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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피돌리오 광장에 세워진 고대 로마의 문서보관청으로 사용하던 시청사 건물 모습
 캄피돌리오 광장에 세워진 고대 로마의 문서보관청으로 사용하던 시청사 건물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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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은 고대 로마의 발상지로 전해지는 로마의 7개의 언덕 중 하나인 캄피돌리오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35.9m인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의 언덕 중 가장 신성 시 되는 언덕이다. 1537년 미켈란젤로의 설계로 만들어졌으며,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알려져 있다.

캄피돌리오 언덕에 들어서면 먼저 눈여겨보아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다. 먼저 완만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된 계단이다. 대부분의 계단은 아래에서 보면 위쪽이 좁아 보인다. 그러나 코르도나타 계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좌우 폭을 넓게 하여 올라가는 동안 너무 높게 느껴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코르도나타 계단은 아래에서 보면 실제보다 넓어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시각적 효과를 고려해 광장 계단을 쉽게 오르도록 설계한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곳이다.
 
 캄피돌리오 광장 좌측에 있는 카피톨리니 박물관 모습
 캄피돌리오 광장 좌측에 있는 카피톨리니 박물관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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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도 마찬가지이다. 광장 정면에서 시청사 건물을 보면 계단 설계와 같이 위쪽을 넓게 만들었다. 건물 전체 모습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향할수록 넓게 설계되어 마치 마름모형처럼 보인다. 역원근법을 활용한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여기서도 여실히 증명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뛰어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광장 중앙에 태양을 본뜬 듯한 문양을 중심으로 바닥에는 하얀 방사형 무늬들로 하나의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이 모양은 세상을 향해 퍼지는 빛의 상징이라고 한다. 문양을 보면 르네상스풍의 우아함이 잘 드러나는 모습이다. 광장 바닥의 방사형 무늬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하나의 꽃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캄피돌리오 광장에 그려진 방사형 무늬가 있는 곳이 로마로 통하는 길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바로 여기서 태동 되었다고 전해진다.
  
 로마를 건국한 신화 속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동상 모습
 로마를 건국한 신화 속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동상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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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입구에는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전쟁 영웅 디오스쿠리 쌍둥이 형제 석상이 좌우에 세워져 있다. 언덕 위로 올라오면 정면에 고대 로마의 문서보관청으로 사용하던 시청사 건물이 보인다. 시청사를 중심으로 세 개의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좌측은 카피톨리니 박물관으로, 우측은 미술관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현재 광장에 세워진 기마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광장에서 놓치면 안 되는 곳이 있다. 시청 정면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세워져 있는데, 로마를 건국한 신화 속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동상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동상을 쳐다보며 사진 찍기에 바쁜 모습을 본다.

로마 제국의 영광을 말해주는 콜로세움

항상 사진과 TV로만 보던 콜로세움을 현장에서 직접 보니 건물 외관이 흉측하다. 오랜 세월 여러 매체들을 통해 자주 보아온 터라 크게 낯설지는 않다. 비록 파괴는 되었지만 로마를 상징하는 대표 관광지인 콜로세움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다. 그러면 콜로세움은 과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지은 것인지 궁금했다.
 
 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콜로세움 모습
 로마의 대표적인 관광지 콜로세움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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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황제가 죽자 그의 신하였던 베스파시아누스가 그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다. 베스파시아누스는 황제에 오른 후 가장 먼저 혼란에 빠진 로마 제국의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는데 힘썼다. 그러나 네로 황제의 폭정에 시달려온 백성들의 원성이 네로 사후에도 끊이지 않자 그들의 마음을 달래야 할 필요가 있어 콜로세움 건설 계획을 세운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백성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네로가 시민들로부터 빼앗은 땅을 되돌려 주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경기장 건설을 계획한다. 콜로세움 건설 부지로는 네로가 시민들의 집터를 빼앗아 지은 화려한 황금 저택 안에 있는 인공 호수를 택했다.

여기에 세운 콜로세움은 높이 48.5m, 지름 187m, 둘레 527m 나 되는 4층 규모의 구조물이다. 서기 80년 티투스 황제 시절 완성된 콜로세움은 동시에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이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70년경 그때 당시의 기술로 이렇게 웅장한 경기장을 건설하는데, 공사기간은 단 8년 밖에 소요가 되지 않았다고 하니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콜로세움이 완성되기까지 여기에 동원된 인력들, 특히 노예들의 혹독한 노동 착취로 인한 고통과 노고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콜로세움은 3백 년 이상 피비린내 나는 검투사 경기가 벌어졌던 곳이다. 비록 백성들을 위한 오락시설이라고는 하지만 승자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장소가 바로 여기이다. 검투사 대기실에서 시합 순서를 기다리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검투사들의 심경은 어떠하였을까? 생각만 해도 그때 당시의 끔찍하고 잔혹한 모습이 떠올라 내부의 모습을 쳐다볼 수가 없다.
 
 건물 외벽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콜로세움 외벽 모습
 건물 외벽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콜로세움 외벽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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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을 보면 건물 외벽에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데 이는 붙어있던 석재들을 뜯어낸 흔적들이다. 뜯긴 흔적들은 비단 건물 외벽뿐만 아니라 콜로세움 내부에 있는 투기장, 검투사 대기실, 맹수의 우리 등에 있던 석자재들도 있다.

여기에서 뜯어낸 석재들은 주로 교회와 수도원 건축에 많이 재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뚫린 구멍에 박힌 납은 전쟁에 사용하기 위해 가지고 갔다고 한다.

로마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로 콜로세움만 한 곳이 없다. 비록 잦은 지진과 노르만족의 로마 약탈로 로마는 황폐화되고 콜로세움도 파괴가 되었지만 훌륭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로마인들의 자부심 하나는 대단한 것 같았다.

[참고문헌]
최도성 <일생은 한 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
권순금 <유럽 도시에서 길을 찾다>
최상운 <잊지 못할 30일간의 유럽 예술기행>
조영자 <지중해 3국과 유럽>
김지선 <바티칸 박물관 여행>
정보상 <유럽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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