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가 동아시안컵을 끝으로 2019년 공식 A매치 일정을 모두 마감했다. 벤투호는 동아시안컵에서 홍콩(2-0), 중국(1-0), 일본(1-0)을 차례로 꺾고 3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벤투호 출범 이후 첫 우승이자, 2015년 중국 우한(슈틸리케호), 2017년 일본 도쿄(신태용호) 대회에 이어 3연패다. 동아시안컵 출범 이해 홈팀이 우승을 차지한 것과 대회 무실점은 사상 최초다. 아울러 한국은 2003년과 2007년을 포함하여 총 5번째 우승으로 대회 최다우승국의 지위를 굳건히 했다.

벤투호의 2019년은 아쉬움과 희망, 성장과 정체의 갈림길을 넘나들었던 한 해라고 할만하다. 표면적으로 큰 위기나 급격한 추락은 없었지만, 대표팀의 경기력과 리더십을 둘러싼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이 조명되며 우려의 시선도 적지않았다.

벤투호는 출범 이후 총 25번의 A매치에서 15승 8무 2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올해로만 범위를 국한해도 12승 4무 2패다.

사실 출발은 그리 좋지않았다. 벤투호의 첫 공식 대회이자 59년 만의 정상탈환을 노리고 출항했던 1월 UAE 아시안컵에서 벤투호는 8강에서 카타르(0-1)에 덜미를 잡히며 탈락했다. 한국축구가 아시안컵에서 준결승 진출조차 실패한 것은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끌던 2004년 (8강)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후 후방에서부터 짧은 패스와 빌드업을 바탕으로 한 '점유율 축구'를 강조하며 평가전에서 승승장구했으나, 정작 아시안컵에서는 약팀들의 밀집수비와 역습 대처에 어려움을 겪었고 대회 내내 답답한 경기력으로 도마에 올랐다. 한국을 꺾은 카타르가 대회 정상까지 올랐고, 벤투호는 필리핀, 바레인, 키르기스스탄 등 약체팀과의 경기에서도 고전하다가 한골차로 겨우 신승하는 등 벤투 축구의 효율성에 대한 의문부호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손흥민 등 주축 선수들의 혹사 논란과, 기존 주전들이나 점유율 축구가 통하지 않을 때 대안으로 내놓을 수 있는 플랜B의 부재도 도마에 올랐다. 더구나 아시안컵을 끝으로10여 년간 한국축구의 중추 역할을 해왔던 기성용과 구자철까지 대표팀 동반 은퇴를 선택하며 전력손실도 발생했다.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점유율 축구 노선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3월 홈에서 열린 친선경기 2연전에서 볼리비아(1-0)와 콜롬비아(2-1)을 잇달아 제압했고, 6월에는 아시아 강호 호주(1-0), 이란(1-1)을 상대로 선전하며 여전히 '안방 호랑이'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실전무대라고 할 수 있는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에 돌입하면서 벤투호는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약체들과 편성된 2차예선임에도 벤투호는 최약에 스리랑카(8-0)와의 홈경기를 제외하면 좀처럼 시원한 승리를 보여주지 못했다 평가전이었던 조지아(2-2)전 무승부를 비롯하여 투르크메니스탄(2-0), 북한(0-0), 레바논(0-0)을 상대로 월드컵 예선 원정 3연전에서 승점 5점을 추가하는데 그치며 집밖에만 나가면 무기력해지는 '원정 징크스'도 반복됐다. 역시 원정으로 치러진 브라질(0-3)과의 평가전에서는 벤투호 출범 이후 첫 3실점 완패를 당하기도 했다.

