 치유의 숲에 있는 군고구마통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아이들이 장작불을 피워 군고구마를 구웠다
ⓒ 최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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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언가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면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으니까, 군고구마 봉사를 할 기회를 줄게. 열심히 해봐."

소년은 뛸 듯이 기뻐했다. 

군고구마 신규직원으로 채용하는 대신 교실에서 수업 태도가 안 좋거나 생활관에서 다른 학생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다툼이 있을 경우, 바로 해고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소년의 섬세하고 꼼꼼한 손재주로 더 달콤하고 맛있는 고구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도 해주었다. 소년은 일주일 동안의 인턴 기간 동안 열심히 고구마를 구워서 동료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소년법의 이념과 보호처분의 목적

10대들의 흉포하고 잔인한 범죄가 언론에 자극적으로 보도될 때마다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빗발친다. 법을 폐지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현실'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소년의 학교 부적응과 비행에 이르는 과정 및 원인 등 비행의 이면을 알지 못한다. 뉴스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소년을 학대한 양모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소년에게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다. 다시 말해서,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집행하여 비행청소년을 교화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다.

소년이 앞으로 성인범이 될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필자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청소년은 충동적·감정적으로 비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나이가 어린 만큼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회복 탄력성이 성인들과 비교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소년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원예사가 되고 싶어요. 씨앗을 심고 하루하루 변화가 생기는 걸 관찰하는 게 너무 좋아요."
 
[보호처분]

1호.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하여 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위탁
2호. 수강명령
3호. 사회봉사명령
4호. 단기 보호관찰
5호. 장기 보호관찰
6호.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이나 그 밖의 소년보호시설에 위탁 (6개월)
7호. 병원, 요양소 또는 소년의료보호시설에 위탁
8호. 1개월 이내의 소년원 송치
9호. 단기 소년원 송치 (6개월)
10호. 장기 소년원 송치 (2년)
 

덧붙이는 글 | 전국 10개 소년원에 재원 중인 보호소년의 약 30%는 정신질환·지적장애로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ADHD, 조현병, 품행장애 등의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 및 심리치료가 필요한 학생들입니다.


태그:#소년법, #소년원, #청소년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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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보호직 공무원입니다. 20년 동안 소년원, 소년분류심사원, 보호관찰소, 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위기청소년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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