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1월 27일 서른다섯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이 강원도 인제에 있는 부평초등학교에 들어섰다. 초등학교에 꼬마평화도서관이 들어서기는 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덕수초등학교에 이어 두 번째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부평초등학교 온배움터 어귀 화장실 길목에 들어선 꼬마평화도서관
▲ 부평초등학교 꼬마평화도서관 강원도 인제에 있는 부평초등학교 온배움터 어귀 화장실 길목에 들어선 꼬마평화도서관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부평초등학교 꼬마평화도서관은 학교 건물 1층 온배움터 들어서는 어귀, 화장실 가는 길목에 문을 열었다. 화장실에 가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이 학교에 다니는 이라면 누구라도 평화에 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온배움터는 온 누리나 온 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삶을 오롯이 배우는 터라는 말로 장애가 있거나 배우는 것이 더딘 아이를 두루 아울러 서로 토닥이며 살아갈 힘을 기르도록 하는 곳이다.

이곳 수업을 맡아 하는 특수교사 조승연 선생은 학습 진도와 관계없이 아이들이 서로 벽 없이 어울리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하다가 책이 서른 권 남짓한 평화 책을 십시일반 모아 꼬마평화도서관 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했다고 했다.

"학습을 잘 따라가는 아이와 더딘 아이들이 어울려 학교생활을 하고 나아가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이 제 화두였어요. 그러다가 꼬마평화도서관을 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우리는 모두 남다르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저마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 뒤섞여 일주일에 한 권씩 그림책을 비롯한 평화 책을 소리 내어 읽어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깨동무하며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왼쪽 두 번째 명패를 전달하는 평화도서관 할아버지 늘보 변택주 가운데 빨간 옷을 입은 평화지킴이 은성이 맨 오른쪽 특수교사 이자 꼬마평화도서관장 조승연 선생님
▲ 꼬마평화도서관 명패 전달식 왼쪽 두 번째 명패를 전달하는 평화도서관 할아버지 늘보 변택주 가운데 빨간 옷을 입은 평화지킴이 은성이 맨 오른쪽 특수교사 이자 꼬마평화도서관장 조승연 선생님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꼬마평화도서관이 문 연다는 소식을 벽에 붙였을 뿐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에게 따로 오라고 알리지 않았다. 그랬어도 십여 명이 넘는 3, 4학년 아이들이 잔치에 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걸음으로 왔다니 아이들 얼굴이 다시 보인다. 하나하나 해말갛다. 누가 뭐래도 저대로 오롯하니 평화로운 아이들. 문을 열기도 전에 서로 보고 싶은 책을 빌려 가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개관 잔치를 뒤로 잠깐 미루고 책부터 고르도록 했다.
  
[육식의 종말]을 빌리겠다고 적바림하는 민준이
▲ 책을 빌리는 책을 적는 아이들 [육식의 종말]을 빌리겠다고 적바림하는 민준이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문을 여는 잔치 마당 짧은 인사말을 하라고 해서 꼬마평화도서관을 나라 곳곳에 열러 다니는 도서관 할아버지라면서 꾸뻑 인사를 했다. 아이 하나가 손을 들더니 연예인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기에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러면 기자는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 되돌아온다.

나는 평화도서관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듣기 좋아하지만, 기자는 꽤 여러 사람 알고 나도 기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꼬마평화도서관 소식도 어디에 실리느냐고 물으면서 그렇다면 제 이름도 나오게 해달라고 한다. 3학년 시윤이가 그 아이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개관식을 마치고 조승연 선생이 맡아 살림하는 온배움터에 들어가 떡을 먹으며 그림책 두 권을 소리 내어 읽었다.
  
조승연 선생이 아이들에게 그림책 [섬]을 읽어주고 있다.
▲ 평화책을 읽어주는 선생님 조승연 선생이 아이들에게 그림책 [섬]을 읽어주고 있다.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먼저 조승연 선생이 골라 읽은 책은 피터 레이놀즈가 지은 그림책 <점>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싫어해서 미술 시간을 곤혹스러워하는 베티.

다른 아이들이 바깥 풍경을 그리러 모두 나가고 난 텅 빈 교실에 아무것도 드리지 않은 하얀 도화지를 앞에 놓고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다. 선생님이 "와!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 하고 웃으면서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씀한다. 선생님이 저를 놀린다고 여겨 심통이 난 베티는 쥐고 있는 연필을 그대로 도화지에 내리꽂는다. 하얀 도화지 위에 찍힌 작은 점 하나.

다음 미술 시간이 오고 미술 교실에 들어선 베티는 깜짝 놀란다. 금테 두른 액자에 걸린 그림은 다름 아닌 제가 찍은 점 하나. 그렇게 두려움에서 벗어난 베티는 마음 놓고 제 그림 세계를 펼쳐나간다는 얘기다.
 
