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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편집자말]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1226 열차가 마지막 역인 서울역에 정차해 있다. 이번 12월 30일 개정과 함께 사라지는 열차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1226 열차가 마지막 역인 서울역에 정차해 있다. 이번 12월 30일 개정과 함께 사라지는 열차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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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는 오는 12월 30일 시각표 개정으로 야간열차를 상당수 폐지한다고 밝혔다.

서울-부산 사이를 운행하던 야간열차를 대전-부산 구간을 오가는 낮 열차로 단축하고, 용산-목포 간 야간열차는 운행을 중단한다. 또 용산역과 광주역을 오가는 야간열차는 서대전-광주 구간으로 단축하면서 낮 열차로 변경된다.

야간열차가 점점 사라진다는 소식에 아쉬움을 갖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밤의 낭만을 싣고 달리는 야간열차는 지역 내 유일한 심야교통수단이었다. 교통편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이른 아침까지 특정 지역으로 향해야 하는 이들에게 대체 불가의 소중한 교통편이었다.

차가운 밤 유일하게 깨어 있던 길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 시 오십 분 /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 안정애 〈대전 블루스〉 중 일부

밤 공기 한 가운데를 가르며 달렸던 야간열차는 최근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숙소를 잡기 곤란한 배낭여행객이나, 내일로 여행객, 지갑 가벼운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서민 대중교통수단이었다. 자리가 넉넉할 때에는 옆 자리를 침대삼아 눕기도 하고, 배낭을 베개삼아 잠을 청하기도 했다.

막차가 도착할 시간에 출발해 첫차 출발 직전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는 시간을 소중히 쓰고 싶었던 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특히 해변가의 일출을 보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는 해가 뜨기 직전 열차가 역에 도착한다는 이점 덕분에 해운대, 정동진 등으로 향하는 열차에 사람이 북적이는 일도 잦았다.

가까운 과거에는 침대열차가 운행되어 불편하지만 열차에서 두 다리를 뻗고 잘 수도 있었고, 최근까지는 특실이 운영되어 널찍한 좌석에서 편히 잠을 청할 수도 있었다. 덜컹이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역에 정차할 때마다 북적이는 소리가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공간이 야간열차였다.

그래서인지 여러 미디어에서 야간열차의 이야기를 다루곤 했다. 안정애, 조용필이 불렀던 〈대전 블루스〉에도 야간열차가 소재로 등장하고, 1990년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에도 박중훈과 최명길이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도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야간열차는 특별한 소재로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심야버스에 밀리고, KTX에 밀리고
 
심야고속버스가 널리 운행되고, 프리미엄 버스가 심야에도 운행하기 시작했다. 야간버스는 프라이버시가 보호된다는 장점이 있었고, 프라이버시 보호가 어려운 야간열차는 경쟁력을 잃었다.
 심야고속버스가 널리 운행되고, 프리미엄 버스가 심야에도 운행하기 시작했다. 야간버스는 프라이버시가 보호된다는 장점이 있었고, 프라이버시 보호가 어려운 야간열차는 경쟁력을 잃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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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런 야간열차도 심야고속버스가 널리 보급되면서 설 자리를 점점 잃기 시작했다. 우등버스를 타면 옆 자리 사람과 부대끼지 않는 데다가, 가는 길에는 조명까지 꺼져 있어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역마다 멈추지 않고 무정차로 운행한다는 점도 컨디션을 챙기려는 이들에게 강점이었다.

선로의 개량도 야간열차에는 독이었다. 야간열차의 백미는 첫차 시간에 역에 떨어지는 것인데, 선로가 개량되어 소요시간이 줄어들자 더 이른 시간에 도착하여 오히려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야간열차와 비슷한 시각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숙소로 들어가거나, 아예 첫 KTX를 타는 것이 나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야간열차의 경쟁력이 약해지면서 오랫동안 운행해왔던 야간열차가 운행을 중단하는 일도 잦아졌다. 2014년에는 야간 새마을호가 ITX-새마을 도입에 따라 모두 운행을 중단했고, 2018년에는 여수에서 서울로 향하는 야간열차의 운행이 중단되는 등 밤마다 십여 개의 노선이 운행되었던 것도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해외 역시 이런 흐름은 마찬가지이다. 일본 역시 항공수요의 발달, 신칸센의 지속적인 개통으로 인해 야간열차가 경쟁력을 잃었다. 이에 따라 지금은 정기 야간열차가 '선라이즈' 단 하나만 남아있다. 유럽도 1800년대부터 운행했던 전통의 야간열차인 '오리엔트 급행'이 2009년에 운행을 중단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정도이다.

몇 남지 않은 야간열차,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듯
 
야간열차의 안. 낮 열차와는 다른 공기의 기운이 느껴져, 야간열차만의 감성을 좋아하던 이들도 있었다.
 야간열차의 안. 낮 열차와는 다른 공기의 기운이 느껴져, 야간열차만의 감성을 좋아하던 이들도 있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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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야간열차 감축에 대해 한국철도공사는 "이용객이 저조했던 데다가, 심야에 선로 정비 등 작업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야간열차를 폐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주말 등을 제외하면 이번에 사라지는 야간열차는 텅 비어 다니는 경우가 적잖았기에 폐지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국내에서 정기 운행되는 야간열차가 완전히 절멸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원주, 안동과 경주를 거쳐 부산 부전역까지 매일 오가는 야간열차는 현재도 사랑을 받고 있고, 청량리역과 부산역에서 정동진과 강릉까지 가는 야간열차도 '일출 열차'로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있다.

야간열차에는 낮에는 북적이는 보통의 열차와 다르게 착 가라앉아 있는 듯한 감성이 있고, 내가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곳의 새벽공기를 맡아보는 색다름이 있다. 그러니 야간열차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그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야간열차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한 번쯤은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태그:#야간열차, #한국철도공사, #무궁화호, #밤기차,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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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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