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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멋진 찻집도 도서관도 된다. 사계절 빵빵한 냉난방과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가 제공되니 한두 시간쯤 자도 인터넷 서핑을 해도 좋다. 1250원으로 시간만 잘 맞춰 옮겨 타면 반나절 이상도 이용 가능하다. 시내버스의 장점이다. 떠나고 싶기도 안 떠나고 싶기도 하다면, 여행을 가고 싶지만 돈과 시간, 그 밖의 일상 여러 가지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면, 그럼에도 새로운 풍경과 영감, 또어떤 여행의 묘미를 즐기고 싶다면 그냥 훌쩍 내 옆에 와 서는 시내버스에 올라보시길.[기자말]
낮잠에서 깬 토요일 이른 오후. 간단히 씻고 휴대전화, 책, 겉옷 하나 챙겨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 5분. 버스 안내판을 보다가 금방 '62번으로' 결정. 환승을 위해 짧게 몇 번 타봤을 뿐 어디서 출발해 어디를 거쳐 어디까지 가는지 전혀 모르는.

차에 올라 노선도를 쭉 훑었다. '온골마을입구', '냉정고개', '가야시장', '부전시장', '송상현광장', '양정', '수영사적공원', '광안시장', '광안리해수욕장'. 흥미로운 지명들. 첫 목적지는 가장 멀고도 궁금한 '온골마을'로 정했다. 
 
 온골마을의 따뜻한 첫인상
 온골마을의 따뜻한 첫인상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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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가 막 넘어 '온골마을' 도착. 낯선 동네. 어느 길로 갈까 잠시 고민하는데 조금 앞에 은은한 빛의 하얀 꽃들이 인사를 하듯 한들한들거리는 모습에 마음이 동했다. 바로 옆 작은 '슈퍼'에서 내놓은 듯한 화분이었다.   

작은 슈퍼 다음에는 작은 다방이 있었는데 이름이 '대가 커피숍'. 다들 작으면서 이름은 컸다. 다방 계단 위에는 누군가 길고양이밥을 담아두었다. 예쁘고 따뜻한 마음의 흔적을 연이어 만나니 처음 온 동네에 금세 정이 들고 안도감이 번졌다. 
 
 온골마을 작은 체육공원 산책로
 온골마을 작은 체육공원 산책로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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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자 작은 체육공원이 나오고 최근 조성한 듯 깔끔한 나무 산책로가 동네 윗길로 이어져 있었다. 짧은 산책로 끝에 서니 마을 전경이 다 보였다. 2층 높이의 단출한 집들이 주를 이뤘는데 가정집보다 물류나 전기제품 공장이 더 많은 듯했다. 

산책로 옆 도로를 벗어나니 양옆이 다 높다란 벽으로 막혀 있었다. 한쪽은 주택 재개발 공사 중이란 안내판에서부터 시작된 철제 펜스고 반대쪽은 기찻길 옹벽. 다시 한번 어디로 갈까 막막해졌는데 앞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걸어오고 계셨다.   

"시커먼 옷을 이래 입어갖고 이상한 사람인가시퍼가 돌아갈라다가… 구경 왔심 제대로 보고 가. 이리 와봐! 여 아래 여가 그 터널이여."
 
 온골마을 높은 기찻길 옹벽과 공사장 펜스 사이 좁은 골목
 온골마을 높은 기찻길 옹벽과 공사장 펜스 사이 좁은 골목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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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고 오는 길에 인터넷에서 온골마을 입구라는 작고 오래된 터널 사진을 본지라 아주머니께 물었더니 막 지나온 공사현장 바로 앞이었다. 아주머니는 부러 터널 앞까지 나를 안내해주곤 이상한 사람도 많으니 빨리 귀가하라 힘줘 당부했다.

"굴다리", "토끼굴"로도 불리며 오랜 세월 온골마을 주민과 함께 해온 터널은 재개발 바람에 휑하니 닦인 공사현장 한쪽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었다. 일생의 갖은 풍파를 겪으며 그 막바지에 서 있는 노인이 바뀐 세상을 묵묵히 관망하는 듯. 
 
 온골마을로 통하는 좁고 오래된 터널
 온골마을로 통하는 좁고 오래된 터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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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터널을 지나니 마침내 '온골행복마을'이라는 정식 간판이 나타났다. '행복마을'이란 철거에 의한 기존 재개발 방식이 아닌 동네의 원형을 되도록 유지하면서 그것이 가진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해 발전시키려는 부산시의 도시재생사업이란다.

