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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내려놓고 자연과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좀체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부하지 않는 그들이 조용히 이끌어온 변화를 기록하고 싶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깊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갈망하는 삶이지만 현실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삶. 그 현실을 딛고 그들이 추구했던 변화는 진정 무엇이었을까. 지구의 살갗을 파먹으며 배불러진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 하나의 삶도 조화롭게 가꾸기 벅찬 자본 중심 사회의 그늘 아래서 과연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의 변화를 추구했을까. 왜 그랬을까. 통찰의 지혜로 자신을 다스려온 그들 삶의 궤적을 통해, 우리 삶의 때를 닦을 혜안을 구해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이해경 남원시 신활력플러스사업 추진단장 & 전 남원귀농귀촌학교장 이해경 단장을 찾아가 그의 집에서 인사를 나눴다.떼알농장이라는 작은 공동체생활을 하며 먹거리는 소박하게 거의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 이해경 남원시 신활력플러스사업 추진단장 & 전 남원귀농귀촌학교장 이해경 단장을 찾아가 그의 집에서 인사를 나눴다.떼알농장이라는 작은 공동체생활을 하며 먹거리는 소박하게 거의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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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한 간극이 있는 전력이다. 경제학을 전공했고 중국 유학까지 다녀와 박사과정을 마친 이해경(63)씨가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일은 '농부'였다. 경제학 박사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뒤로하고 180도 전향해서 농부가 된 때부터 현재까지 고수한 농법은 '자연농법'.

자연농법은 농작물을 키울 때 농약, 제초제, 비료까지 전혀 뿌리지 않고 농산물을 키우는 농법이다. 심지어 논이나 밭에 잡초도 같이 자란다. 자연농법은 그렇게 식물들이 어울렁더울렁 살아가게 농작물에게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는 자연 그대로 키우는 농법이다.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밖에. 벼를 키우는 논인가 했더니 잡초가 자라있고 잡초를 뽑기는커녕 마치 가족처럼 벼와 잡초가 공생하게 놔두는 논은 기존 농부들에겐 생소하면서도 기막힌 광경이다. 농사 좀 지어봤다는 농부들이 혀를 내두르기 딱 좋았다. 그러나 이해경씨는 말한다.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농법이어야 사람에게도 해가 되지 않아요. 농약만 안 친다고 문제가 없다고 할 순 없어요. 비료나 거름도 지속해서 사용하면 식물은 의존하고 자생력까지 떨어지죠."  

이해경씨는 귀농 이야기를 할 때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96년에 전북 장수군에 귀농했다가 2년 후 실상사에서 도법스님과 함께 귀농학교를 창립해 교감으로 재직했다. 2009년부터는 남원귀농귀촌학교 교장으로 지내다가 지난해부터 남원시 신활력플러스사업 추진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년 넘게 귀농학교에서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귀농의 필수조건과 충분조건을 상세히 전파했다.

그동안 이 단장을 통해 귀농을 실천한 사람은 약 700명. 그들은 현재 마을을 이루고 살며 귀농의 희로애락을 맛보고 있다.

남원시 이백면 산자락 안에서 조그만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이해경 단장을 만나 자연농법과 귀농 이야기를 들었다.

자연농법, 운명처럼 다가온 농부의 길 
 
수확을 앞둔 논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이해경 단장 아무것도 쏟아주지 않은 논이지만 잡초도 찾아보기 힘들고 벼는 잘 자라고 있었다. 
자연농법으로 키운 농작물의 힘을 믿기에 이해경 단장은 죽을 때까지 자연농법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 수확을 앞둔 논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이해경 단장 아무것도 쏟아주지 않은 논이지만 잡초도 찾아보기 힘들고 벼는 잘 자라고 있었다. 자연농법으로 키운 농작물의 힘을 믿기에 이해경 단장은 죽을 때까지 자연농법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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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경 단장의 운명을 확 바꿔놓은 건 책 한 권이었다. 1992년 일본 농성(農聖)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쓴 <생명의 농업>. 책은 단순한 농사기술서적이 아니었다. 자연관, 우주관을 농사로 설명한 농사 철학, 인생 철학서였다. 이해경 단장은 후쿠오카의 책에 깊이 매료됐다.

