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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출간 소식이 뜨면 바로 예약 주문을 하는 작가가 있다. 18년째다. 서재가 터져나갈 만큼 책이 쌓여있는데도 '재미없는 책만 있다'고 혹평을 하는 아내가 유일하게 찾아 읽는 작가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아닌데도 내게 글쓰기를 배우고 싶게 만드는 작가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다 읽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바로 글 쓰는 사진작가 윤광준이다.
 
풍월당 음반 매장 풍월당 음반 매장
▲ 풍월당 음반 매장 풍월당 음반 매장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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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사랑한 공간들>은 물건을 주로 다룬 그동안의 글과는 주제가 사뭇 다르다. 글을 맛깔나게 쓰는 그가 '공간'을 선택한 이유를 상상해봤다. 답은 간단한 듯하다. 공간은 물건들의 집이니까.

한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나 생활한 공간은 더 내밀하게 그 주인을 추억하게 한다. 나로 말하자면 서울로 떠나기 전까지 딸아이가 사용하던 방에 들어가거나,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께서 휠체어를 끌고 산책하던 요양원 산책길을 재회하면 그리움이 치솟는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17층 루프가든 아모레퍼시픽 본사 17층 루프가든
▲ 아모레퍼시픽 본사 17층 루프가든 아모레퍼시픽 본사 17층 루프가든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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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공간들>은 말 그대로 윤광준 선생이 반해서 즐겨 찾는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서울 6호선 녹사평역, 씨마크 호텔, 스타필드,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롯데 콘서트홀, 뮤지엄 산, 베어트리파크, 죽설헌, 보안 1942 등등.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반 가게로' 찬사를 받는 '풍월당'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는 장소도 있지만 이름도 낯선 곳도 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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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6호선 녹사평역' 편은 유럽의 지하철 이야기라는 맛있는 반찬이 섞여서 윤광준표 명품요리가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편은 이 건물과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어서 또 다른 현대사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풍월당' 편은 예술을 사랑하는 설립자의 맑은 영혼이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F1941 화장실 화장실
▲ F1941 화장실 화장실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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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을 읽기 시작하다가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다. 너무 반갑고 빨리 읽고 싶은 마음에 휙 책을 넘겨보지도 않고 바로 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글은 따뜻하고 재미가 있는데, 텍스트만 이어지더라. 아무리 글이 수려하더라도 복잡한 구조를 가진 건축물을 설명하는데 사진이 없으면 조금 답답하지 않겠을까. 

설명이 수려하면 더욱더 그렇다. '그럼 뒷장을 넘겨보면 되지'라는 충고가 나올 법하다. 그러지 마시라. 텍스트에서 눈을 떼기 싫었으니까. 등산을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끊임없이 산길만 이어질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눈앞에 산 아래 장관이 펼쳐지는 그런 순간. 이 책이 그랬다. 어느 순간 '공간' 사진이 나타난다. 
 
유리창 내부를 비운 로비의 유리창
▲ 유리창 내부를 비운 로비의 유리창
ⓒ 윤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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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실력에 어지간한 자신이 없으면 사진 자료를 먼저 제시하거나 텍스트와 함께 싣는 경우가 많다. 책 <내가 사랑한 공간들>은 그 반대다. 텍스트가 이어지고 사진은 나중에 등장한다. 이것이 이 책의 묘한 재미다. 오롯이 텍스트로만 건물의 모습을 상상하고 작가의 정감 있는 글을 더듬어 나가다 보면 사진작가 윤광준의 사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마치 베토벤 9번 교향곡에서 '환희의 송가'가 등장하는 장면과 같은 '탁 트임'을 맛보게 된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에는 가족과 함께 갈 만한 아름답고 재미난 공간이 많이 소개돼 있다. 그중에서 내가 감탄했고, 가장 '윤광준답다'고 생각한 부분은 '나의 화장실 순례기' 편이다. 타일과 목재로 내부를 마감하고 둥근 세면대 거울이 걸린 '사운즈 한남' 화장실, 묵직하고 차분한 '포시즌스 호텔 서울' 화장실, 우아한 분위기의 조명과 차분한 색채의 조합이 세련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화장실, 탄탄하게 짜 놓은 나무틀 사이로 볼일을 보는 '김제 망해사' 해우소 등.

윤광준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극찬한 호텔 화장실은 어딜까.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굳이 서술하지 않는다. 일종의 선물이랄까. 아직 출간 소식을 모르는 듯한 아내가 가능한 한 늦게 이 책을 알게 되면 좋겠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을 서재 구석에 숨겨두기로 했다. <내가 사랑한 공간들>에 나오는 멋진 공간에 아내와 함께 가보기 위해서다.
 
표지 사진 내가 사랑한 공간들 표지
▲ 표지 사진 내가 사랑한 공간들 표지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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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공간들

윤광준 (지은이), 을유문화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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