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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 로드리고가 처음에 지은 사진전 제목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서 꽃피다 갤러리 김유리 대표는 '내일'을 붙였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 내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 로드리고가 처음에 지은 사진전 제목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에서 꽃피다 갤러리 김유리 대표는 "내일"을 붙였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 꽃피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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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충무로에 있는 '꽃피다' 갤러리에 다녀왔다. 3년간 세계여행을 하며 남긴 에세이집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의 작가 박 로드리고 세희.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시리아의 사진들을 소개하는 전시였다. 로드리고는 11년 전 시리아가 평화로울 때 여행을 했다. 전시의 반은 로드리고 작품이었고, 나머지 반은 국내NGO '헬프시리아', 국제 시리아 민간 구조단인 '화이트헬멧', 한국에서 살고 있는 시리아 출신의 마르와의 작품이었다. 

"큰 마음 먹어야 갈 수 있는 나라"

사진을 다 둘러본 관객들에게 로드리고는 작품 배경을 들려주었다.

"시리아는 아랍 반도 유럽 대륙 만나는 지점으로 여행으로 가기에 찾기 쉽지 않다. 아래쪽에는 페트라 유적지로 유명한 요르단이 있고, 또 그 옆에 있는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주로 1~2년 장기 여행자 외에는 가기 어렵다. 큰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나라다."

그의 이야기는 나를 아랍 반도로 이끌었고,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장기 여행자들끼리 정보들을 주고 받으면서 '넌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으면 이구동성 하나같이 손꼽던 나라가 시리아, 리비아, 파키스탄, 이란이었다"며 로드리고는 그 중에서도 시리아를 꼽았다. "시리아에는 팔미라 역사유적지, 잘 보존된 로마식 원형극장 등 볼거리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건 사람들이었다"며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많았다고 했다. 
 
체스 두는 할아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 듯하다. 묘수가 떠올랐던 걸까
▲ 체스 두는 할아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 듯하다. 묘수가 떠올랐던 걸까
ⓒ 박 로드리고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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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간의 세계여행 뒤 다시 시작한 여행의 첫 여행지였다. 처음에 입국한 곳은 한국의 부산 같은 수도는 아니지만 꽤 큰 도시인 알레포였다. <체스 두는 할아버지>는 입국해서 처음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쉴 때의 풍경이다. <차 마시며 물담배>를 보시다시피 시리아 사람들은 30분~1시간은 기본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는 벽에 걸린 사진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날 불렀던 청년들>은 홍차나 간식을 같이 먹고 쉬었다 가라고 말했던 청년들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무슨 봉변을 당할까' 경계심부터 생겼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나한테 왜 이러나. 동양인이라서 호기심을 가져서? 뭘 바라는 거지?'라는 의심부터 들었다. 그런데 차를 마시고 쿠키까지 먹고 일어날 때까지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고, 고마워서 건넨 찻값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만약 내가 로드리고라면 어땠을까? 계속 나를 대입하며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로드리고는 사진 <과일 가게 청년>을 가리키며 "주인들은 나를 먹일 생각만 했다. 호객 개념이 전혀 아니다. 나보고 몇 개나 사갈 필요가 뭐 있나. 하나만 먹어라 하면서 과일이나 빵을 건넨 일들이 다반사였다"며 아직도 백프로 이해는 안 간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고, 듣는 우리들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시리아 사람들이 주는 놀라움은 갈수록 더했다. 

"'모스크가 어디야?'라고 물으면 한참 갈 곳을 손잡고 데려다 주거나 택시까지 함께 타고 데려다준다. 택시비를 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도 마찬가지로 내 돈은 안 받으려고 한다"며 로드리고는 끊임없는 시리아 사람들의 친절에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꾀를 내었다고 했다. 그를 직접 데려다 줄 수 없는 환경의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 그러나 시리아 사람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가게 문을 아예 닫거나 옆집에 가게를 부탁 하고 또 데려다 주었다. 
 