하지만 현실은 교수가 되고자 경제학 박사를 향해 가는 중이었다. 1994년엔 마음먹었던 중국 유학도 다녀왔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정리됐다. 책의 내용은 경제사학을 전공했던 이해경 단장의 가치 중심적 사고와 그가 추구하는 삶의 본질로 다가왔다. 사회적 모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결국 농촌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분배나 사회적 가치만 생각하다가 자연 생명 환경 등에 관한 생각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먹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고민했어요. 우루과이 라운드부터 나름 농촌문제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는 자연농법을 실천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았고 1996년 전북 장수로 귀농했다. 자연농업과 더불어 공동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품었다.

1998년 이해경 단장은 지리산 실상사 도법스님을 만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단장은 "'우주 만물은 한 몸, 한 생명'이라는 인드라망 세계관과 '일과 삶과 수행이 하나'라는 수행관에 대해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이 단장은 생명을 살리는 자연 농사와 수행, 삶이 일치되는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수없이 실패했다. 유기농이 처음 도입되는 시기였고 친환경도 확대하기 어려운 판에 자연농법을 들이댔으니 미친놈 소리도 듣고 좌절감도 맛봤다. 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고비를 넘기면서부터 길이 보였다. 모든 게 수행의 과정이었다.

"스승은 생명을 살리고 더불어 사는 삶이 가장 소중한 삶이라고 가르쳤어요. '자연농'이 종점이 아니고 '사람농'이 종점이라고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자연밥상을 차리는 것이 '자연농'이라면, 그 자연밥상에 기쁨을 함께 나눌 많은 분을 초대하는 것이 '사람농'입니다. 저는 자연 농부이자 사람 농부입니다. 함께 농사짓고(여운)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동락), 즉 여운동락이 제가 농사짓는 이유이자 목표였어요."

2016년 떼알농장이라는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이해경 단장이 다음 해 추수를 끝냈을 때 떠올린 소감은 그러했다.
 
집 툇마루 격인 계단식 마당에서 한 컷.  오른쪽부터 이해경 단장. 그의 부인 예림 선생, 음식 솜씨 좋은 호심 선생이다. 
특히 예림 선생은 한번도 인터뷰 사진에 응한 적 없다고 손사래 쳤지만 오히려 활짝 웃는 모습으로 화답해주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호심 선생.
즐겁고 유쾌한 사진촬영이 되었다.
▲ 집 툇마루 격인 계단식 마당에서 한 컷.  오른쪽부터 이해경 단장. 그의 부인 예림 선생, 음식 솜씨 좋은 호심 선생이다. 특히 예림 선생은 한번도 인터뷰 사진에 응한 적 없다고 손사래 쳤지만 오히려 활짝 웃는 모습으로 화답해주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호심 선생. 즐겁고 유쾌한 사진촬영이 되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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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귀농학교, 남원시 귀농 인구 늘리는 가장 큰 역할 

이 단장은 실상사귀농학교를 통해 많은 귀농인을 양성했다. 실상사귀농학교가 알려지면서 청년들이 농촌에 들어오는 건 성공이었다. 남원시 산내면 일대 인구가 늘어났고 아이들이 늘면서 마을의 중학교도 폐교 위기를 극복했다.

젊은이가 많아지자 이 단장은 풀뿌리공동체를 기획했다. 많게는 100여 개에 이르는 소모임을 만들게 해 젊은 귀농인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었다.

귀농은 도시로 빠져나간 농촌인구 회복을 위해 각 지자체가 관심 가진 정책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시골에 와서 정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프라가 없었어요. 정착을 위한 지원과 정책도 많지 않았고요. 농촌으로 오라고는 해놓고 집도 땅도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지요."

