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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 다양한 종류의 모임들이 있습니다. 모임에는 대체적으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취미를 따라 모이기도 하고 또 관심 영역에 따라 모이기도 합니다. 부(富)의 정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모임도 있습니다. 외국을 드나들며 즐기는 골프 모임도 있습니다.

14일 송년의 모임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잣대를 들이댈 수 없습니다. '무원칙의 원칙'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부, 지역, 학력, 정치적 성향... 공통적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것보다 구심력이 강한 모임입니다.

눈코 뜰 새 없는 연말임에도 이 모임만은 꼭 가고 싶어들 합니다. 사는 지역도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하는 일도 참석하는 숫자만큼 다양합니다. 일용 근로자로부터 대학 교수까지. 둘 사이에 열거할 수 있는 직업들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을 하시겠지요.

1980년대의 야학생활, 사랑의 끈으로 묶어주다

이 사람들을 사랑의 끈으로 단단히 묶어 주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1980년대 야학 생활을 함께 했다는 것. 이 야학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지요? '야학(夜學)'은 원래 '야간학교'의 줄임말인데, 줄임말로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녹지야학입니다.
 
녹지야학 송년 모임 12월 14일(토)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근처 한 음식점에서 녹지야학 멤버 30여 명이 송년 모임을 가졌다.
▲ 녹지야학 송년 모임 12월 14일(토)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근처 한 음식점에서 녹지야학 멤버 30여 명이 송년 모임을 가졌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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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회사 폐업에 항의하여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사를 찾아갔었지요. 농성 때 경찰의 강제 해산 과정에서 한 노동자 1명이 건물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지요. 그 노동자가 김경숙인데 녹지야학1기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녹지야학은 1977년 가발공장 YH 무역에서 시작했습니다. 3기부터 면목성당으로 야학을 옮겨 10년 넘게 이어왔지요.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1980년대만 해도 가난한 탓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일터를 찾아야 했습니다. 어린 고사리 손으로 일할 곳이 많을 리 없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봉제공장 보조(시다) 등 단순 노동에 투입되었지요.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배움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던 아이들이 야학 문을 두드렸습니다.

교사는 대학생, 학생은 영세 공장의 노동자. 이 둘이 만나 지식과 사랑을 나누며 청춘을 공유했습니다. 야학의 대학생과 노동자들은 교과서적 지식만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빈부의 사회구조적 문제, 진정한 사랑의 배분 등 폭넓은 사유 속에 공통분모를 찾아갔습니다.

과거 야학 생활을 하면서 이루어진 따뜻한 이야기는 장강(長江)이 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제도 교육의 눈으로 보면 어색했고 또 경찰에서 감시의 눈으로 보곤 했습니다. 학강(學講)과 강학(講學)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제도교육에 대해 반발이라도 하듯 이 단어에 집착했습니다.

교사와 학생이 아닌, 강학과 학강의 이름으로
  1984년 사랑반 졸업식 사진. 이들이 지금은 50대 중후반으로 각지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1984년 사랑반 졸업식 사진. 이들이 지금은 50대 중후반으로 각지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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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학생이라는 귀에 익은 명칭을 마다하고 강학과 학강이란 용어를 애용했으니까요. 짐작할 수 있듯이 교사를 지칭하는 강학은 가르치면서 배우는 사람, 학생을 뜻하는 학강은 배우면서 가르치는 사람을 뜻합니다.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가 일방이 아닌 쌍방통행이라는 것이지요.

브라질의 민중교육론자인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 9. 21 ~ 1997. 5. 2)가 그의 책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에서 사용한 용어입니다.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극도로 짓눌리던 당시 의식 있는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이 단어를 좋아했습니다.

설명이 길어졌습니다만 어제 모임에 나온 야학 멤버가 30명쯤 되었습니다. 경인지역뿐 아니라 부산, 나주, 김천, 익산, 삼척 등지에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40여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회포를 풀었습니다. 시간의 거스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호칭입니다.

형ㆍ누나ㆍ동생으로 통하는 관계들입니다. 연배가 다소 높은 축에 속하는 저는 보통 이름을 불러댔습니다. 그때 10대의 소녀들이 50대 중후반이 되었습니다. 중년 여인들에게 'OO야'라고 이름을 부르면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청년기 야학에서 맺은 인연이 그만큼 끈끈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경조사도 빠지지 않고 챙깁니다. 열흘 전, 한 야학 학강(학생) 출신이 고모 상을 당했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고모 상까지 조문을 가고 부의금을 거둬 전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야학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어머니 상을 당한 것 이상으로 슬픔에 함께 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읜 그를 고모가 아들처럼 돌보았거든요. 기쁨은 나누어 더 풍성하게 만들고, 슬픔을 쪼개어 당사자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합니다.

야학에서의 순수했던 경험이 삶에 큰 버팀목

의대 교수이자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는 한 후배는 야학의 경험이 자신을 붙들어 주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모임에 관계하고 있지만 흉허물 없이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게 자신을 야학 모임으로 이끄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한 강학의 몸 아픈 이야기, 다른 강학의 직장 잃은 이야기는 슬픈 소식이 될 것입니다. 더 좋은 일들이 주어지기 전의 진통이라며 격려의 말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비록 마음으로만 전하는 응원이지만 당사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 듯 보였습니다. 이게 야학 모임의 힘입니다.

40여 년의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이들이 이토록 끈끈하게 묶어 줄까요. 다름 아닌 사랑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인 아가페(Agape)가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런 사랑을 세월에 싣고 40년을 지내왔습니다. 야학 모임이 각박한 세상에 사랑의 도피성이 되고 있습니다.

야학(夜學)은 밤 시간을 이용해서 하는 공부를 일컫습니다. 낮과 밤의 공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어진 제반 여건이 야학을 찾아 공부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하는 아이들, 노동 뒤 쉬어야 할 때 야학으로 달려온 아이들... 그들의 정성이 사랑으로 승화해서 이렇게 긴 기간을 달려왔을 것입니다.

내년을 기약하며 헤어지면서도 못내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어울려 2차를 갔다는 후문이 들려왔습니다. 거기서의 이야기도 1차 것의 연장이었겠지요. 더해서 한 말들은 올 한 해 잘 마무리하고 새해엔 더욱 건강하게 지내기를 굳게 약속한 것이었겠지요.

덧붙이는 글 | 김천일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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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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