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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재판장에 들어섰다. 동반 자살을 위해 인터넷에서 만난 이들이었다. 다행히 자살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판사가 말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강제로라도 장기간 구금해야 하는 건 아닌지 깊이 고민했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고 한 깊은 고뇌와 참담한 심정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니 살아달라."

이어 판사는 청년들에게 자신이 직접 고른 책 두 권을 선물했다. 한 청년에게는 차비로 쓰라며 자신의 사비 20만 원을 따로 전했다. 청년들은 눈물을 흘렸다. 최근 눈길을 끈 뉴스였다.

판사라면 늘 날카롭게 꾸짖으며 아픈 말만 던질 것 같았다. 그런 판사가 따듯한 위로를 전했다는 뉴스가 신기했다. 그 판사에 대해 알고 싶었다.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박주영이었다. 마침 그가 최근에 책을 썼다.

<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김영사, 2019)다. 저자는 스스로를 '시골판사'이자 '승무판'이라고 소개한다. 7년을 변호사로 일하다 판사가 된 재야 출신 '승진과 무관한 판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김영사, 2019)
 <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김영사, 2019)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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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는 한 판사가 고민한 흔적이다. 그 흔적에는 분노도 드러나고 미안함과 슬픔도 엿보인다. 나아가 부끄러움도 새어나온다. 판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인다.

저자는 노동에 대해 얘기할 때 분노를 터뜨린다. 저자는 가장 취약한 지위의 노동자가 가장 위험한 일을 맡게 되는 문제의 원인은 그게 기업에 이익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회사가 가장 값싼 사람을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때 가장 적은 배상금만 지급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자는 손해배상과 더불어 징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인명을 홀대하는 것이 기업에 결국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자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의견을 내보이기 쉽지 않은 판사임에도 솔직한 생각을 내보인다. 동시에 현행법에서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화를 내기도 한다.
 
사고가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숱한 조짐, 그 다급한 전조에 무심하지만 않았더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울화가 치민다. … 죽음조차 비용과 편익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기업의 비정함에, 그 많은 전조를 깡그리 무시하는 그들의 대범함에, 그 비정을 무정하게 규율하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무력하고 성긴 법을 들고 정의의 쪼가리라도 찾아보려는 내 한심한 한계에 신물이 났다. (95쪽)

"세상에 나쁜 아이도 없다. 서로 다른 처지의 좋은 아이만 있을 뿐이다"

소년범들의 이야기를 쓴 부분에서 저자는 슬픔과 미안함을 숨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소년범들을 따듯한 눈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다. 선처해준 아이들이 재범으로 다시 찾아오는 일이 반복될 때는 아이들에게 배신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고통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바로 거기서 '세월'을 발견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모든 사람의 불행이라 여기는 아이들을 무슨 재주로 고작 10분 재판을 통해, 두어 달에 한 번 만남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아이들이 소년범이 된 책임에 어른들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 (149쪽)

아이들의 사례를 담은 2장 '본투비 블루'는 가장 책장을 넘기기 어려웠다. 특히 당시 저자가 일기에 남긴 소년범들의 기록이 그렇다. 담담한 사실이 나열됐지만 그 무엇보다 슬픈 기록이었다. 이런 사회가 지속되는 것만으로도 미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양형 이유가 아니라 '최후변론'

책 후반부에는 '사법농단' 사태가 등장한다. 청와대와 '거래'를 위해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사법부가 재판을 '상품'로 전락시킨 사건이다. 지금도 여러 판사가 법정 피고인석과 증인석에 서고 있다. 저자는 사법농단 사태에서 판사들이 가질 수 있는 억울한 심정을 내보이기도 한다.
 
때론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독자적 예산편성권이 없는 법원이 잘못된 사법시스템과 제도를 고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하기에 벌어진 사태임에도, 본질적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비판만 하는 것에 대해, 행정처 근처에도 못 가보고 열심히 재판만 해온 대다수 판사가 왜 하나같이 모욕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해 수긍하기 어려워했다. (233쪽)

하지만 곧바로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차마 이런 일까지 벌어지리라곤 짐작하지 못했지만,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문제가 쌓이면 언젠가 사달이 나리라 생각했었다. (233쪽)

저자는 이 책을 양형 이유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최후변론'에 가깝다. 사법농단으로 법원과 판사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과연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이번엔 국민이 판사석에 앉았다. 그 아래 피고인석에 판사들이 앉았다. 저자는 자신과 판사와 법원의 신뢰 회복을 위해 최후변론을 이 책으로 전한 듯하다. 판결은 독자, 국민의 몫이다.

우리 법원, 판사 아직도 쓸 만한가? 믿어볼 만한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들의 최후변론을 읽고 판단해보자.

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은이), 김영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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