과일 가게 청년 얼마나 자주 권하면 로드리고는 '여행객들을 먹일 생각만 하는 주인들'이라고 표현 했을까
▲ 과일 가게 청년 얼마나 자주 권하면 로드리고는 "여행객들을 먹일 생각만 하는 주인들"이라고 표현 했을까
ⓒ 박 로드리고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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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환대를 해주던 시리아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던 그는 2011년에 시리아 전쟁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속에 빚진 마음을 갖고 살았다고 했다. 로드리고는 "재작년부터 압둘 와합 친구를 알게 되었고, 꽃피다 갤러리와 인연이 되어 이런 전시를 계기를 하게 되었다. 내년에도 시리아 작업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로드리고 다음으로 압둘 와합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로드리고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옛날에 그렇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과 기억들이 떠올랐다. 시리아 사람들끼리도 서로 잘 챙기지만 특히 여행객들은 길도 잘 모르고 애들이 장난칠 수도 있어서 지켜봐주는 문화가 있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된 압둘 와합이 시리아에 대한 설명을 계속했다. 

"시리아 사람들은 차, 간식 등 혼자 먹는 것을 안 좋아해서 먹고 가라고 말하는 게 자연스럽다.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주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는 일상인데 외국인들은 오해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시리아에 가서 이런 일을 겪어도 걱정하지 말아 달라.

나도 옛날에 한국 친구들이 길을 잘 몰라서 나한테 물어봐서 찾아주고 도와줬다. 혹시나 돈을 쓸 때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쓰지나 않을까 같이 다니면서 옆에서 지켜봐줬는데 오늘 로드리고 얘기를 들으니 그때 한국 친구들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싶다(웃음)."


압둘와합은 2007년 당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대학 법대생이었다. 다른 나라의 법을 더 공부하고자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다가 그때 길을 물어본 한국 친구들의 나라를 좀 더 알고 싶어 대신 한국을 택하였다. 한국에 온지 1년 반이 됐을 때 시리아 혁명은 시작 되었고, 민간인들을 돕고자 '헬프시리아' 활동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압둘와합은 '시리아'하면 난민, 전쟁, 테러를 사람들이 떠올렸을 텐데 이번 전시에서 "아름다운 시리아를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에도 시리아 난민 캠프를 다녀온 그는 시리아의 현 상황도 들려주었다. 

"마르와는 지옥으로부터 탈출해서 한국에 왔다.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축하할 일이다. 시리아에서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난민 캠프와 시리아에 갈 때마다 모습도 달라져있다. 그곳에 가면 내가 말이 좀 없어지는데 '외국 가본 적은 없지만 외국생활 힘들지? 시리아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네가 우리들의 희망이다. 그러니 결혼도 하고 잘 살아라'라며 오히려 시리아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준다. 절망을 느낄 때 이쪽(로드리고 사진들이 있는)을 바라본다. 언젠가 회복할 거라 생각한다. 한국에 마음 따뜻한 분들 많으니. 시리아에 평화 오는 그날까지 함께 해달라."

이어 로드리고가 울먹이며 말했다.
 
'인천공항 왔을 때 폭격 소리가 나지 않아 좋았다' 
 

"이 말은 마르와가 쓴 글의 한 구절이다. 우리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 소녀에게 무슨 죄가 있나. 나라가 어떤 정치적인 선택을 하든, 이 사람들도 우리들의 도움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뭐라도 해보자"

로드리고 작가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한번은 로드리고에게 전화가 왔다. 그때 하필 <시리아의 비가: 들리지 않는 노래>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로드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지?" 로드리고의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나는 수화기를 내려야만 했다. 갑자기 터진 울음을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수많은 폭격기들이 난무하고, 그 가운데 아이들이 희생되어 가는 와중에 나는 이렇게 조용하고 안전한 집에서 그들을 보고 있자니 한낱 먼지가 된 기분이 들었다. 10년 전 '나의 꿈은 무엇인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나'와 같은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것도 찾았고,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웃고 울고, 다시 웃었던 사진전을 보고난 후 비로소 그때 전화로 듣지 못했던 대답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 각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 큰 힘이든 작은 힘이든 뭐라도 말이야.' 

덧붙이는 글 | *사진 작품명은 기사 편의상 제가 임의로 붙였습니다. 
*사진은 구매가능하며 수익금 전액은 ‘헬프시리아’에 기부됩니다. 
*로드리고는 이번 사진전 뿐만 아니라 국내에 있는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의 평화항해 프로젝트성 사진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와 로힝자 난민 구호 사진집 도 출간하였습니다. 사진을 전시할 공간이 있다면 계속해서 전시할 예정입니다. 문의) 010-4728-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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