하지만 2011년부터 '행복마을'로 지정된 마을은 앞은 철길, 뒤는 높은 차도로 막힌 채 고립되어 보였다. 해당 구청에 물어보니 터널을 건너오기 전 봤던 주택 재개발지에는 고층 아파트촌이 건설될 예정으로 행복마을과는 무관한 것이란다.

터널 또한 3년째 확장 공사 중으로 지금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규모만 넓힐 계획이라는데 아무래도 가까운 미래에 들어설 거대한 최신식 아파트와 어떻게 어울릴지 모르겠어서 구청 관계자에 물어보니 그도 모르겠다고 했다. 
 
 온골마을 밤 풍경
 온골마을 밤 풍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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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우리 마을은 포근하고 아늑한 마을 (...) 앞으로는 낙동강의 시원한 강바람과 겨울이면 양지발라 고즈넉하고 따뜻한 마음의 고향 (...) 어느날 기차가 다닌다고 높은 철둑으로 태양과 바람을 막고 (...) 뒤뜰은 차가 다닌다고 높은 둑으로 또 막았다.' 

깜깜해진 마을 골목에서 만난 주민 이강우란 분의 <온골마을 지하차도>란 자작시 일부. 마을의 역사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부디 수많은 귀한 옛것들이 그랬듯 온골마을 역시 무기력하게 사라지지 말고 '사방팔방 막힌 길과 벽을 뚫어' 다시 바람도 정도 통하길.  
 
 부산 부전시장
 부산 부전시장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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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골마을을 나와 33번 버스를 탔다. 앞서 62번 버스를 타고 오며 봤던 '부전시장'에 가기 위해. 신호대기 중인 차 안에서 이미 환히 불 켜진 시장 골목을 보면서 '저녁은 저기서 먹어야지' 했기 때문. 7시 무렵 주말 야시장은 성업 중인 가게와 쉬는 가게가 반반이었다.  

시장 하면 역시 먹는 재미. 뭘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면 걷는 중에 주인 할머니만큼 작고 평범한 한 식당에 손님들이 빼곡히 앉은 게 보였다. 비결이 궁금했으나 확인은 다음으로. 바로 몇 걸음 앞 환한 빵집의 '통새우고르케'와 '청양감자고르케'에 꽂혔기 때문.    
 
 시장 하면 역시 먹는 재미!
 시장 하면 역시 먹는 재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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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노릇 바삭하고 속은 푹신한 빵 가운데 수염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튀겨진 새우가 아삭하고 촉촉한 야채를 요 삼고 영롱한 케첩과 마요네즈 특제 소스를 이불 삼아 누웠으니 그만 흥분해서 단숨에 꿀꺽. 그런데 아뿔싸! 

'통새우고르케'에 이어 '땡초감자고르케'의 포장지를 벗기려는 순간 바로 내 옆의 찐빵집 가게에서 검붉은 팥소가 비치는 동글동글 뽀얀 찐빵들이 하얀 수증기를 내뿜으며 그 자태를 드러낸 게 아닌가. 아, 이미 반쯤 부른 배가 안타까울 따름. 

시계를 보니 어느새 또 1시간이 흘러있었다. 이웃한 생선가게 상인들이 자판과 도마, 가게 바닥을 센 물살을 이용해 시원하게 청소하는 모습이 보였다. 허리가 90도로 굽어진 늙은 상인도 천천히 상가 앞을 쓸고 있었다. 

'열심히 사는 누군가들을 보며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는데… 더 분발하자!' 
 
 주말 없이 일하는 시장 사람들
 주말 없이 일하는 시장 사람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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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전한 밤. 한두 시간만 더 빨리 집에서 나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낯선 동네의 풍경들이 너무 일찍 어둠에 가려진 듯해서. 끝으로 1번 버스를 타고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내가 사는 동네. 

바닷가에 도착하니 익숙한 밤바다 풍경과 파도 소리가 반갑다. 지난 3월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데 원하면 언제든, 무심코 나와도 어김없이 확 트인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어 참 좋다. 똑같은 하루가 절대 똑같은 하루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자연.  

주말이라 공연 중인 버스커들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관객들에 둘러싸인 남녀의 무대를 찾아갔다. 노래와 춤 실력, 유머까지 체격만큼이나 듬직한 팀이었다. 흥겨운 음악, 웃음과 박수 소리에 나도 동화되어 덕분에 '아름다운 밤'을 마무리했다. 
 
▲ 광안리 바다에 퍼진 '아름다운 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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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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