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사무실에서 안내말씀 드립니다. 회색 고라니를 잃어버리신 입주민께서는 관리사무실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천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 살면 가끔 특별한 방송이 나오기도 합니다. 오늘은 회색고라니를 보호하고 있다는 방송이 나왔어요. "고라니라고? 그것도 회색?" 제 귀를 의심하며 인터넷에 회색 고라니를 쳐보았습니다. 그런데 회색 고라니 종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아기고라니 사진 중에 회색 빛깔인 것들이 있었어요.
잠시 주인이 한눈 판 사이 집을 뛰쳐나온 걸까요? 아니면 인근 숲에서 길을 잃은 아기 고라니가 아파트 단지에까지 들어오게 된 걸까요? 그걸 잡아서 관리사무소에 가져다준 사람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딸이랑 집근처 마트를 가는데 길 한가운데 갑자기 토끼가 앉아있는 거에요. 처음엔 아파트 단지에 사는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귀가 분명 토끼였어요. 풀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람 다니는 길로만 가는 걸 보니 집에서 탈출한 녀석 같아서 주인을 찾아주려고 그 토끼를 쫒아가기 시작했어요. 애초에 토기를 잡겠다는 건 야무진 착각이었다는 것을 아파트 단지를 한 세 바퀴쯤 돌고나서야 깨달았어요. 어찌나 발이 빠른지 좀처럼 간격은 좁혀지질 않고 기다리다 뛰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토끼였어요. 그날 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를 쫓아가던 심정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라는 엉뚱한 상상도 잠깐 했습니다.
토끼는 반려동물로 아주 흔하지요. 실제로 고라니, 원숭이, 돼지 등 다양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제 주변에도 악어만큼 큰 이구아나를 예뻐 죽겠다며 키우는 사람도 있고, 매일 밤 수조를 기어 나오는 초록색 게와 가족처럼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반려동물의 전성시대입니다. 예전 같으면 정원에 나와 노는 아이들의 수가 더 많았는데 요즘에는 강아지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이는 낳지 않고 반려동물을 자식 대신 키운다는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아기 고라니가 아파트 단지에 등장했을 때 누군가가 잃어버린 반려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겠지요. 그리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 찾는 방송이 아파트에서 가끔 나오곤 했는데, 요새는 반려동물 찾는 방송이 흔하게 나오는 세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