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신예 배우였던 '니콜(스칼렛 요한슨)'. 그녀는 뉴욕에서 우연히 만난 연극 작가 겸 제작자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처럼 낭만적인 사랑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기던 니콜과 찰리. 그러나 어느 날 니콜은 자신의 결혼생활에 '내 삶'이 빠졌음을 깨달은 후 이혼을 결심하고, 이후 두 사람은 길고 긴 이혼 소송의 늪에 빠진다.  

<결혼 이야기>는 끈적한 영화다. 영화는 이혼과 별거를 결심한 니콜과 찰리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비추고, 그러니 이혼을 결심한 이유와 부부간의 애증이 뒤섞인 심경변화 등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 묘사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를 쉽게 묘사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에 묘사하지도 않는다. 대신 어떤 상황도, 감정도 쉽사리 결론을 내지 않고, 보는 이를 꿀처럼 짙은 감정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영화 <결혼이야기>의 포스터

영화 <결혼이야기>의 포스터 ⓒ 판씨네마(주)

 
<결혼 이야기>는 니콜과 찰리의 심정을 대변하는 특정한 상황이나 설명을 반복한다. 나콜은 자신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거듭 이야기한다. 찰리는 니콜이 이혼을 하자고 한 이유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이혼 소송 과정에서도 자신이 뉴욕에 사는 가족이라는 사실을 거듭 반복해서 말한다. 동시에 영화는 조금씩 변주된다. 니콜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나 찰리가 이혼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 이유 등이 살짝살짝 첨가되는 식이다. 니콜과 찰리가 서로에게 폭언을 쏟아내면서 대판 싸우는 장면은 이러한 연출이 절정에 다다른 대목이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을 한 공간에서 남김없이 쏟아내면서 쌓아 올리고 거르고 걸러서 만들어낸 가장 짙은 농도의 감정, 사랑, 증오, 연민, 자기 비하, 환멸 등을 살아 있는 그 자체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자칫 작위적이거나 혹은 지루하게 느껴질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이혼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럴 여지를 주지 않고 개연성을 갖추는 데 성공하며, 심지어는 두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이혼을 하고, 어떤 관계로 지내게 될지에 대한 호기심까지 자아내도록 만든다. 이혼 소송은 길고 지난하기 마련이며, 니콜과 찰리의 이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혼 소송을 치르면서 둘의 감정이 점점 격해지고 짙어진다. 그렇기에 영화의 끝에서 니콜과 찰리가 흘리는 눈물은, 영화 시작부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복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진심으로 느껴진다. 

깊고 농축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결혼 이야기>

이처럼 깊고 농축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결혼 이야기>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느리다. 한 쇼트마다 그 길이가 길고, 빠른 화면 전환이나 편집을 보이지 않는다. 둘째, 정적이다. <결혼 이야기>에서는 카메라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이러한 두 방식은 특히 니콜과 찰리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때 함께 활용되면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로라 팬쇼)'를 찾아가서 니콜이 그녀의 삶, 감정, 그녀가 이혼을 결심한 계기 등을 털어놓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의 시작에서 카메라는 대화하는 노라와 니콜을 한 화면에 담는다. 그러나 이내 노라는 어느새 카메라 앵글 밖으로 사라지고, 카메라 앞에는 니콜만이 남는다. 그녀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데, 그녀의 얼굴에는 첫 만남의 호기심, 떨림, 사랑의 황홀함, 기쁨, 좌절과 실망, 이혼을 결심한 결연함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그리고 카메라는 이를 클로즈 업 상태로, 몇 분간 움직이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마치 관객들이 그녀와 직접 대화한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 결과 영화를 보는 사람은 순간적으로 작중 인물들의 직접적인 청자가 되고, 그들의 감정을 최소한의 잡음 가운데 수용할 수 있다.

이처럼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생생히 전달하는 것은 사실 배우들의 역량에 많은 것을 맡겨야 하는 연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를 캐스팅한 것은 정말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골든글로브 시상식 등 각종 시상식에 두 배우가 남여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느리고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사랑 이야기에 불과했을 수도 있는 <결혼 이야기>이지만, 일반적인 이야기에 접근하는 이 영화만의 방식은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결혼 이야기>에서 니콜과 찰리가 실제 부부인 상태로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가 시작할 때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하는 짧은 푸티지 외에는 없다.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컷 ⓒ 판씨네마


대신 <결혼 이야기>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결혼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함께 살면서 서로의 삶에 남긴 깊은 자국은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이혼을 통해 강조한다. 니콜은 이혼 소송 합의점을 찾기 위한 자리에서도 찰리의 점심 메뉴를 골라주고, 둘은 재판정에서 자신들만이 아는 서로에 대한 약점을 들이민다. 갈라서기로 한 상황에서도 무의식, 혹은 의식 중에 남아 있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본인들도 모르게 확인한다. 이처럼 <결혼 이야기>는 낭만적인 사랑과 사랑의 현실을 한 장면 안에 담아내면서 결혼의 양면성을 영리하게 풀어낸다.

이혼이라는 소재 자체가 싫거나, 혹은 배우들이 싫거나, 또 느린 호흡의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결혼 이야기>는 쥐약이나 다름없을 영화다. 그러나 깊고 짙은 사랑, 애틋함, 회한, 아쉬움 등의 감정에 2시간 동안 원 없이 빠져보고 싶다면, 결혼과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잡아보고 싶다면, 두 주연배우의 뛰어나고도 세심한 표정 연기의 매력에 온전히 빠져보고 싶다면, <결혼 이야기>는 결코 거를 수 없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결혼 이야기 넷플리그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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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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