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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2020학년도 수능 채점결과 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열린 2020학년도 수능 채점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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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나왔다. 언론은 입시 전문가의 말을 빌려 난이도를 예년과 비교하면서 영역별 등급 컷을 발 빠르게 전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만점자가 몇 명이며, 어느 지역,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가에만 여론의 관심이 쏠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분석 결과는 굳이 복잡다단한 통계 수치를 따지고 말고 할 것 없이 예상대로였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라선지, 분석 결과에 여론은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선 고등학교의 교사들조차 빤한 내용이라며 하나같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냐는 거다.

평가원 발표 내용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모든 영역에서 재학생보다 졸업생의 성적이 높았다는 것, 영역별 표준점수 평균과 1, 2등급 비율 모두 국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가 높았다는 것, 그리고 수도권 등 대도시 거주 학생들이 지방보다 모든 영역에서 성적이 높았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실 이러한 결과는 수능이 지닌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한계다.

내신과 비교과활동에 지친 아이들의 결심

우선, 졸업생의 성적이 높다는 건,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왕도가 반복적 문제 풀이에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내신 성적이 일반고에 견줘 상대적으로 불리한 자사고와 특목고에서 재수와 삼수를 불사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많은 이유다. 그들은 입학과 동시에 오로지 수능을 준비하고 학교도 그들을 배려해 '정시 대비반'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한다.

최근 교육부의 정시 확대 방침으로 일반고에서도 정시에 '올인'하겠다는 아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다양한 체험활동을 강조해 온 수행평가도 문제풀이 과제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정시 대비반'을 별도로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내신 성적에 낙담하고 비교과활동에 지친 아이들은 아예 자퇴를 고려하기도 한다.

당일 컨디션만 좋으면 자신도 '수능 대박'을 이룰 수 있다는 허황한 꿈을 꾸는 것이다. 언론 등을 통해 평소 최상위권이 아닌데 수능 만점을 맞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다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그들이 수업을 비롯한 학교생활에 충실할 리 없다.

곧, 그들에게 수능은 로또와 하등 다를 바 없다. 이른바 대학 재학생들의 '반수'가 드물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참고로, '반수'란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한 학기 휴학을 하고 수능을 준비하는 경우를 일컫는 신조어다. 굳이 대학을 자퇴하지 않는 건 나름의 '안전 장치'인데, '반수'에 성공하는 경우 한 학기 등록금은 헛돈이 되는 셈이다.

국공립학교 수능 대비에 상대적으로 취약

수능 성적이 국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가 높았다는 분석 결과 역시 문제 풀이 수업의 '위력'을 새삼 일깨워준다. 대개 사립학교가 국공립학교보다 진학 실적에 민감하고, 그것이 수능 점수로 나타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더욱이 연구시범학교나 혁신학교 등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교육개혁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국공립학교라면 수능 대비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수능 성적이 명문고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 국공립학교는 사립학교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전국에서 몇 남지 않은 비평준화 지역의 몇 곳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명문이라고 손꼽히는 국공립학교는 거의 없다. 평준화된 지역에서 대부분의 국공립학교는 학생과 학부모 어느 누구도 지망하지 않는, 그야말로 천덕꾸러기 신세다.

얼마 전 시험문제 유출 의혹에 휩싸였던 지방의 한 사립학교는 수능 성적과 명문대 진학 실적을 내세워 명문고를 자임하며 되레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교육청의 특별감사 결과를 두고 지역 명문고에 대한 탄압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성적조작이 사실이면 학교를 폐교하겠다는 황당한 문구를 아직도 교문에 게시하고 있다.

납작 엎드려 사과를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그들이 적반하장의 행태를 보이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명문대 진학 실적에만 매몰된 맹목적인 지역 여론에 기대어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낙후한 곳일수록 지역의 여론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반응하기 일쑤다.

해당 학교의 수능 성적이 여느 학교에 비해 뛰어난 것은 맞다. 내신 5~6등급의 성적으로 지방 국립대에 여럿 합격시킨 사례를 현수막을 내걸어 뽐내고 있을 정도다. 주위에선 교육과정을 편법으로 운영하고 시교육청의 지침을 어겨 수요일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상위권의 경우 주말에도 등교시키는 상황에서 점수가 안 나오면 이상할 지경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국공립학교라면 생각지도 못할 운영 방식이다. 어느 간 큰 학교장이 추상같은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교육감의 지시를 거부하며 마음대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1년 365일 밤늦도록 교실에 붙잡아놓고 오로지 수능 기출 문제집과 씨름하도록 내모는 학교에 당신의 자녀를 보내지 못해 안달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정시 확대, 지방은 더 죽는다

이 또한 새삼스럽진 않지만, 수도권 등 대도시의 학교가 지방보다 모든 영역에서 성적이 높았다는 분석 결과는 교육부의 정시 확대 방침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정시의 비중이 높아지면 사교육이 번성하게 된다는 건 상식에 가깝다. 많은 이들이 정시 확대 방침을 두고 '사교육 1번지'라는 서울 강남을 위한 노골적인 특혜라고 꼬집는 이유다.

특히 사교육이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수학 영역의 경우, 대도시와 읍면 단위 학교의 성적 차이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따름이다. 과거에도 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방학을 이용해 서울에 올라가 따로 사교육을 받는 지방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단기간에 수능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그만한 방법이 없다는 걸 그들이 더 잘 안다.

정시의 확대가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더욱 커지게 할 것이라는 점에는 사실상 이견이 없다. 이는 '지방의 소멸'이 운위되는 현실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중학생만 돼도 무작정 대도시로 향하는 아이들을 돌려세우지 못한다면, 지방은 이내 텅 비게 될 것이다. 학생이 없는데, 어떻게 학교가 남아있을 것이며, 학교가 사라진 마을이라면 수명이 다한 거나 마찬가지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시달리면서도, 수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출신 인재를 서울로 보내지 못해 안달한다. 지역민이 낸 세금으로 서울의 유명 강사를 초청해 대학입시 설명회를 여는가 하면, 기숙사를 세워 지역 인재들을 모아놓고 수능 준비를 시키는 곳도 있다. 아이들도, 지방자치단체도, 한결같은 목표는 물론 서울 소재 명문대 입학이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경기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이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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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수능이 가져온 씁쓸한 풍경

일단 서울로 진학하기만 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아이들의 객지 생활까지도 살뜰히 챙긴다. 현재 광역자치단체마다 '학숙'과 '학사', '인재숙' 등의 이름으로 서울에 지역 출신 대학생들의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다. 재원은 죄다 지역민이 낸 세금이지만, 특혜를 누린 그들이 대학 졸업 후에 지역민에게 진 빚을 갚게 될지는 미지수다.

평가원의 수능 성적 분석 결과 발표가 환류 작업의 일환일진대, 수능에 대한 성찰과 개혁으로 이어질 때라야 의미가 있다. 명확한 문제점이 드러났는데도 나 몰라라 할 거라면 굳이 통계를 내고 분석할 필요가 없지 않나. 만점자가 몇 명이고 누구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수능이 수업 방식을 획일화시키고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더욱 확대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듣자니까, 지난달 교육부의 정시 확대 방침이 발표된 후 대도시 유명 학원가 주변의 집값이 들썩인다고 한다. 이번 평가원의 수능 성적 분석 결과는 그러한 움직임에 확신을 심어준 모양새다. 더 나은 사교육의 세례를 받기 위해 지방을 벗어나 대도시로 향하고, 문제 풀이 수업 일색일지라도 사립학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공정한' 수능이 가져온 씁쓸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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