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06 08:17최종 업데이트 19.12.06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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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이 벌어지던 1968년에 18살이던 청춘들은 60세가 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무력하게 양로원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노년의 고독은 사람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갉아 먹는다. 홀로 남은 집에서 고독에 길들여져 가며 침묵과 친구를 할 수도, 자식들이 찾아와주길 기다리며 오직 그들이 베풀어줄 온정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늙어가면서도 사회에 활발히 참여하고,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를 세상과 나누며, 제 삶의 주체로서 이웃과 의미 있는 날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68세대들이 각자 선 자리에서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테레즈 클레흐, 참여형 노인임대주택의 개척자

아이 넷을 둔 젊은 중산층 주부였던 테레즈 클레흐의 삶이 분출하는 68혁명의 마그마와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삶이 자본가에 착취 당하는 노동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해방시키자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사슬을 끊고 해방되고자 했다. 페미니스트들의 회합에 갔고, 거기서 동지들을 만났다.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혼을 감행했고, 이후, 남성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택으로 레즈비언이 된다.

이후 평생을 지치지 않는 페미니스트 운동가로 살아오던 그가, 늘그막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꿈꾼 것은 85세의 어머니를 마침내 보내드리고 돌아섰던 길에서였다.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지 않기 위해 가까이 살며 돌보는 일은 남은 자식인 당신에게 큰 부담이었다. 자신도,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같은 경험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간절한 필요는 상상력을 가동시켰다. 그는 자신의 고민과 이제 막 발화되기 시작한 꿈의 설계도를 친구들에게 꺼내놓았다. 모두가 그 생각을 지지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유토피아의 설계도가 세상과 만나게 되는 '그날'이 찾아와 주었다.

2003년 프랑스 전역을 강타했던 폭염. 홀로 집에 남아 그 살인적 폭염을 견디던 노인 1만7000명이 죽었다. 테레즈 클레흐는 자신이 구상해온 프로젝트를 언론에 꺼내놓았다. <르몽드>가 그 생각을 대서특필해주자, 그 때부터 수많은 언론이 그가 '바바야가의 집'이라 명명한, 참여형 노인임대주택이 대안이라고 입을 모아 떠들기 시작했다.

실현된 유토피아
 

바바야가의 집 파리 근교, 몽트뢰의에 있는, 여성노인 전용 자치형 서민임대주택 바바야가의 집, 2013년 설립됨 ⓒ 목수정


테레즈 클레흐는 이제 막 불기 시작한 바람에 몸을 싣기로 했다. 우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았다. 20여 명이 눈을 반짝이며 모여들었다. 몽트뢰이에 시의 도움으로 설립한 '여성의집'이 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같은 꿈을 꾸게 된 20여 명의 여성노인들이 앉아 함께 주거하게 될 공간의 헌장을 썼다. "자치, 생태주의, 시민의식, 연대" 그들이 죽을 때까지 누리고, 지키고 싶은 가치였다. 타인이 제공해주는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받으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삶이 아니라, 제 삶의 주체인 사람들이 자치적으로 연대하는 주거공간을 그렇게 그려갔다.

테레즈는 르몽드 기사를 들고 시장실을 두드렸고, 도의회와 주택부 장관도 만났다. 그 결과 시가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부지를 마련해 주었고, 도의회와 정부가 건설경비를 마련해주었다. 법적 한계에 부닥치자 이 새로운 형태의 공동임대주택을 가능케 하는 법까지 신설했다. 테레즈 머릿속에 머물던 유토피아가 기자의 손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지고, 그로부터 꼬박 10년이 지난 후인 2013년 마침내 '바바야가의 집'이 몽트뢰이에 문을 열었다. 21명의 여성노인들과 4명의 청년들이 첫 입주자가 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아파트에서 살며 저렴한 임대료(250~500유로, 한화 33만 원~66만 원)를 내고, 공동체 운영을 위해 자신의 시간 일부를 제공한다. 공동 세탁실이 있고, 공동 텃밭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동의 활동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한 달에 한 번 공동의 식탁을 꾸리고,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고, 영화감상을 하고,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노년의 고립된 삶을 참여적 삶으로 바꿔주는 첫번째 조건이 바로 이 공간에서 나온다. 건물 안에서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도록 공동의 식탁과 민중대학엔 외부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바바야가의 입주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먼저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발딛는 곳도 바로 그곳이다. 거기서 입주자들과 얼굴을 익히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지원자가 되는 것이다.

