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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 기간을 맞아 김용균재단이 보내온 기고를 4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2018년 여름, 동생의 회사 앞에서 일인시위하는 장향미님.
 2018년 여름, 동생의 회사 앞에서 일인시위하는 장향미님.
ⓒ 장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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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달력을 보니 벌써 2019년 12월 1일이다. 한 달 뒤면 새해가 되고 곧 동생의 2주기 기일이 다가온다. 아직도 나는 동생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무척 낯설다. 앞으로 몇 년 혹은 몇십 년의 시간이 더 지난다 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때때로 나는 상상한다.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어느 날 동생이 반갑게 웃으며 불쑥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을 말이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주길 바라고 또 바란다. 

2018년 1월 3일, 동생이 죽은 그날부터 나는 매일 매일의 일을 휴대폰 노트에 빼곡히 기록했다. 어디서 누구와 만났고 무엇을 했는지, 짧은 단어 혹은 메모로 그날의 기억을 남겨두었다.

그때의 기록을 읽다 보면 휴대폰 액정 속 글씨들 위로 동생이 죽은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슬퍼할 겨를도 없이 힘겹게 동분서주하던 내 모습과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날의 일들이 마치 파일에 저장된 동영상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동생이 죽기 전 내 앞에서 펑펑 울면서 과중한 업무와 직장 상사의 괴롭힘 문제를 털어 놓았던 터라 나는 이미 동생의 죽음이 회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의 죽음 이후 본격적으로 대책위 활동을 통해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동생의 회사 동료들을 인터뷰하면서 회사의 문제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공공연한 회사의 위법행위를 관리 감독해야 할 정부 기관의 만연한 해태, 유가족에게 피해 사실 입증 책임을 떠넘기는 산재 제도의 문제점, 어렵게 회사의 잘못을 밝혀내 심판대에 세우더라도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로 오히려 회사에 면죄부를 주는 사법기관의 기만적 판결 등 사회 저변에 감춰져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점이 결국 동생 죽음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비극

이것은 어느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같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보편의 문제이며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비극이다. 

동생의 일이 있기 전의 나는 무엇이 옳은지는 잘 알고 있지만 직접 나서서 목소리 내기는 귀찮고, 내 가족에게 당장 피해만 없으면 되고, 괜히 나섰다가 찍힐까 걱정되고, 다른 누군가 대신 나서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불편한 진실들을 알게 되고, 앞에 나서는 것이 여전히 어색하지만 문제제기 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조금씩 같이 목소리를 내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동생의 죽음 직후 나는 대책위 관계자의 소개로 한국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을 알게 되어 이후 꾸준히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가기 시작했고 앞으로 우리가 겪었던 고통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문제점을 하나씩 바꿔나가는 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직업환경 피해자 대회(ANROEV)에 한국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이 참가하여 과로사 과로자살을 주제로 토론 세션을 열었다. 일본, 대만, 홍콩의 비정부기구(NGO) 활동가를 만나 동아시아에 만연한 과로문제를 공유하는 자리였는데, 나라는 다르지만 과로문제와 과로죽음을 야기하는 사회구조적인 원인은 똑같다는 씁쓸한 사실이 놀라웠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그날 만났던 각국의 단체들과 함께 과로문제에 대한 연대활동을 조직할 수 있기를 바라며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의 노력으로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면
 
지난 9월 열린 '과로사과로자살 문제 대응의 경험과 과제' 워크숍에서 발제하는 장향미님
 지난 9월 열린 "과로사과로자살 문제 대응의 경험과 과제" 워크숍에서 발제하는 장향미님
ⓒ 장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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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2월 10일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사고로 사망한 고 김용균님의 1주기이다. 지난 10월 26일 열악한 노동환경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산재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하기 위해 김용균재단이 출범했고 나 역시 후원회원 중 한 사람으로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내가 아무리 간절히 바란다 한들 동생은 살아 돌아올 수 없고 과거의 일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나와 우리의 노력으로 나와 같은 비극이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면, 한 사람의 미래가 바뀔 수 있고 한 가족의 미래가 바뀔 수 있고 한 사회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누구나 직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고 차별받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12월 7일 고 김용균님의 1주기를 추모하는 촛불행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참여하면 좋겠다. 스스로가 권리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연속 기고 ①] 내 손 잡아준 문 대통령의 말씀은 왜 말뿐이었나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연속 기고 ②] 누군가 죽은 자리로 일하러 나간다

덧붙이는 글 | 고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주간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는 분향소와 1주기 추모 전시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하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매일(2~10일) 저녁 7시(8일 일요일은 5시), 광화문 광장에서는 작은 추모 문화제가 열립니다. 12월 7일 토요일 저녁 5시, 종각역에서 1주기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립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는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의 후원회원이 되어 주십시오. bit.ly/김용균재단


태그:#김용균, #김용균재단, #에스티유니타스, #과로자살
댓글1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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