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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지진 여파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뒤로 연기된 16일 오전 광주 북구 고려고등학교에 공부하기 위해 등교한 고3 수험생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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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마셨는데 음주 운전은 아니라는 거잖아요."

지난 28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두고 한 동료 교사는 이렇게 푸념했다. 누구보다 열정적인 그는 2022학년도 일반고에 전면 도입될 '고교학점제'를 누구보다 앞서 준비하고 있는 젊은 교사다. 전공과목은 물론 3D 프린팅과 빅데이터 분석 등 미래세대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분야에 대해 열심히 찾아 공부하고 있다.

동료 교사는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을 했지만, 핵심은 정시 확대 아니냐"며 조변석개하는 교육부의 결정에 안타까워했다. 정시 확대는 그가 대비하고 있는 고교학점제와 모든 면에서 충돌하는,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다. 그는 이를 모르지 않을 교육부가 은근슬쩍 여론을 떠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에 있어서 정시 확대와 고교학점제야말로 양자택일의 문제라는 것이다.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지만, 정시 비중을 높이면 고교학점제가 유명무실해지고, 고교학점제를 정착시키려면 정시의 역할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혹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발상이라면, 무지한 것이거나 국민을 기만하는 짓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시 확대 방침은 '당장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심산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시 30%'로 결론 내린 공론화 발표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번복하는 모습에서, 우리 교육은 백년대계이기는커녕 '1년 대계'도 못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푸념했다. 나아가 고교학점제는 다음 정권에서 살리든 죽이든 알아서 할 것이라고 손 놔버린 꼴이라며 혹평했다. (관련 기사: 대입 개편... 사회통합전형은 환영, 나머진 갑론을박)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
 
 ‘제1회 2019 고교학점제 정책 공감 콘서트,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왼쪽에서 4번째, 유은혜 사회부총림 겸 교육부 장관(5번째)
 지난 4월 12일에 열린 ‘제1회 2019 고교학점제 정책 공감 콘서트,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왼쪽에서 4번째, 유은혜 사회부총림 겸 교육부 장관(5번째)
ⓒ 경기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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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변해온 대학입시에 이골이 난 기성세대야 그렇다 쳐도, 아이들조차 학년마다 달리 적용되는 전형 방식에 어안이 벙벙하다는 반응이다. 새로운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될 때마다 경험한 것이지만, 이번엔 교육과정의 차이에다 대학입시의 변화까지 맞물려 학교가 온통 어수선하다. 학교마다 교육과정 담당자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학입시를 넘어 교육에 대한 명확하고 확고부동한 로드맵이 없다 보니 여론에 따라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결국엔 혼란은 고스란히 학교와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공정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조롱이라도 하듯, 언론에서는 사교육 시장과 학원가 주변 부동산이 들썩이고 있다며 일찌감치 풍선 효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이번 사달이 사교육계가 꾸민 '빅 픽처'라는 우스갯소리마저 있을 정도다.

고교학점제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일선 학교에선 이미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은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교육부는 연신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교사들은 '차 떼고 포 떼면 대체 무엇으로 장기를 두냐'며 헛웃음을 짓는다. 심지어 교육부의 방침은 처음부터 끝까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분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는 거다.

무엇보다 '학생 개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와 과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교육부의 발표에 내 주위 교사들은 대부분 어이없어했다. 정시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발상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정시가 과연 어떠한 노력과 능력을 반영하는지 따져보지 않고, 불공정한 학종의 '대체재'로 규정하는 건 명백한 퇴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공고한 신분제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은 결코 교육만으로 보정될 수 없는 문제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가 확연히 갈리는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따지기에 앞서 '결과의 정의'가 우선되어야 마땅하다. 정시가 학종에 비해 평등하고 공정하다는 건 난센스다.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제 학종과 내신 성적만을 전형 자료로 삼는 학교생활기록부교과전형과의 차이는 사실상 사라진다. 굳이 다른 게 있다면, 학종이 각각 500자 이내로 기재하는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과 담임교사의 종합의견이 더해진다는 것 정도다. 교육부는 이 정도의 학생 생활 기록만으로도 대학에서 충분히 학생 선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만, 이에 수긍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본디 학종은 자율 활동과 동아리 활동, 봉사 활동, 진로 탐색 활동 등 다양한 비교과 활동을 교과 성적 못지않게 중요한 역량으로 간주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한 활동이 부모의 배경 등 외부 요인이 작용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통째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제도의 취지 자체가 무력화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시에 무릎 꿇은 학종의 실패는 교사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열패감'을 심어줬다. 우리나라에서 교육개혁은 조물주가 와도 불가능하다는 냉소를 확산시켰고, 서열화한 학벌 구조는 물론, 서울과 지방 사이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정시 비중의 확대를 권고받은 16개 대학이 우리 교육의 실세'라는 한 아이의 말에 가슴을 치게 된다.