오른쪽에 보라빛깔 옷을 입은 유희가 책을 잡아주고 왼쪽에 분홍빛깔 옷을 입은 수빈이가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 서로 도우며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 오른쪽에 보라빛깔 옷을 입은 유희가 책을 잡아주고 왼쪽에 분홍빛깔 옷을 입은 수빈이가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이어 읽은 그림책은 내가 가지고 간 그림책으로 마키타 신지가 글을 쓰고 하세가와 토모코가 그림을 그린 <틀려도 괜찮아> 이다. 이 책은 <내 말 사용 설명서>를 빌려 간 4학년 유희가 책을 잡아주고 <똥! 똥! 똥!>을 빌려 간 수빈이가 읽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누구라도 집에서는 이야기도 잘 하고, 유치원에서 발표도 곧잘 했던 아이다. 그러나 학교에 가서 새로이 만나는 낯선 동무들과 낯선 선생님 앞에서는 쑥스러워 몸을 자꾸 뒤로만 뺄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를 나오고 나서 쉰 해가 넘긴 지 오래인데 "아는 사람 손 들어봐", "할 수 있는 사람 나와 봐" 하는 얘기에 가슴이 오그라들던 기억이 생생하다.

멋지게 대답하고 싶지만 틀릴까 봐, 답이 틀렸다고 동무들이 웃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매어 손들기를 망설이는 아이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교실은 틀려도 괜찮은 곳, 틀리면서 답을 찾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어 가벼운 마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다독인다.

잘해야 하겠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떨거나 틀릴까 봐 떠는 것은 초등학생만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다. 누구라도 틀릴 수 있으며 틀리면서 배우는 것이니 틀리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는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어버이 처지가 되면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요즘 티비 광고에도 나오는 날개 없는 선풍기를 발명한 다이슨은 종이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할 때 1,526번 실패하고 1,527번 만에 성공했다고 한다. 틀리는 것을 받아들이고 흔들흔들 틀리기도 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학교와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평화로 가는 길이지 않을까.
 
평화살림꾼을 도와 평화지킴이를 하겠다고 스스로 손든 아이들
▲ 평화지킴이 하겠다고 손을 든 아이들 평화살림꾼을 도와 평화지킴이를 하겠다고 스스로 손든 아이들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부평초등학교 온배움터와 화장실 갈림길을 지키는 꼬마평화도서관 살림을 맡아 하겠다고 스스로 나선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명패를 받아들고 꼬마평화도서관 명패를 여기에 달아야 한다고 짚어준 은성이이고, 다른 아이는 민서다.

이 아이들은 빌려 간 책이 제때 돌아오는지 살피고, 책이 제자리에 꽂혀 있도록 하며 여러 사람이 꼬마평화도서관에 와서 평화 책을 읽도록 하는 전도사이다. 살림꾼이 아니더라도 서로서로 지켜주고 꼬마평화도서관을 널리 알리는데 마음을 나눠 주겠느냐는 조승연 선생 물음에 문 여는 잔치에 온 아이들이 모두 손을 번쩍 든다.

개관식에서 아무도 빼지 않고 도서관 일에 함께하겠다고 나서기는 꼬마평화도서관이 열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질세라 앞다퉈 책을 빌려가겠단다.
▲ 책 빌려가요 질세라 앞다퉈 책을 빌려가겠단다.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도서관 문 여는 자리에서 책을 빌려 간 아이는 여섯이다. 아니다. 책 보기 바빠 미처 적지 않고 가져간 아이까지 하면 일곱 사람이니 서른세 번째 연 마을찻집 고운 울림보다 두 사람이 적다. 그러나 그곳 잔칫날 온 사람이 쉰이나 되는 데 이곳에 온 아이는 10명 남짓하니 견줄 수 없는 대여율이다.

꼬마평화도서관을 열 때 의무사항이 단 하나인데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책을 둘러앉아 읽는 모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도서관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평화 책을 읽겠다고 하니 무척 설렌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하다. 내가 기자이니 기사를 써서 올리겠다고 아이들한테 얘기했는데 채택이 되지 않아 빈말이 되고 말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온배움터에서는 싫증 날 때까지 놀 수도 있다. 엎드려 노는 아이는 꼬마평화도서관 살림꾼 은성이다.
▲ 온배움터는 배움터이자 놀이터 온배움터에서는 싫증 날 때까지 놀 수도 있다. 엎드려 노는 아이는 꼬마평화도서관 살림꾼 은성이다.
ⓒ 변택주

관련사진보기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부평초등학교에 들어선 이 평화도서관이 강원도에는 처음 들어서는 꼬마평화도서관이다. 그래서 이 꼬마평화도서관이 더욱 뜻깊고 문을 열겠다고 마음을 낸 조승연 선생이 무척 고맙다.   

태그:#꼬마평화도서관, #부평초등학교, #온배움터, #강원도 , #소리 내어 책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