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프로축구 K리그가 최종전에서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하며 막을 내렸다. 전북 현대는 1일 최종전에서 강원을 1-0으로 제치고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자력으로는 우승이 불가능했던 전북이었지만 동 시간에 치러진 경기에서 라이벌 울산이 포항에게 1-4로 완패하면서 승점(79점)이 같아졌고 다득점에서 전북(72골)이 울산(71골)에 한 골 앞서며 리그 우승이 확정했다.

프로축구 36년 역사상 승점이 같아 다득점 차이로 우승이 결정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전북의 황금시대를 개척한 최강희 감독에 이어 시즌 중반에는 간판 공격수 김신욱(상하이 선화)까지 중국으로 떠나고 포르투갈 출신 조세 모라이스 감독 체제에서 디펜딩챔피언의 자리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더 값진 의미가 있었다.

반면 비기기만 해도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던 울산은 '동해안 더비'에서 포항을 넘지 못하고 14년 만의 정상탈환이 좌절됐다. 울산은 2013년에도 최종전에서 포항에 덜미를 잡혀 다잡은 우승을 놓친 바 있어서 6년 만에 되풀이된 악연에 치를 떨어야 했다. 사령탑 김도훈 감독의 '큰 경기 징크스'와 골키퍼 김승규의 어이없는 드로인 실수로 인한 3번째 실점이 도마에 오르며 우승 좌절 이후에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다음 시즌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막차 티켓이 걸린 3위 결정전에서는 서울이 대구와 맞대결에서 0-0으로 비기며 내년에도 ACL 출전을 확정지었다. 지난 시즌 2부리그 강등의 위기까지 몰렸던 서울은 최용수 감독 2기의 실질적인 첫 시즌에서 어느 정도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공격축구로 돌풍을 일으켰던 대구는 아쉽지만 K리그의 신흥강호로서 자리매김하며 지역의 축구 인기를 부흥시킨 데 위안을 삼아야 했다.

이보다 하루 앞선 지난 11월 30일에는 인천이 경남과의 강등 대전에서 0-0으로 비기며 극적으로 1부리그 잔류를 확정한 바 있다. 인천은 올해까지 4년 연속 리그 최종전에서 1부 잔류를 확정하는 생존왕의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사령탑 유상철 감독이 췌장암 투병 중임에도 끝까지 벤치를 지키는 투혼을 발휘하며 팬들에게 축구 이상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선사했다는 평가다.

올해 K리그가 막판까지 그야말로 역대급 순위경쟁으로 팬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팀 간 전력 평준화와 선수들의 분투도 있지만, 역시 '스플릿 시스템'이라는 제도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12팀으로 구성된 K리그1은 팀당 총 38경기 가운데 33경기를 정규 라운드로 치른 뒤 성적에 따라 상위 6팀(그룹A)과 하위 6팀(그룹B)을 나누고 파이널라운드에서 같은 그룹끼리 나머지 5경기가 진행된다.

스플릿 제도의 명암

그룹A는 리그 우승과 ACL 출전권, 그룹B는 최하위권 팀들의 승강 전쟁이 최대 이슈가 된다. 비슷한 수준의 팀끼리 더 많은 경기를 치르며 팬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고, 순위경쟁이 걸린 팀들이 맞대결하면서 자연스럽게 막바지로 갈수록 빅매치가 많아진다. 2019시즌은 이러한 스플릿제도의 순기능이 가장 극대화된 시즌이었다고 할만하다.

K리그는 1983년 프로화가 시작된 이래 리그 운영 방식이 자주 바뀌었다. 풀리그에서 전·후기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플레이오프 제도 등 여러 가지 방식을 도입했지만 모두가 만족할만한 확실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충성도 높은 축구팬들은 대부분 유럽 선진 축구리그들이 시행하고 있는 풀리그제를 지지했지만 보다 더 많은 팬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만한 긴장감이나 화제성이 부족했다.

프로축구연맹이 고심 끝에 2013년부터 새롭게 도입한 것이 바로 스플릿제도였다. 사실 이 시스템도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이스라엘 등 유럽에서도 축구변방에 가까운 몇몇 리그에서나 시행하던 기형적인 제도를 왜 모방하냐는 반론도 많았다. 경기 수 증가로 선수들의 피로도와 부상 위험을 높인다는 점, 성적이 애매한 중위권팀의 경우 상하위 스플릿으로 나눠지는 시점에서 뚜렷한 동기부여를 상실하게 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플릿 제도 역시 이처럼 여러 가지 단점과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증명된 스플릿 리그만의 최대 장점은 리그 후반부까지 순위경쟁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단일리그-풀리그제에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순위경쟁이 일찍 고착화 되면서 맥이 빠지는 양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올해처럼 팀 간 전력차-승점차가 크지 않은 경우는 그야말로 매경기가 결승전이 될 수밖에 없다. 파이널 라운드가 리그전이면서도 사실상 플레이오프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프로축구연맹은 7년째 스플릿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K리그가 출범한 이후 리그운영 방식이 가장 오랜 기간 변동 없이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제는 스플릿제도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로 볼 수 있다.

올 시즌 유독 K리그가 재미있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 수준이 특별히 더 높아진 것은 아니다. 각 구단과 선수들이 매 경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집중력이 올라가고, 팬들은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치열한 순위싸움과 빅매치는 자연스럽게 이슈를 만들어낸다.

지금도 K리그를 폄훼하는 일부 안티들의 조롱처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보다 꼭 수준이 높아야 할 필요는 없다. 결국 축구팬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스플릿제도 K리그 전북우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