시행착오와 진화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가 공공기관과 정치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입주자 자치 관리"라는 대목이었다. 양로원은 적지 않은 수의 관리인력이 필요한 반면 이곳은 일단 건물만 마련되면 사회적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지 않아 '저렴'하기 때문이다. 입주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율과 연대, 협력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만 잘 기억한다면 말이다.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여성노인들만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 프로젝트가 실현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국가와 지자체는 이 대목에서 가장 머뭇거렸다. 프랑스 헌법이 말하는 성적 평등을 위배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오래 살고, 그래서 혼자 고독한 노년을 보내야 하는 객관적 시간이 더 길며, 남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연금을 받는 사회적 약자이니 그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은 남성차별이 아니라고 테레즈 클레흐는 주장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는 남성과 여성이 같은 방식으로 늙어가지 않는다는 걸 간파했다. 여성들은 수평적 질서와 상호부조, 연대와 공동작업에 쉽게 적응하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이 제공해온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했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거주하는 한, 독립과 자치, 연대의 이상은 실현되기 힘들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었다. 남성들을 남성끼리 두면 그들 또한 자치의 방법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테레즈의 이러한 생각은 확고했으나, 결국 성별 구분없는 청년 세대의 입주를 4인에 한해 허락하는 것으로 법적 걸림돌을 피해가기로 했다.

꿈이 현실이 되는 과정에 종종 부상자가 생기기도 하고, 꿈이 가졌던 확장적 미래의 탄력을 잃기도 한다. 어떤 이는 그 꿈이 초라한 현실로 눈앞에 나타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기도 했고, 어떤 이는 그 집이 많은 사람들의 오랜 열망과 에너지가 빚어낸 열매인지도 모르고 저벅저벅 들어가 물적 조건을 누리기만 했다. 입주를 목전에 두고 있던 순간, 많은 협력자들이 그룹을 떠났다. 각자가 찾아낸 작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살아온 오랜 둥지를 떠나, 노년의 삶을 모험 속에 던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입주자는 말한다.

세상을 혁명시키는 데에는 관심이 있지만, 내 삶이 혁명되는 것은 거부하는 마음이기도 했고, 10년간의 전투가 그들의 마지막 남은 코스를 완주할 열정을 고갈시키기도 했다. 바바야가의 집이 문을 연 뒤 3년 후, 테레즈 클레흐는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그녀와 뜻을 나누었던 몇몇 친구들과 바바야가의 집이 가진 이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입주자들이 어울려 산다. 유토피아가 그대로 재현되진 않았지만, 그것이 사라졌다고 말하진 않는다. 함께 영화를 보고, 공동의 식탁을 마련하며, 연극, 회화 등의 아뜰리에를 열어 발견하지 못했던 내 안의 가능성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바바야가는 진화중이다. 삶이 그러한 것처럼.

리옹의 오아시스 프로젝트
 

오아시스 협회, 참여형 노인임대주택을 첫삽을 뜬 날 리옹 인근의 도시에 참여형 노인임대주택을 건설하기 위해 모인 오아시스 협회 회원들이 2018년 마침내 첫 삽을 뜬 후, 그들의 공동체가 함께 나눠야 할 가치들을 적어 손에 들고 사진을 찍었다. 존중, 자유, 다르게 늙어가기, 시민의식, 연대, 나눔. ⓒ 목수정


테레즈 클레흐가 주창한 프로젝트가 파리 근교의 몽트뢰이에서 매스컴의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좌충우돌 뿜어낸 연기는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갔다. 부르타뉴, 알자스, 리옹, 그리고 파리 근교의 여러 도시들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구들이 모여 양로원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지 않겠다며 농담처럼 바바야가의 집 얘기를 떠올렸다면, 점점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건 진지한 한판의 모험이 되어갔다. 세상에 아직 오지 않은, 노년의 삶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놓겠다는 생각은 그들의 삶을 이끄는 주된 모터가 되었다.

리옹 근교의 작은 도시 생프리에(Saint-Priest)에 사는 여성들은 테레즈 클레흐가 만든 바바야가 협회를 2010년 리옹에 만들었다. 그들 역시 생태주의, 자치, 연대, 협력의 바탕으로 하는 공동주거 주택을 원했다. 그러나, 몽트뢰이 프로젝트가 "여성전용"의 주거공간을 고집하면서 난관에 봉착한 모습을 목격하며, "여성전용"을 포기했고, 협회의 이름을 "오아시스"로 바꾼다. 그 과정에서 많은 멤버들이 떠났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많은 우여 곡절 끝에 그들은 600만유로(약 79억 원)에 달하는 부지 비용과 건축비 전체를 시가 부담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 2018년에 이 참여형 공동체 주거공간의 첫삽을 떴고, 입주는 2020년에 하게 된다. 물론 그 첫 입주자들은, 이 참여형 임대주택 탄생의 산파역할을 한 오아시스 회원들이 될 것이다.