이대로는 학교에서 '기출문제 풀기'밖에 못한다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4일 오전, 대구 경북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번 시험은 전국 2053개 고등학교와 425개 지정학원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6월 모의고사에 응시한 수험생은 54만183명이고 오는 11월에 실시될 2020학년도 수능시험과 시험의 성격, 문항 수 등은 동일하다. 2019.6.4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를 치르는 학생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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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잖아요."

최근 동료 교사와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대학 입시, 나아가 우리 교육에 관한 한 기대와 희망을 접은 지 이미 오래라는 이들이 정말 많다. 한 동료 교사는 우리나라에선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가져와도 악용하는 이들이 들끓고 끝내 취지가 훼손되어 흐지부지되고 만다며, '구관이 명관'이라는 이야기가 되레 설득력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해석했다.

당장 학종에 맞춰 설계한 수업 방식을 재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들린다. 사실 학종의 도입은 수능 일변도 입시 준비에서 벗어나 일선 교사들에게 수업을 비롯한 학교 교육은 반드시 달라져야 한다는 당위를 각인시켜 주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교사들이 학종을 그저 대학 입시 전형의 하나로만 평가하지 않은 이유다.

명문대 진학 실적을 따지는 오랜 관행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해도, 교사들 스스로 자신의 수업 방식을 고민하고 자발적으로 연수에 참여하며 변화를 모색해왔다. 이른바 '거꾸로 수업'과 '배움의 공동체', '프로젝트 수업' 등 다양한 수업 방식을 체득해 교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수업이라기보다 차라리 아이들과 교감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학종의 확산이 그러한 노력에 천군만마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학교에서 그러한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울 성싶다. 여전히 아이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수업을 설계하고 시도하는 교사가 있다면, 당장 학부모들로부터 따가운 질책을 감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과목에서는 수업 교재가 기존의 교과서와 활동지 대신 기출문제집으로 바뀌었다.

정시의 확대와 비교과 영역의 대폭 축소 방침은 사실상 수업을 문제풀이 방식으로 하라는 권고와 다름없다. 정시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는데, 어떤 교사가 한가하게 모둠을 꾸려 프로젝트 과제를 함께 수행하라고 독려할 수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수능 점수를 단기간에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기출문제를 반복, 또 반복해서 푸는 것이다.

한 동료 교사는 정시 확대로의 퇴행을 두고 교육부가 '우리 사회에선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규정했다. 일례로, 학교생활기록부에 봉사 활동 시간과 내용을 기재하도록 한 건,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에 참여시키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봉사 활동 실적이 '부모 찬스'로 왜곡되니 다시 없애자는 식이니, 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다.

어디 봉사 활동뿐일까. 자율 동아리 활동이 아이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운다고 반색하더니, 이제 와선 '불공정의 온상'이라며 손가락질받는 처지가 됐다. 학창 시절부터 책 읽기를 생활화하겠다며 도입한 독서 활동 역시 외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이유로 이내 사라질 운명이다. 거칠게 말해서, 이는 봉사 활동도, 동아리 활동도, 독서조차도 아이 스스로 했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 놓고선 교육부는 교사에 대한 관리, 감독을 내실화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허위 기재나 기재 금지 사항을 위반했을 때는 엄중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생활기록부 비위 행위 신고 센터도 운영하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지능형 검증 솔루션 시스템 적용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학부모는 학교를 불신하고, 대학은 학생을 의심하고, 교육부는 교사를 감시하는 삭막한 세상이 된 것이다.

끝으로,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하나만 덧붙인다. 이미 공표한 대로 더 이상 연기하지 않고 2022학년도 일반고에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계획이라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다. 밑도 끝도 없는 정시와 학종 사이의 논쟁은 그만두고, 고교학점제의 안착을 위한 교육과정의 정비와 교사의 역량 강화, 교육 시설의 확충 등에 '올인'해야 한다. 그런데 고교학점제의 운명은 다음 정권에 내맡겨져 있다는 생각은 과연 나만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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