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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희롱 발생 후 피해 당사자는 사안에 따라 고용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거나 형사·민사 소송 등의 행정적·법적 절차를 이용한다. 이에 서울여성노동자회(이하 '서울여노')는 행정적·법적 대응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과 진행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개선점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 1차 간담회를, 올해 6월에 2차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서울여노 내담자이자 직장 내 성희롱에 대응한 당사자 5명과 전문가 4명(서울여노 자문위원회 변호사, 공인노무사 및 심리정서지원전문가)이 자리에 함께했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응한 경험이 있는 간담회 참여자(이하 '대응자')에게 직장 내 성희롱 대응 시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물었다.

할 수 있는 건 인터넷 검색뿐

길을 걸어가다 강도를 만날 것을 예상하고 대비하지 않는 것처럼, 일하는 직장에서 성희롱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고 대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응자들은 자신이 피해자가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한다.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해야할지도 몰랐을 뿐더러 주변에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성희롱 피해는 누군가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일이어서 쉬쉬하게 되고 그런 이유로 더욱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도처에서 발생하나 '없는 일'이 된다. 설사 가까운 이에게 고충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위로 받고 공감을 얻을 수 있을 뿐 실질적인 대응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대응자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지만 실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구의 도움을 받으라는 안내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 혹은 어디엔가 도움을 요청할 생각할 수 있다는 정보조차 없다.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고 대응 방법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검색 뿐'이었다.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발생 후 참여자들은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잘못을 했으니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내려진 처벌은 피해의 고통에 비해 너무나 가볍다. 때로는 가해자가 변호사를 통해 합의하자는 제안을 먼저 해온다. 물론 일말의 미안함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어떠한 벌도 받지 않기도 한다.

오래 일한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했는데 프리랜서는 노동부에 진정을 할 수도 없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한 것보다 자신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도 큰 충격이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하고 경찰서에 고소하는 것은 사회에서 처벌하길 바라는 것인데 고용노동부에서 성희롱 사실이 확인되어도 회사는 시정 지시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말하며 차일피일 미루기도 하고 과태료를 냈으니 징계하지 않겠다고 우기기도 한다.

분명히 회사 대표, 그러니까 사업주라고 생각했던 그가 성희롱을 한 행위자인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하고 나니 법인의 대표는 사업주가 아니라 한다. 법인의 대표는 사업주가 아닌 상사이니 법인이 법인 대표를 징계하라고 한다. 법인이 법인 대표를 징계한다고? 회사에서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징계를 했다지만 제대로 징계위원회를 열었는지 피해 당사자는 알 길이 없다.

사회에서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니 결국 이런 생각을 하고야 만다.

"이 사람들 반드시 벌 줘야겠다." "저들에게 벌주는 날이 내가 퇴사하는 날이다."

피해자를 낭떠러지로 밀어뜨리는 사회. 제대로 된 안정망도 없고 묵묵부답의 사회. 결국 국가에 기댈 수 없고 피해자 스스로가 가해자를 벌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불신의 사회. 한 명의 개인이 투사가 되어 싸울 수밖에 없는 고통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국가는 사회 유지를 위해서라도 법과 질서의 안전망을 작동시켜야 하며 이는 '이전과 같게'가 아니라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근로감독관이 말했다, 외국인인데 통역은 어떻게 해요?

고용노동부는 피해자인 나를 보호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참으로 안일했다고 대응자들은 입을 모은다. 직장 내 성희롱 진정 이후 진행 절차를 안내 받지도 못했고 진행 상황을 알 수도 없었다. 늘 애가 타서 전화를 하고 일정을 묻고 진행 상황을 묻는 것은 피해 당사자였다.

조사 시에 근로감독관의 태도나 질문으로 인하여 2차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한 대응자는 근로감독관이 성희롱 가해자인 회장이 잘 생겼다고 물어봤었다고 말한다.

