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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정말 강하고 무서운 동물이다. 최근에는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귀여운 이미지나 북극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 대중에 부각되고 있지만,  곰은 굉장히 무섭고 위협적인 야수였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고 힘도 강하다. 근대 초까지도 곰이 습격해오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곰에 대해서 고대인들이 얼마나 많은 공포를 느꼈을지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한편으로 곰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곰은 엄청나게 강한 힘을 가졌기에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강한 힘을 원하는 사람들이 곰을 흉내내거나 곰 가죽을 쓰기도 했다. 곰은 공포와 숭배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동물의 왕은 곰이 아니라 사자다. 강한 영웅에게는 '북방의 사자'나 '사자심왕'과 같이 사자에 관련된 칭호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올해 재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언킹>의 주인공 역시 사자다. 곰은 어디로 갔을까?

 
 곰몰락한왕의역사
 곰몰락한왕의역사
ⓒ 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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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파스투로의 <곰, 몰락한 왕의 역사>는 곰이 자신의 자리를 잃고 사자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역사책이다.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프랑스의 중세사 학자로, 국립고문서학교에서 공부하고 중세 상징사를 강의한 사람이다. 그는 비록 다른 주제에 비해서는 덜 연구되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존재인 동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

그가 주목한 곰은 힘의 상징이었다. 저자의 언급에 따르면,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곰과 같은 힘을 갖기를 원했고, 곰을 사냥하거나 맞서 싸운 것이 유럽에서도 큰 영광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 왕가들은 자신들이 곰의 후손이라고 여겼고, 유럽 각지에 곰과 관련된 숭배가 존재했다고 한다. 곰이 가장 강한 힘이 곰을 숭배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게르만 세계의 남과 북 전역에서 곰은 특별한 숭배를 받던 동물이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강한 숲의 왕이자 모든 동물들의 왕이었다. 전사들은 곰을 본받고자 했으며 독특한 야만적인 의식으로 곰이 가진 힘을 자신에게 채우려고 했다. 씨족장과 왕들은 곰을 자신들의 주요 상징으로 삼았으며 무기와 문장에 새겨 넣어 그 힘을 붙잡아 두려 했다. -15P

또한 곰이 다른 동물과 달리 두 발로 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생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학자들은 곰이 사람과 매우 비슷한 존재이고 생활도 사람과 비슷하게 할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한다. 지금 보면 과장된 이론이지만 당시에는 곰이 인간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이는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지위를 곰에게 부여했다.

책에 따르면 이는 기독교에 엄청난 위협이었다. 신앙 아래에 모두를 일치단결시켜야 하는데 곰의 강한 힘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마을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때문에 교회와 기독교 학자들은 곰을 혐오스럽고 불길한 동물로 묘사했으며, 성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곰의 지위를 격하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곰은 점점 우화 속에서 더럽고 멍청한 동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꿀을 탐하고 먹을 것을 좋아하는 특징에 착안하여 음식을 찾다가 함정에 빠지거나 고통을 당하는 멍청하고 탐욕스러운 동물로 묘사되었다. 혹은 야생의 곰이 훌륭한 기독교 성인에게 길들임을 당하여 성인을 돕게 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곰과 관련된 의례를 기독교적인 의미가 있는 축일로 대체하는 일도 병행되었다. 한편으로 숲이 벌목되고 사람들이 사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곰이 거주하는 영역도 실제로 점점 줄어들었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곰이 있을 존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중세 초 교회는 성인전 전략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고대 곰 숭배의 마지막 잔재까지 완전히 제거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앞서 말했듯이 일부 사제들은 달력을 이용하는 방안을 일찌감치 생각해냈다. 그들은 일 년에 몇 차례 열리는 이 무적의 야수 숭배와 관련된 사냥과 의례들을 곰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큰 성인이나 지역 단위 성인들의 축일로 대체하려 했다. -138P
 
곰의 빈 자리를 대체한 것은 바로 사자였다. 사자는 실제로 유럽에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신비한 이미지가 있어 곰과는 입장이 달랐다고 한다. 기독교 학자들은 곰을 밀어낸 자리에 사자를 데리고 오면서 좋은 사자와 나쁜 사자를 나누어 좋은 사자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는데 주력했다. 나쁜 사자를 레오파르두스라는 가상의 동물로 따로 설정해 두고 좋은 사자의 이미지를 진짜 사자라고 선전한 것이다.

결국 중세가 지나고 곰은 고대의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서 동물원이나 사슬에 묶인 멍청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곰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있었고, 단순한 관광용 볼거리 이상의 지위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곰과의 전쟁에서 기독교인들이 승리한 것이다.

이 책은 신기하게도 인간이 아닌 동물을 중심에 두고 있는 역사서다. 당연히 역사는 인간이 기록하는 것이고, 동물에 대한 기록에는 관심을 덜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자는 동물에 집중해서 사람들의 마음속 동물들이 언제나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혀냈다.

동물을 보고 관찰했을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동물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널리 퍼져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곰이 사람처럼 산다는 주장을 믿었다는 이야기나, 용맹을 증명하기 위해서 곰과 1:1 결투를 벌여 이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괴리될 수 있는지, 가변적인지를 보여준다. 라이언킹도 언젠가 왕이 아니게 될지 모를 일이다.

곰, 몰락한 왕의 역사 - 동물 위계로 본 서양 문화사

미셸 파스투로 (지은이), 주나미 (옮긴이), 오롯(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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