경기 외적인 환경도 벤투호를 힘들게 했다. 북한과 레바논 원정이 모두 현지 사정과 불안한 정치적 문제로 인하여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는 우여곡절을 겪어야했고, 우리 선수들이 상대팀들의 거친 플레이와 원정 텃세에 무방비도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최약체 스리랑카 원정을 제외하면 이제 홈경기들만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라 2차예선 통과는 무난할 전망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란, 일본, 사우디, 카타르 등 아시아의 강호들을 만나게될 가능성이 높은 최종예선을 앞두고 불안감을 불식시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벤투호에게 동아시안컵은 분위기 반전이 절실했던 대회였다. 유럽파가 합류하지못한 동아시안컵은 벤투호 출범 이후 최초로 큰 폭의 선수변화가 불가피했다. 국내파와 아시아리거 위주로 꾸려진 대표팀은 시작부터 김신욱과 이용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고, 개막 후에도 김승규-김문환-문선민 등 크고작은 부상자가 속출하며 선수 운용에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홍콩-중국전까지만 해도 승리는 따냈지만 '아시안컵의 재방송'이라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경기력도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재-김영권을 중심으로 한 대표팀의 수비진은 끝까지 단단했고, 아쉬웠던 득점력은 세트피스에서의 결정력으로 만회했다. '벤투의 황태자'로 불렸으나 최근 부진한 경기력으로 비판을 많았던 황인범이 일본전 결승골을 비롯한 맹활약으로 대회 MVP에 오르며 그간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떨쳐낼수 있었다.

하지만 동아시안컵 우승이 그간 벤투호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줄 정도의 성과라고는 보기 어렵다. 벤투호가 비록 유럽파가 빠지며 최정예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상대팀들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이 불참하면서 대신 가세한 홍콩은 한중일 삼국과는 전력차가 워낙 컸고, 중국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하면서 리티에 감독 대행이 일시적으로 지휘봉을 잡아 급조된 팀이었다. 일본은 올림픽대표팀 사령탑을 겸하고 있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내년 U23 아시아챔피언십을 대비하여 젊은 선수들 위주로 꾸린 팀이었다.

그에 비하면 벤투호는 공격진을 제외하면 중원과 수비라인은 사실상 베스트11이었을만큼 다른 팀들에 비하여 전력상 우위였던데다 홈어드밴티지까지 안고 있었다. 벤투호는 대회 내내 상대팀보다 점유율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정작 필드골은 마지막 한일전에서 나온 황인범의 1골이 유일했다. 더구나 유럽파가 모두 가세했던 최근 월드컵 2차예선과 브라질과의 평가전까지 범위를 넓혀도 수준 차가 컸던 스리랑카전을 제외하면 최근 7경기에서 6골, 경기당 한골도 제대로 넣지 못했다. 특히 필드골은 이중 단 2골에 불과했다.

브라질 외에는 모두 한국보다 전력이 아래인 팀들을 만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기록이다. 골결정력과 세밀한 부분전술의 부재는 점유율 축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반드시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벤투 감독이 새로운 선수 발굴이나 실험에 인색하다는 지적도 현재진행형이다. 동아시안컵을 통하여 벤투호가 딱히 새로운 성과를 찾아냈다고 하기 어렵다.

실제로 동아시안컵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김민재나 황인범, 김영권, 이정협, 나상호같이 이미 벤투호에서 오래전부터 중용받고 있는 익숙한 얼굴들이 대부분이었고, K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문선민이나 김보경 등은 정작 눈에 띄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단지 선수들만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기존 주전들과는 또 다른 선수들의 개성이나 소속팀에서의 플레이를 고려한 용병술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벤투 감독은 동아시안컵 기간에도 자신의 축구 철학에 대한 확신을 강조했지만 핵심은 점유율이 아니라, 다양성과 유연성의 부재였다 벤투 감독은 심지어 '앞으로도 수비에 치중하다가 역습을 노리는 스타일의 축구는 하지 않겠다'는 다소 위험한 발언까지 하기도 했다.

앞으로 최종예선-월드컵 본선같이 더 높은 레벨의 무대로 올라갈수록 더 강한 상대-예측불가능한 상황과 언제든 마주치게 될지 알 수 없다. 축구에는 하나의 정답이란 없다.

냉정하게 말하면 동아시안컵 우승은 움베르투 쿠엘류나 울리 슈틸리케도 경험한바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들이 한국 축구에 남긴 마지막 업적이 됐다. 하지만 지금 동아시안컵의 결과를 기억하며 이들을 그리워하는 축구 팬들은 아무도 없다. 부디 벤투 감독에게 동아시안컵 우승이라는 결과가 단지 눈앞의 불안 요소들을 잠시 가리는 '회광반조'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못하는 개인이나 조직은 모두 정체된다. 작은 성과에 자화자찬하며 더 큰 문제의식과 자기반성을 외면한다면, 다가오는 2020년은 벤투호와 한국축구에 올해보다 훨씬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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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점유율축구 역사는반복된다 동아시안컵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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