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이 개막했다.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동아시안컵이라는 명칭으로 더 친숙하다. 지난 2003년 초대 대회를 시작으로 2년 마다 열리는 동아시안컵은 아시아에서도 극동을 대표하는 지역 축구 선수권 대회로 자리잡았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며 이번 대회에는 한국 중국, 일본과 홍콩이 참여했다. 4개팀이 풀리그로 맞붙어 우승 팀을 가리는 방식이다.

한국은 지난 2017년을 비롯하여 총 4번이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대회 최다 우승국의 반열에 올라있다.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다면 최초로 3연속 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동아시안컵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대회가 아니고 일정이 A매치 기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각국의 유럽파 선수들은 출전하지 못한다. 월드컵-아시안컵 등 다른 메이저 대회에 비하여 위상이나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은 어쩔수 없다. 하지만 엄연히 정식 A매치로는 인정받으며 FIFA 랭킹에도 대회 결과가 반영되는 만큼 소홀히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회 주요 참가국인 한국, 중국, 일본은 각자 동아시아 지역 라이벌이자 특수한 역사적-문화적 환경으로 서로 얽혀있다. 이번 대회에는 불참했지만 북한까지 참여한 대회에서는 그야말로 불꽃 튀는 승부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최정예가 아닌 자국리그와 아시아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 위주라고 해서 가볍게 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다. 동아시안컵을 통하여 등장한 스타들이나 화제의 사건들도 적지 않았다.

아직도 많은 축구팬들에게 가장 먼저 회자되는 동아시안컵 경기 장면이 있다. 2003년 초대 대회 한중전에서 벌어진 '을용타'와 '소림축구' 사건이다. 이을용은 경기 중 중국 선수 리이가 자신의 발을 고의로 걷어찬데 격분하여 상대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보복 행위를 저지른 사건이다. 엄밀히 말하면 심하게 가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리이가 슬쩍 심판의 눈치를 보다가 한발 늦게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할리우드 액션을 했다. 

중국축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경기 내내 거친 플레이로 악명이 높았는데 '공한증'에 대한 중국 선수들의 콤플렉스까지 더해지며 양측의 신경전이 한층 고조된 상황이었다.을용타 이후 양팀 모두 선수들이 대거 달려들며 잠시 집단 몸싸움 상황까지 갔다. 이을용의 절친이자 현재는 방송인으로 더 유명한 안정환이 중국 선수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리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다. 이을용은 퇴장당했지만 한국은 선제골을 잘 지켜내며 1-0으로 승리했다.

경기후 을용타는 국내 누리꾼들에게 다양한 패러디와 합성짤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화제몰이를 했고, 이을용에게는 축구인생에서 가장 주목받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됐다. 지난 10일 중국과 일본의 2019 동아시안컵 첫 경기(일본 2-1 승)에서 중국의 거친 플레이가 또 한번 도마에 오르며 축구팬들 사이에서 을용타 사건이 다시 조명되기도 했다. 2009년 허재 농구대표팀 감독의 '기자회견 욕설' 사건과 더불어 스포츠계에서 중국의 비매너에 대한 응징 사례를 거론할 때마다 을용타 사건은 단골로 소환되곤 한다.

화제성에서 을용타에 묻힌 감이 있지만, 동아시안컵 초대 대회 최고의 선수는 유상철이었다. 유상철은 우승의 분수령이 된 중국전에서 결승골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대회 내내 주장으로서 맹활약을 펼친 유상철은 초대 MVP까지 오르며 맏형의 역할을 다했다.

동아시안컵은 '깜짝 스타' 탄생의 무대이기도 했다. 2008년 3회 대회에서 당시만 해도 아직 무명에 가깝던 곽태휘는 중국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골넣는 수비수'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국가대표팀의 주전급 수비수로 성장했다. 염기훈은 일본-북한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당시 부상으로 결장한 박주영의 공백을 메우고 허정무호의 핵심으로 올라섰다.

2010년 대회에서는 이승렬이 혜성처럼 등장하며 한일전(3-1) 역전 결승골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승렬은 동아시안컵의 활약상이 계기가 되어 그해 열린 남아공월드컵 본선에도 승선하는 기쁨을 누렸다. 2015년 대회에서는 권창훈이 동아시안컵을 통하여 A매치 데뷔무대를 가지며 한국축구의 주역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 2017년에는 그동안 대표팀에서는 '골 못 넣는 공격수'로 유독 저평가받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이 한일전에서 오랜만에 멀티골을 작렬하며 4-1 대역전승을 이끄는 활약으로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한국축구와 인연이 깊은 '인민 루니' 정대세도 동아시안컵을 통하여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의 정대세는 재일동포이면서 한국 국적을 지닌 북한 대표선수라는 독특한 정체성, 웨인 루니를 연상시키는 외모에 투지넘치는 플레이 스타일로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일으켰다. 정대세는 2008년 동아시안컵 일본과의 1차전에 이어, 한국과의 2차전에서도 연속골을 기록하며 향후 수차례의 국가대항전 맞대결과 K리그 진출 등으로 이어지게 될 한국축구와의 오랜 인연을 예고했다.

반면 동아시안컵으로 인하여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린 사례도 많다. 특히 한중일간 민감한 라이벌 구도의 특성상, 경기 결과를 두고 감독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월드컵같은 메이저대회 못지않았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조 본프레레 감독이다. 한국축구를 독일월드컵 본선으로 이끈 본프레레 감독은 아시아 지역예선을 통과하고도 좋지 못한 경기내용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실험적으로 운용했던 동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2무 1패에 그치면서 여론이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경질통보를 받고 말았다.

허정무 감독도 동아시안컵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를 뻔했다. 허 감독은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선수 점검과 전술 실험 차원으로 임했던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 0-3으로 참패하며 30년 만에 축구 A매치 사상 '첫 중국전 패배'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당시 월드컵 본선진출에도 불구하고 허 감독의 역량에 대한 불신여론이 심할 때라서 적지않은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허 감독은 다음 경기인 한일전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난 후에야 겨우 성난 여론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쿠엘류 감독은 2003년 초대 동아시안컵을 우승을 이끌었으나 이후 베트남-오만-몰디브 등 약팀들에게 잇달아 덜미를 잡히며 성적부진으로 경질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5년 동아시안컵에서 지도자 인생 30년 만에 처음 우승트로피를 거머쥐었지만 월드컵 예선에서 성적부진을 드러내며 역시 경질을 피하지 못했다.

신태용 감독은 2017 동아시안컵 우승과 한일전 대승으로 당시 '히딩크 복귀론' 등으로 위태롭던 입지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독일을 제압하는 '카잔의 기적'을 연출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반면 슈틸리케와 신태용에게 막혀 2회 연속 동아시안컵에서 부진을 보였던 바히드 할릴호지치 당시 일본대표팀 감독은, 이 대회의 부진이 빌미가 되어 일본축구계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얼마 남겨두지않은 상황에서 전격 경질되며 '일본판 본프레레'가 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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