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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지난 11월 27일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대책위원장이 제주도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대책위원장이 제주도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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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생 고은영.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기후변화대책위원장(2020 국회의원선거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을 만났을 때 떠오른 말이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세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00년생 000'이 되었다. 고은영 위원장을 이야기할 때는 2018 지방선거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혹은 녹색당 미세먼지기후변화대책위원장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지만, 실제로 만난 고은영 위원장은 80년대생 세대의 대표성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재개발로 이주당한 철거민, IMF를 겪은 세대, 홍보대행사에서 자기착취적 노동에 시달린 세대, 세월호로 우울증을 겪은 세대, 힐링을 찾아 제주로 귀촌한 여성. 그의 삶의 궤적은 여느 80년대생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가 정치계로 뛰어든 것은 고무적이고 상징적이다. 한 발자국 앞서 걸어가는 그를 지난해 11월 27일 제주에서 만났다.

'후보자 딸이냐'는 질문에...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고은영 현 녹색당 미세먼지기후변화대책위원장의 선거 유세 모습.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고은영 현 녹색당 미세먼지기후변화대책위원장의 선거 유세 모습.
ⓒ 고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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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에서 '이주민'인 '젊은', '여자', '청년'이 '정치'를 한다니. 사회적 편견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작년 지방선거 때 유세를 하러 가면 나를 후보자로 보지 않고 후보자 딸로 보는 분들이 많았다. 머리 스타일이 좀 학생 같아서 그랬던 걸까? 명함을 드리기 전에는 '딸이에요?' 그러셨다. 명함에 있는 사진을 보고서야 놀라신다. (어려서 놀라는 걸까?) 제주에서는 여성 후보가 많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예비후보로 여성분이 등록을 했지만 본선까지 가지는 않았다. 나도 시작할 때 '고은영도 본선 가기 전에 결국 통합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완주할 생각이냐?'라고 물으면 '완주가 아니라 당선이 목표입니다'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좋아해준 것 같다."

- 명품브랜드 담당 홍보직원에서 녹색당 제주지사 후보자라니. 자본주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한 느낌이다.
"9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고 서울에서 홍보대행사를 4년 넘게 다녔다. 마지막 클라이언트가 유니클로와 에르메스였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할 땐 정말 악바리처럼 일했다. '사람 좋은 악질'이었다. 20대가 메인으로 맡기 힘든 일을 메인으로 맡아서 했다. 극악의 근무 환경에서도 일을 놓을 수가 없었고 일을 나와 동일시했다. 일이 나를 성공시킬 것 같았다. 그때 몸이 많이 망가졌다. 제가 키가 큰 편인데 몸무게가 40kg이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 배운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
"홍보대행사는 다른 사람이 빛나도록 판을 깔아주는 곳이다. 누군가의 눈과 귀가 되어 세상의 흐름을 빠르게 캐치하고, 클라이언트를 빛나게 해줘야 한다. 산업이나 업계를 잘 알아야 내 브랜드를 탑으로 올릴 수 있다. 선거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게 참모다. 그런데 녹색당이 작다 보니 후보 본인이 직접 판을 깔아서 자기가 올라가야 하기도 하더라. 그럴 때 도움이 되었다."

- 무엇이 제주로 오게 했나?
"몸이 망가지면서 그만두고 서울의 비영리단체로 옮겼다. 그때 공백이 있었는데 제주에 와서 좀 쉬었다. 사람이 정말 힘들면 여행을 떠나고 명상을 하면서 자기를 돌보지 않나. 그때 제주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다. 그 후엔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했는데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버튼이 꾹 눌렸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버튼이 있지 않나. 그게 눌리면 누군가는 폭력적이 되고 누군가는 우울증에 걸린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선택해서 살고 싶었다. 사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3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았는데, 15일 만에 정리하고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에서 제주관광공사에 다녔고, 발달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했다. 마지막 회사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였다. 2년 직장 생활을 하다 프리랜서로 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녹색당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에서 만난 커뮤니티
 
지난 11월 27일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대책위원장이 제주도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고은영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대책위원장이 제주도청 인근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 김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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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걸 소리를 들으며 승승장구하다가 번아웃을 겪으며 제주로 온 사람은 비단 고은영 위원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제주로 온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다시 제주를 떠난다. 그들이 제주에게 기대했던 바가 예상과 달라서일까. 고은영 위원장은 어땠을까.