사건 진행 중에 담당 근로감독관이 바뀌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니 피해 사실을 떠올리는 게 괴롭고, 말하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 새로 담당이 된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 대응자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과 같은 경우 담당 근로감독관이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사건 처리를 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던 대응자는 성희롱 행위자가 외국인이었는데 근로감독관이 이를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 근로감독관에게 왜 행위자를 소환 조사하지 않느냐 물으니 '통역은 어떻게 하냐?'고 되물었다. 사장이 외국인이거나 행위자가 외국인인 회사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한 기사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2019년 6월 고용평등법 위반 신고 중 성희롱 신고는 총2915건으로 이중 20건(0.68%)만 기소 처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한정애 의원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의식은 높아졌으나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직장 내 성희롱이 범죄라는 인식을 하고 있지 못하다며 근로감독관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 실시 및 전담 감독관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 전담 근로감독관을 두겠다고 했으나 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할뿐더러 전문적인 역할을 기대하기는 아직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직장 내 성희롱 대응 안내서 _ 검색보다 이책 ItCheck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여성노동 전문 상담창구 ‘평등의전화’ 25년간의 현장경험과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의 전문성을 토대로, ‘검색보다 이책 ItCheck - 직장 내 성희롱 대응 안내서'(이하 「이책 ItCheck」)를 발간하였다. 서울특별시성평등기금 후원으로 제작했다.
▲ 직장 내 성희롱 대응 안내서 _ 검색보다 이책 ItCheck 서울여성노동자회는 여성노동 전문 상담창구 ‘평등의전화’ 25년간의 현장경험과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의 전문성을 토대로, ‘검색보다 이책 ItCheck - 직장 내 성희롱 대응 안내서"(이하 「이책 ItCheck」)를 발간하였다. 서울특별시성평등기금 후원으로 제작했다.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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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안도와 내 잘못이 아니라는 위안이 교차

회사로부터 2차 가해에 대한 괴로움,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으로도 힘들었던 것 등에 대한 토로도 이어졌다. 내가 예민해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씁쓸한 안도와 내 잘못이 아니라는 당연한 위안이 교차했다. 또한 '피해자로 남고 싶지 않다', '내가 물러서면 가해자는 똑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다'라는 이유로 싸움을 끝낼 수 없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고통스럽지만 그만둘 수 없다. 그리고 이 싸움을 이어 나올 수 있었던 것에는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경찰보다 서울여노를 더 믿었다" "심리정서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 힘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나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믿고 의지하며 함께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큰 힘이었다. 그래서 여성노동자회가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고 더 많은 성희롱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Times_Up을 위한 서울여성노동자회 내담자 간담회 서울여성노동자회(이하 ‘서울여노’)는 2018년 5월, 2019년 6월에 걸쳐 직장 내 성희롱으로 행정적·법적 대응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과 두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서울여노 내담자이자 직장 내 성희롱에 대응한 당사자 5명과 전문가 4명(서울여노 자문위원회 변호사, 공인노무사 및 심리정서지원전문가)이 자리하여 대응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개선점을 모색했다.
▲ #Times_Up을 위한 서울여성노동자회 내담자 간담회 서울여성노동자회(이하 ‘서울여노’)는 2018년 5월, 2019년 6월에 걸쳐 직장 내 성희롱으로 행정적·법적 대응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과 두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는 서울여노 내담자이자 직장 내 성희롱에 대응한 당사자 5명과 전문가 4명(서울여노 자문위원회 변호사, 공인노무사 및 심리정서지원전문가)이 자리하여 대응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개선점을 모색했다.
ⓒ 서울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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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로만 남지 않을 것이다. 모든 피해자들이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 시간들이 쉽지 않다고 당사자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싸움을 시작하고 끝내지 않은 이유가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의 피해에서 피해자로 남지 않기 위해 싸운다. 모든 걸 걸고 싸우는 그들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보며 어렵고 더디지만 더 나은 내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움튼다.

관련 링크 : 
서울여성노동자회: 
「검색보다 이책ItCheck - 직장 내 성희롱 대응 안내서」 배송 신청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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