2동의 건물에 40개의 주거 공간이 들어서는데, 한 동은 가족용 임대주택이며, 또 하나는 노인 전용 주거 공간이다. 노인 전용 임대주택은 그들의 거동이 불편해질 상황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휠체어가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넓은 문, 손잡이가 달린 욕조, 미끄러지지 않는 바닥. 물론 1층엔 넓은 공동의 공간이 있다. 거기서 이들은 공동의 프로젝트를 만들어가고, 참여와 연대, 협동을 위해 분투하고 협력할 것이다.

"우리도 해보자" 번지는 움직임

리옹의 바바야가가 발족하는 것을 본, 또 다른 리옹 근교에 사는 일군의 친구들이 "우리도 해보자"며 2010년 참여형 자치임대주택 프로젝트를 위해 나섰다. 그들은 처음부터 남녀 혼성의 친구 그룹이었고, 공기관을 설득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 있다는 걸 테레즈의 사례에서 보았다. 20명의 사람이 모여, 2010년 바샤멜이라는 협회를 조성한 후, 그들은 공기관을 설득하기보다, 먼저 일을 벌이기로 했다.

리옹 도심에서 7km 떨어진 볼스앙블랭(Vaulx-en-Velin)에 같이 땅을 샀다. 부지를 구입한다는 것은, 물러설 수 없는 전투에 같이 발을 담그기로 했음을 의미한다. 덜컥 겁이 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20명 중에 절반 이상이 그때 떠나갔다. 결국 핵심 멤버로 남은 7명이 십시일반으로 부지를 구입했다. 반대로, 그 구체적 행위가 약속하는 구체적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발을 담그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시공을 하는 데 있어서는 지자체의 재정적 도움을 받았다.

"정부와 지자체는 독거 노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을 사용하고 있다. 우린, 그들의 비용을 아껴주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서로를 챙기는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한다. 정부가 우리의 프로젝트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멤버들의 생각은 자신들과 지자체를 설득했다. 이들 역시 생태, 자치, 협력, 연대의 가치를 자신들이 공유하고, 함께 나아가게 해주는 공통의 가치로 삼았다. 주택 건설 자체에 콘크리트 대신 볏단을 이용한 단열을 도입했다.

2010년에 첫 모임을 결성했고, 핵심멤버들이 토지부터 덜컥 구입하면서 속도를 낸 덕에 2017년 입주할 수 있었다. 이들 또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은 후, 결국 회사를 설립하고 7명이 주주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주인 회사가 만든 임대주택의 세입자이기도 하다.

68세대, 혹은 포스트 68세대인 그들은 각자의 사생활을 지킬 수 있는 개별 주거공간 외에 입주자 전원이 모일 수 있는 넓은 살롱, 일상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층마다 모일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을 마련했다. 공동 식사를 위한 넓은 부엌, 공동 세탁실, 창고, 그리고 2개의 공동 친구방도 갖췄다.

또한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공간의 일부는 저소득층이 저렴한 임대료로 입주할 수 있도록 내주었다. 다만 공간이 마련한 헌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입주할 수 있다. 입주자 연령을 60세 이상으로 한정하는 다른 경우와 달리, 연령대별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에서 입주가능 연령을 40대로 낮추었고,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입주자간 문제를 해결하고 소통하는 정기 회의를 연다.

이들은 한 사람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전체를 끌고 나가는 형태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한다. 모든 결정과 행동은 성원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진 책임감과 자발적 의지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연대도 민주주의도 없다는 것을 앞선 사례들을 통해 겪었다.

또한 이들은 같은 형태의 임대주택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겪어온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기 위해 공동의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한다. 프랑스뿐 아니라, 인근 국가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의 유럽 탐방중, 위르쉴라와 함께 파리에 온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회원들, 자치형 여성공동체 주거공간 건립을 위해 노력해온 전 바바야가의 멤버, 위르쉴라와 함께 ⓒ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얼마 전엔 한국에서도 같은 꿈을 꾸는 여성들이 첫발을 내딛었다. 전주에 사는 비혼 여성들의 공동체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다. 그들 역시 '바바야가의 집'을 거쳐 런던의 '뉴그라운드'에서 여성들을 위한 공간 설립의 좌충우돌 분투기를 듣고 갔다. 그들이 만난 여성 활동가 위르쉴라는 이런 말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끊임없이 갖는 것.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온몸을 다해 투쟁하는 것. 그것이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있는 시민으로 살다가는 방법이다."
 

이것은 테레즈 클레흐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불태우며 운동가로 살아간 비결이기도 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다. 시간과 함께 덮쳐오는 병과 고독이 내 삶을 함락시키기 전에 튼튼한 공동체를 꾸리는 방법을 사회와 함께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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