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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의 숙소가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여행을 마치고 찾아가는 숙소는 쉼을 예견하는 짜릿함을 동반한다. 사람에게 먹고 자는 일이 엄연한 삶의 일부이기에 당연히 중요한 일일수밖에.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 셰프는 그렇게 말했다. 여행의 기억이나 마음을 흔들던 풍경, 그리고 그 시간 속의 말소리들도 되돌려주는 것 중에 맛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이처럼 여행지의 잘거리나 먹거리는 여행 후의 즐거움을 더 해 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전남 강진 여행에서 특별한 숙소의 경험은 남도 여행의 기억을 더욱 특별하게 해 주었다.
 
 사의재 골방을 내어준 주막 할머니와 다산의 이야기가 스민 마을의 고즈넉함...
 사의재 골방을 내어준 주막 할머니와 다산의 이야기가 스민 마을의 고즈넉함...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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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맑게 하되 더욱 맑게,
용모는 단정히 하되 더욱 단정히, 
말은 적게 하되 더욱 적게, 
행동은 무겁게 하되 더욱 무겁게' 

유배 중이었던 다산 정약용이 기거하던 주막의 방에 붙여두고 스스로 주문하며 실천했던 네 가지였다. 이 네 가지를 올바로 행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의 사의재(四宜齋). 전남 강진에 가면 한 번쯤 발 들여놓고 싶어지는 한옥 숙소다.
 
 한옥의 숙소는 입구부터 자연이다
 한옥의 숙소는 입구부터 자연이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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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四宜齊)는 정약용 선생이 강진으로 와서 유배 봇짐을 풀고 4년간 묵었던 자그마한 주막이다. 이 주막 할머니의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에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경세유표 등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과 같은 대학자가 세상에 나온 것은 이처럼 그를 품어준 강진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돌담 너머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
 돌담 너머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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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를 지나 낮은 돌담이나 토담 너머로 고즈넉한 한옥의 일상이 엿보인다. 연못 위로 걸쳐진 나무다리를 건너 주막을 향하고 초가집으로 기와집으로 찾아가는 향수를 맛볼 수 있다.

본래 사의재는 전통주막이어서 숙박 시설은 없었다. 그래서 강진군에서는 이곳에 한옥체험관을 조성하여 보완한 숙박시설이다. 주막 할머니와 다산이 지냈던 시절의 그 뜻을 기리고자 그 시대의 토속적인 모습 그대로 사의재를 복원하여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초가집 좁은 뜰에 가득한 대나무숲에서 나는 운치있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초가집 좁은 뜰에 가득한 대나무숲에서 나는 운치있는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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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재벌 기업의 한옥 호텔 신축 예정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엄청난 고급함과 수익성은 물론이고 다양한 유통 채널 이야기로 호텔사업에 진출한 이야기가 관심을 끌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지만 그 또한 기대할 만하다. 물론 그 럭셔리함은 소박하고 조촐한 사의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의 이야기가 스며든 사의재의 하룻밤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삐그덕 소리를 내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담장을 풍성하게 하는 대나무에서 사라락 소리를 내며 운치를 더한다. 내가 묵은 곳은 초가동 별채. 소박하다. 좁은 뜰에 올라 드르륵 미닫이 창을 열고 마루에 들어서니 향긋한 나무목재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다. 
 
 마루에 쳐들어오는 햇살에 눈부신 한낮~
 마루에 쳐들어오는 햇살에 눈부신 한낮~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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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로 들어가면 크고 작은 독특한 문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바깥 동정을 살피거나 잠깐 날씨를 느끼려 할 때, 누가 왔는가 아랫목에 앉아 빼꼼히 열어보는 쬐그만한 문, 옛사람들의 세밀한 생각들이 엿보이는 한옥 구조들, 이게 뭘까 궁금함에 여기저기 열어보는 재미도 있다. 한옥의 예스러움과 현대적인 편리함을 적절히 안배했다. 

햇볕 드는 마루에 걸터앉아 바라보는 좁은 마당도 정겹다. 현대인들에게 이런 잔잔한 시간은 진정 선물이다. 한옥의 안온함 속에서 오랜만에 개운하게 보낸 하룻밤이었다.   어스름 아침에 일어나 담장 아래 풀꽃에 맺힌 이슬방울이 반짝이며 반기는 걸 본다. 한옥마을의 새벽을 상쾌하게 산책하는 기분은 어디서나 느껴볼 수 없는 맛이다. 넓지 않은 사의재 마을의 신선했던 아침 산책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여행자의 기억이다.   

 
 아침나절의 저자거리가 한산하다. 장이 서면 붐빌 장터엔 볼거리가 많다.
 아침나절의 저자거리가 한산하다. 장이 서면 붐빌 장터엔 볼거리가 많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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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를 출입할 수 있는 입구의 청조루에 올라보면 저잣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 향수를 불러오는 주막(동문배반가)에 앉아 아욱 된장국에 손맛 나는 소박한 밥상 앞에 앉아서 한 끼 먹는 시간이면 여행의 즐거움을 한껏 더할 것이다. 파전과 강진 막걸리 한 잔 정도 곁들이며 옛 주막의 정취를 맛보는 것도 제법 괜찮다.

저잣거리의 점방이나 예쁜 물건을 파는 집을 기웃거리며 옛 향수를 느껴보는 시간은 행복하다. 약방이나 찻집에도 들러보며 그 옛날 저잣거리의 풍경 속에 잠겨보는 맛도 놓칠수 없다. 주말엔 공연과 행사도 있다고 하니 가히 복합 문화공간이다. 의외로 높지 않은 가격으로 인기가 좋아 예약이 밀려서 강진 군청에 미리 예약신청을 해야만 숙박이 가능하다.

자, 그리고 이제부터는 강진의 정취를 흠뻑 맛볼 남도 일번지 여행 시작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사의재길 27 사의재(061-433-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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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 - 잠깐이어도 괜찮아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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