폭발하듯 귀농 인구가 늘어나자 땅값과 집값이 올랐다. 남원시에 귀농 인구가 고루 확산할 수 있게 학교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2009년 남원귀농귀촌학교로 이름을 바꿨고 산동면으로 옮겨 어느 정도 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단장은 여기서도 귀농을 희망하는 도시민을 2017년까지 가르쳤다. 생명평화와 마을공동체, 자립, 협동, 순환의 생태공동체, 그리고 도농 상생을 추구하는 도농공동체를 지향하며 예비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입문교육을 진행했다.
 
떼알농장 식구들과 먹는 소박한 점심 상차림.  자연농법으로 지은 쌀로 만든 김밥을 점심으로 준비해주었다. 떼알농장 가족 중엔 음식 솜씨 좋은 호심 선생이 함께 살고 있었고 취재일도 호심 선생이 된장국과 김밥을 만들어주어 맛있게 먹었다. 
자연농법으로 지은 쌀이라 그런지 밥알에 힘이 느껴지고 쫀득한 식감이 좋았다.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속이 편한 게 큰 특징이었다.
▲ 떼알농장 식구들과 먹는 소박한 점심 상차림.  자연농법으로 지은 쌀로 만든 김밥을 점심으로 준비해주었다. 떼알농장 가족 중엔 음식 솜씨 좋은 호심 선생이 함께 살고 있었고 취재일도 호심 선생이 된장국과 김밥을 만들어주어 맛있게 먹었다. 자연농법으로 지은 쌀이라 그런지 밥알에 힘이 느껴지고 쫀득한 식감이 좋았다.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속이 편한 게 큰 특징이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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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법은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 무경운 농법 

이해경 단장은 귀농학교에서 자연농법을 위주로 가르쳤다. 자연농법은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 무경운 농법이다. 농작물에 아무것도 주지 않고 키울 수 있다니. 이 단장 자신도 처음 자연농법을 접할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경제 논리를 적용해 비교해봤다.

"4무 농법이니 비용이 절감되겠다 싶었죠. 호기심도 생겼고 수입농산물이 들어와도 경쟁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다지만 하면 할수록 자연농법은 그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비옥한 환경에 길든 작물은 열악한 환경에서 살지 못해요. 작물이 완전히 환경에 적응하는 데 약 10년이 걸려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자연농법으로 자란 작물은 작물 고유의 성질이 살아나죠. 영양과 기능, 생명력이 완전히 달라요."

아무것도 인위적인 첨가를 하지 않으니 땅이 피폐해질 이유도 없다. 이른바 약의 힘으로 사는 땅이 아니다. 작물 또한 스스로 견디는 힘이 세지니 자연농법으로 키운 종자는 어딜 내놔도 잘 자랄 수 있다.

"관행농을 하는 농부들은 저를 비난하고 걱정합니다. 거름도 안 주는 제 논은 생산성이 떨어지니까요. 그러나 양심 있는 농부라면 건강한 먹거리 생산을 최우선으로 해야 해요. 먹을수록 독이 쌓이는 먹거리,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곡물 자급률 세계 최하위… 농약 사용량 세계최대 대한민국 
 
마지막 남은 나무가 베어진 뒤에야
마지막 남은 강물이 오염된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때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사람은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 크리족 인디언 예언자의 글

이해경 단장은 우리나라가 우루과이 라운드 등 농산물 수입개방 때문에 혹독한 내홍을 겪은 시절을 선명히 기억한다.

"농업을 지키는 것은 식량 주권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농민들을 목숨 걸어 막으려 했어요. 당시 농산물 수입개방은 한국농업의 존폐와 직결되는 중대 문제였어요."

그렇게 우리나라 농업은 위기를 겪으며 성장해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평균 23%로 세계 최하위라는 사실을 국민은 알고 있을까. 농약 사용량은 세계최대다. 1㏊당 농약 사용량은 2016년 기준 11.8㎏에 이른다. 이 놀라운 사실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5~2017년 3년간 통계로 나타난 진실이다.

