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과 동방 박사> 스테인드글라스, 15세기 초 제작(1999 년 F. Pivet 복원)

<헤롯과 동방 박사> 스테인드글라스, 15세기 초 제작(1999 년 F. Pivet 복원) ⓒ 중세국립박물관

 
서 있는 세 사람과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왕이거나 최소 고귀한 신분으로 보이는 세 방문객의 시선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반면에 왕권의 상징인 홀을 쥐고 앉은 남자의 시선은 땅을 향하고 있다. 서로 눈 맞춤도 못하는 이 어색함은 무엇일까.

방문객은 바로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유명 인사, 동방박사 세 사람이다. 페르시아의 천문관 정도로 추정되는 이들은 '매우 기이한 별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전설처럼 내려온 '유대 왕 탄생'을 확신하여 길을 나선 것이다. 멀리서 출발해서, 별이 이끄는 밤에만 이동했음을 감안하면 꽤 긴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 와서 별이 갑자기 사라졌다. 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와 '유대 왕이 어디서 나셨냐'라고 묻고 다니자 온 장안이 술렁였다. 소문을 들은 헤롯왕은 깜짝 놀라 박사들을 불러들인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아마 베들레헴일 것이오. 아기를 찾거든 내게 알려주시오. 나도 경배하러 가겠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언제 나타났는지 자세히 말해보시오."


박사들은 자신들의 대답이 어찌 쓰일지 알지 못했다. 대답은 성경에 안 나와 있고, 헤롯의 극악무도한 조치로 인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헤롯의 조치는 이천년 전임에도 그 잔인함에 놀라고, 그 악한 본성이 결코 헤롯만의 것이 아님에 두 번 놀란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영화 <사바하>의 세계로 가 보자.  
 잠입 취재를 통해 '사슴 동산'의 경전을 손에 넣고, 해석하고 있는 박 목사

잠입 취재를 통해 '사슴 동산'의 경전을 손에 넣고, 해석하고 있는 박 목사 ⓒ CJ엔터테인먼트

  종교문제연구소 박웅재 목사(이정재)는 오늘도 종교 비리의 실태를 알림과 동시에 열악한 연구소 후원을 유도하는 데 열심이다. 최근 태백과 정선에서 발흥한 종교집단 '사슴 동산'의 실체를 파헤치던 박 목사는 얼마 전 영월의 어느 터널에서 발견된 여중생의 시신과 '사슴 동산'과의 접점을 포착하고, 어느새 미궁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검은 사제복을 휘날리던 훤칠한 신부를 기억하는가. 2016년 김윤석, 강동원 주연의 오컬트 스릴러 <검은 사제들>로 54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꽃미남 엑소시즘 장르의 포문을 열었던 장재현 감독이 다시 <사바하>로 지난 2월 극장에 돌아왔다. 연기와 흥행을 담보하는 이정재, 떠오르는 '신 스틸러' 진선규와 박정민 등 든든한 캐스팅, 탄탄한 짜임새, 성과 속,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의 모호함이 주는 가치관의 혼돈 등으로 보다 깊어진 장 감독의 역량을 짐작게 했다.

으스스 한 축사 구석에 '그것'의 처소가 있다. 16년 전 괴이한 형체로 태어난 '그것'은 어미 뱃속에서 쌍둥이 동생 금화의 다리를 물어뜯어 장애를 입혔다. '그것'의 탄생 일주일 후 어미가 떠나고, 아비마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금방 죽을 거라는 의사의 진단과는 달리 '그것'은 아직도 죽지 않고, 이 가족을 타향으로 떠돌게 만드는 우환거리이다.

아기들은 헤롯왕의 탐욕 때문에 죽었다

박 목사(이정재)는 강원도에 출몰한 신흥 종교집단 '사슴 동산'이 전혀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는 점에서 더욱 수상함을 느끼고 강원도로 향한다. 학교 후배인 해안 스님(진선규)의 도움과 고요셉(이다윗)의 잠입 취재를 통해 '사슴 동산'의 경전을 손에 넣는다.

그 과정에서 영월 터널에서 발견된 여중생의 시신과 이 사건이 맞닿아 있음을 알아채고, 취재를 이어가던 중, 지난 16년간 발생한 수많은 실종과 죽음이 사슴 동산 교주 김제석(정동환)을 가리키고 있음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이브, 때마침 티베트 대승 네충텐파가 한국을 방문했다. 영험한 예언자인 네충텐파는 지난 1985년에 김제석을 만나 중요한 예언을 들려준 바 있다. 그 예언을 들은 후 시작된 경전 집필은 2000년에 완성되고, 경전 말미에 적혀있는 알 수 없는 일련번호의 비밀이 바로 예언의 내용이었음이 드러난다.

"크리스마스가 기쁜 날이니?"

크리스마스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박 목사. 그는 예수의 탄생 때문에 죽어나간 베들레헴의 두 살 미만 남자 아기들의 희생이 불편한 것이다. 동방박사에게서 별이 나타난 시점을 자세히 전해 듣고 두 살 미만의 남아 학살을 자행한 헤롯왕. 아기들이 예수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가? 아기들은 헤롯왕의 탐욕 때문에 죽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티베트 불교의 대승 네충텐파(타나카 민)가 박 목사에게 과거 예언을 알려준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티베트 불교의 대승 네충텐파(타나카 민)가 박 목사에게 과거 예언을 알려준다 ⓒ CJ엔터테인먼트

 
헤롯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 이미 자기 아내와 두 아들을 죽인 바 있는 악명 높은 왕이었다. 모세의 엑소더스 사건에 마지막 참변은 이집트 장자들의 죽음이었다. 그 또한 애굽 파라오의 탐욕이 부른 참변이었다. 그전에 모세 역시 애굽이 실시했던 히브리 남아 학살 정책으로 죽었어야 할 목숨이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악마화된 사회일수록 약자에 냉혹하다.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며, 전적인 보호가 필요한 존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쉽게 내쳐진다. 악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교통 약자인 '어린이생명안전법'보다 관련 업계의 이익을 앞서 생각하는 목소리에, 당리당략의 지렛대로 이용하는 그릇된 정치인들의 목소리에, 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방구석 악플러들의 목소리에 악마가 숨어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을 만인의 하나님'으로 만든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말에 우리는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 '리멤버 크리스마스', 탐욕을 장착하고 무한 반복 재림하는 헤롯들에 의해 두 번 죽는 아이들이 없어야 한다. 무고한 아이들의 희생이 법안의 이름이 되었다. 해인이법, 한음이법, 태호유찬이법, 민식이법, 하준이법. 무력하고 죄 없는 아이들이 갈 곳이 신의 품뿐인 세상은 더 이상은 안된다. 리멤버 크리스마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도서출판 참서림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습니다.
사바하 이정재 장재현 검은 사제들 어린이안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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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봐도 성경이 떠오르는 노잼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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