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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윙~'

직업 교육 중, 진동이 울린다. 유치원에서 온 전화다.

"어머님, 하나 오른쪽 귀가 안 들려서 불편하다는데 알고 계셨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침에 보낼 때만 해도 그런 말이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지?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육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다. 이비인후과에 데려갔더니 귀에 농이 가득 차서 잘 안 들리는 거라고 했단다. 심각한 중이염이다. 2주 정도 코를 훌쩍거렸지만 그냥 지나가는 감기라 생각했는데 귀로 넘어가서 고름이 찼구나.

취직 한 번 해보겠다고 8년 만에 집에서 나온 지 석 달째다. 내가 밖에 나가는 게 싫은지 아이는 석 달 동안 안 아픈 날이 거의 없었다. 아파서 힘들게 잠든 아이 다리를 주무르며 혼자 눈물을 흘렸다. 돈 버는 것도 아닌데 괜히 나와서 애만 아프게 하나, 다시 전업주부가 되어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든다.

엄마, 아빠한테 취업 교육받는 석 달 동안 애들 하원을 맡기고 용돈 한 번 못 드렸다. 집 나오니 다 돈이다. 교통비, 점심값. 돈 벌러 나와서 지출만 하니 애가 탄다.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

새롭게 뜨고 있는 프로그래밍 언어 파이썬은 들어도 잘 모르겠다. 매번 CTRL+C, V를 반복하며 겨우 따라갔다. 머리가 아프다. 기초만 해서 언제 취직을 할까? 취업을 할 수는 있을까? 내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괜한 짓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재밌다. 말하는 걸 좋아해 말을 글로 바꿨다. 글은 금방 써지는데 졸작이다. 그래도 재밌다. 새벽 2시까지 글을 써도 지치지 않는다. 심장이 뛴다. 36년 만에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다. 엄마 아빠 덕분에 직업교육도 무사히 마치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었다.
   
 빅데이터 직업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이 만든 책
 빅데이터 직업교육을 받은 수강생들이 만든 책
ⓒ 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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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야 하는 일은 육아와 취업이다. 텔레마케터(TM) 모집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다.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으세요?"
"(지금 당장이라도 가지요) 네."

시간 조절이 된다는 문구를 보고 시간을 좀 줄이고 싶다고 했다. 알아보고 연락을 준다더니 아직 연락이 없다. TM 아르바이트에 떨어졌다.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어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로 들어가니 바 도우미, 카드나 보험 판매 구인 공고로 가득하다. 다시 워크넷에 들어가서 TM 쪽으로 원서를 넣었다.

취업이 안 되면 창업을 알아봐야지. 부산스타트업카페에 창업 컨설팅을 받으러 갔다. 창업 컨설팅을 무료로 해준다. 한 사람에 총 6번 신청할 수 있다고 했다. 상담 시간이 2시간인데 1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왔다.

창업을 하려면 아이디어나 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데 아무것도 없다. 취업을 하고 싶지만, 경력도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찾지 못했다. 창업시장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보지만 그마저도 내 길이 아니다.
 
 동해선 경전철에서 만난 비둘기. 내 신세 같다.
 동해선 경전철에서 만난 비둘기. 내 신세 같다.
ⓒ 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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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동해선 경전철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훠이~" 비둘기를 쫓아내는 소리가 들린다. 경전철 안에 들어와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콕콕 쪼아먹다 쫓겨난 저 비둘기가 측은하다. 아무 경력없이 취업 열차에 올라타려다 쫓겨난 내 모습같다.

아직 취업은 못했지만 8년 만의 외출은 매일 나만의 레드카펫을 밟는 것처럼 황홀했다. 교육을 받는 동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았다.

나 대신 아이들을 맡아준 엄마 아빠께 밥이라도 사드리고 싶어서 교육이 끝나고 함께 식당에 갔다. 계산을 하려는데 "돈 쓰지 마라" 아빠가 먼저 계산하셨다. 비싼 밥도 아니고 6천 원짜리 정식인데 아빠가 사주신다.

2020년에는 취직해서 엄마 아빠께 당당하게 밥 한 번 사드리고 싶다. 내가 결제를 하면 "잘 먹었다" 이 말 한 번 들어보는 게 취업 준비생인 나의 새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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