이해경 단장은 땅의 회복력에 주목했다. 또 식물의 자생력을 중요시했다. 그가 평생 지키는 자연농법은 이런 문제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땅의 힘과 식물의 자생력을 키우고, 농약과 비료의 폐해를 모두 피해갈 수 있는 농법이 자연농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농법인 건 사실이다. 귀농학교에서 귀농과 귀촌을 가르치며 자연농법도 전파했지만 귀농인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한 이유가 그것이다.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기 때문. 다행히 하우스를 이용하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이 단장은 하우스에 대한 접근도 허락지 않았지만 최근엔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해경 단장은 인디언 예언자의 글처럼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고 난 후 깨닫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힘주어 말한다.

"농촌은 가장 근본입니다. 근본이 살아야 모든 것이 살지요. 우리 삶의 뿌리가 농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해요. 수입농산물에 우리 식탁을 맡기면 식량 주권 회복은커녕 위기를 겪을 것입니다. 각성해야 하고 우리 미래를 위해 농촌에 투자해야 합니다."

"귀농, 쉽게 생각 마라" 
 
자연방사하며 키우는 닭  이해경 단장은 닭도 키운다. 닭들은 낮에 산이며 들판이며 나가서 놀고 밤이 되면 알아서 계사로 들어온다. 
이렇게 맘 편하게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은 그야말로 비린 맛 전혀 없이 노른자의 고소함이 확 전해지는 영양덩어리였다. 
또 이해경 단장은 몇 가지 밭작물을 자연농법으로 키워 떼알농장 식구들과 먹는다.
▲ 자연방사하며 키우는 닭  이해경 단장은 닭도 키운다. 닭들은 낮에 산이며 들판이며 나가서 놀고 밤이 되면 알아서 계사로 들어온다. 이렇게 맘 편하게 자란 닭이 낳은 달걀은 그야말로 비린 맛 전혀 없이 노른자의 고소함이 확 전해지는 영양덩어리였다. 또 이해경 단장은 몇 가지 밭작물을 자연농법으로 키워 떼알농장 식구들과 먹는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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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학교에서 이 단장은 자립하는 삶과 생명을 살리는 농업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항상 강조했다.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 평화를 존중하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그러면서 귀농하려면 "돈의 논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 준비 없이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만 농촌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사례라는 것.

"농업을 통해서도 돈은 벌어야 먹고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해요. 자연순환의 원리에 따라 모든 생명체가 가진 기본원칙은 자연이라는 것, 또 더불어 사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해요. 무엇보다 '일등주의' '성공주의' 같은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고 와야 합니다."

귀농도 이민 같은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역주민과 관계를 생각하고 어울리려는 마음 자세도 돼 있어야 한다.

그렇게 20년 넘게 귀농을 가르치며 그가 바란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농사를 지으며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길 바랐다.

그러나 선의로 시작한, 마을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일을 맡아서는 크나큰 고충을 겪었다. 조직을 경영하는 일은 그에게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20년 넘게 자연농법과 귀농·귀촌을 가르쳤지만 모든 분야에서 명민함을 발휘할 수 없었던 과거 어느 순간은 그에게 큰 상흔이 되었다.

"공동체로 한솥밥을 먹는 게 쉽지 않아요. 갈등을 해결하고 조화롭게 사는 것이 핵심이에요. 거기엔 기술도, 끊임없는 성찰과 수행이 필요해요. 훈련 안 된 이들이 공동체를 이야기하며 충분한 검증 없이 제 방식대로 농사를 짓고 합의라곤 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한마디로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한동안 상흔이 지워지지 않아 힘들었지만 시간이라는 처방은 다시 그에게 회복력을 주었다. 그를 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그는 다시 전체를 위한 일에 자신의 노력을 던지기로 했다. 그것이 지금의 남원시 신활력플러스 추진단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인 '농촌 신활력플러스사업' 남원시 사업은 총사업비 70억원 규모로 4년 동안 국비 49억원, 지방비 21억원을 투입해 지역 유무형 자원과 민간조직을 활용해 자립적이고 지속성 성장이 가능한 농촌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전국 농촌이 각 지역 신활력플러스사업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다. 이해경 단장이 이끄는 남원시신활력플러스사업은 어떻게 진화할지 그의 역할과 행보를 지켜봐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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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주요소식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건강 등을 다루는 섹션 주간신문인 <천안아산신문>에서 일하는 노준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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