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겨울왕국 2> 한 장면

영화 <겨울왕국 2>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겨울왕국>(2013)이 인간의 고독을 얼음에 빗대면서 마침내 타인과 다른'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의 힘을 손아귀에 넣은 엘사의 각성을 그렸다면, 후속작 <겨울왕국 2>(2019)는 시작부터 가을의 정취를 밀고 들어오면서 '변화'에 대한 은유를 담는다.

가을은 만물이 서로를 좇으며 왕성히 생명을 뿜어내는 여름과는 달리 다음 삶을 위해 오롯이 혼자서 과거를 떨쳐내는 시기다. 나무는 잎을 떨어뜨리고 동물들은 털갈이를 시작한다. 과거와의 단절은 자연이 미래를 추구하는 방식이자 만고의 진리다. 존재가 태어나 계속해서 생명을 잇기 위해서 사계를 지나야만 한다면,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겨울에 무리하게 맞서 금방 지치기보다는 내면에 힘을 응축해 활동하기 좋은 봄을 맞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봄은 나이테를 한 겹 두르고, 단단한 거죽을 베풀며, 나아가 꽃을 틔울 힘을 주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자연이 말하는 단절은 과거를 아예 폐기시켜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게 아니다. 미래를 견디기 위해 과거에 줄곧 써왔던 에너지를 내면에 응축하는 것일 뿐, 그 에너지는 미래를 맞이하려는 육체에 남아 의지를 잇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신하고자 한다면 우선은 외부로 무분별하게 확산하던 에너지를 거두고, 내면의 그릇에 모여드는 그 에너지들을 오롯한 나의 정신으로 통일하는 시기를 거쳐야만 한다.

<겨울왕국 2>이 적극적으로 끌어온 자연의 이미지를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는 위화감이 없지만 그 속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자연 속 돌무더기와 낙엽, 풀뿌리와 짐승, 울긋불긋한 나무들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한 곳에 모여 자연을 이룬다. 우리가 지각하는 자연스러움이란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것이 아닌,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섞여 적절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비로소 제 모습을 찾기 마련이다.
 
 영화 <겨울왕국 2> 한 장면

영화 <겨울왕국 2>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엘사가 사방팔방으로 날뛰는 정령들의 힘을 거두어 자신에게 통일시키고 마침내 그 자신 또한 정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힘들을 통합하는 과정 자체를 묘사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힘'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쉽게 생각하면 경험이다. 우리가 어떤 지식을 마치 내 것처럼 부릴 수 있을 때 그것을 '체득'했다고 한다. 체득은 본래는 내 것이 아니었지만 내 몸의 일부처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됐기에 '몸으로 배운 것'이나 다름없다 하여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우리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은 열심히 살아서 경험을 쌓고, 다시 경험을 나의 육체의 일부로 전환시키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약동하는 자연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과 끊임없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미래는, 알 수 없는 것들의 예측할 수 없는 집합이자 그 다양함 만큼이나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미래 속으로 나아가 어른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 꾸준히 그 속에 들어가며 변수를 견딜 체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영화의 OST 'In to the Unknown'처럼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인간만이 무한히 변화하는 이미지들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다.
 
 영화 <겨울왕국 2> 한 장면

영화 <겨울왕국 2>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과오를 책임지는 자만이 떳떳한 미래를 연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과거의 대통합을 이룰 때 그릇된 인간의 마음을 거둘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겨울왕국 2>에 등장하는 댐은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대표적인 구조물로 인간이 그 스스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내 세상만이 영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운 것이 댐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꼭 강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어느 곳에나 댐을 설치한다는 점이다.

<겨울왕국 2>에서 댐의 건설을 두고 분노하는 정령은 물의 정령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의 정령, 바람의 정령, 대지의 정령까지 자연의 모든 정령이 분노에 휩싸여 있다. 정령이 인간의 삶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면, 작품의 묘사는 우리가 세운 무수한 인위들이 삶의 모든 부분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메시지가 된다.

우리가 과거의 모든 힘을 제대로 흡수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 과거의 경험에 섞여있는 불순물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책임질 필요가 있다.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한 어떤 사람은 물길을 홀로 독차지한 대가로 수몰의 위험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켕기는 구석이 있는데도 이를 방치하고 덮어두면 점점 더 큰 거짓말과 위선을 불러오게 된다.

정령들이 이내 모습을 감추고 희뿌연 안개 속에 사라지며 '내면의 소리'를 울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면서 자기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끝내 자유롭게 머리를 풀어헤친 엘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다가올 일을 용기 있게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솔직한 자세로 과오를 책임지는 일이기도 하다. 성공은 했지만 뭔가 구린 냄새를 폴폴 풍기는 어른들이 과연 어른이 됐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세계를 마주하고도 정령들이 기꺼이 두 팔 벌려 안기는 당당함을 갖췄을 때 비로소 우리의 용기 있는 탐험은 힘차게 달려 나가는 한 필 생명의 말을 얻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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