- 다른 지역이 아닌 제주를 선택한 이유가?
"원래는 제주의 자연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올해 초에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커뮤니티를 원했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서로 걱정해주고, 서로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는 돌봄이 필요했다. 내가 제주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나도 돌봄을 받고 누군가를 돌보면서 기대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그 기대는 충족됐나?
"제주도 서울처럼 관계가 급격히 파편화되었다. 최근 10년 동안 제주에 원룸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섰다. 원래 제주에는 원룸이 별로 없었다. (왜 원룸이 생겼나?)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필요로 해서 생긴 것 같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큰 집에서는 청년들이 살 수도 없고. 그런 것도 서울과 같다. 관계들이 조각조각 나는 거다. 이럴 거면 안 왔지 싶었다.

청년들이 제주에 와서 기대하는 게 일상과 돌봄이 함께 가는 것,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사는 것, 내가 좀더 건강하게 사는 것 아닌가. 그런데 여기도 경쟁사회고 파편사회라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고은영 위원장은 왜 돌아가지 않았나) 나도 돌보고 돌봄 받고 싶어서 출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제주는 여성의 목소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하지 않지만, 유독 정치에서는 남성 중심 문화가 여전하다. 게다가 '괸당문화'로 대표되는 독특한 친족문화 때문에 외지 여성이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게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제주지사 후보로 나선 고은영의 성과는 놀라웠다. 3.5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자유한국당 후보도 제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 정치는 여전히 '중년' '남성'들 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성', '청년'이 끼어들어야 하는 이유를 들자면?
"제주 정치에서 50대 이상 남성들이 쥐고 있는 것들이 너무 크다. 이 편중된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이나 공천 개혁, 선거제도개혁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의 청년위원 기준이 45살이다. 45살이 청년? 이게 사회적으로 맞는 이야기일까?"

여자는 안 된다는 제주 해신제

- 지방선거에서 호응이 나온 건 청년이 아니라 50대, 60대 아주머니 쪽이 먼저였다고?
"맨 처음 호응이 그랬다. 제주에서 거리 유세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나일 거다. 나는 정치 역사가 없는 사람이어서 유권자 반응이 없었다. 이곳저곳에서 인터뷰하기 시작할 때 가장 빠르게 반응이 왔던 사람들이 엄마들이었다. 멀리에서부터 울면서 뛰어와 안아주시는 분도 있고, 길에서 내가 지나갈 때 일어나 손뼉 치는 분들도 있었다."

- 왜 50대, 60대 여성들이었을까?
"제주에서는 여성이 오랫동안 사회경제적인 주체였다. 해녀로 상징되는 주체 행위자, 돌봄의 주체가 여성이었다. 그런데 여성의 정치적 발언권은 없었다. 그러니 도지사 후보로 여성이 나온 걸 그분들이 환영해주는 게 아닐까. 여성 청소년들도 좋아했다. 나는 지금도 여성 청소년 멘토링을 하고 있다.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 비전을 정치로 삼지는 않는다. 내가 정치활동을 하는 게 여성에게도 이런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 여성의 정치 참여가 대대로 없었나.
"제주에서는 등산객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한라산신제와 바다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해신제를 지낸다. 중요한 제사다. 이 제사를 지낼 때 광역단체장이 집전한다. 여성이 한번도 집전하지 못했다. 마을마다 있는 해신제에도 여성은 참여하지 못한다. 피를 흘리면 불경하다는 이유다. 언젠가 내가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피를 흘리는 불경한 내가."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고은영 현 녹색당 미세먼지기후변화대책위원장이 당시 TV 토론회에 참가했을 때 모습.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고은영 현 녹색당 미세먼지기후변화대책위원장이 당시 TV 토론회에 참가했을 때 모습.
ⓒ 고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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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영 인터뷰 2편이 이어집니다.)

태그:#제주, #고은영, #녹색당, #제2제주공항, #밀레니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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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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