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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책읽기가 산소통이 된다. 지금은 내 삶과 딴판인 이르사 데일리워드의 <뼈>가 그렇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작가는 인스타그램 스타 시인이고, 영국 사는 젊은 흑인 여성이다. 게다가 퀴어여서 '흑인・여성・퀴어'의 다중 소수자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성적 본성인 페르소나가 되어 시에서 자기를 까발린다. 그 당당한 풀어헤침에 절로 내 숨이 트인다.
 
 이르사 데일리워드 시집 '뼈'
 이르사 데일리워드 시집 "뼈"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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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뼈(대)는 태생적 조건이다. 그녀의 뼈는 어린 그녀를 구렁텅이로 내몬다. 근친상간이나 성폭행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엄마조차 딸의 손을 잡지 않는다. 뼛속 아픔이 강해진다. 더군다나 그녀는 "그 더럽게 뒈지게 매혹적인 일들을"('좋아하기' 중에서) 내면화해 자발적으로 아픔을 덧들이는 지경이다.

"우리는 차에 타고 있었다./나는 엄마에게 악을 쓰고 있었다/엄마의 끔찍한 남자 취향에/절망해 울면서, 왜 항상 잠옷 아래/내 가슴을 쳐다보거나/엄마 돈을 훔치거나/바람을 피우거나 종적을 감추는 남자만/골라오는 거냐고 따졌고/이번에 엄마는 내 따귀를 철썩/갈기지 않았다./엄마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앞만 바라보았다. 내게/자기 엄마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었다,/반짝이는 눈빛과 둥근 얼굴에/잘생긴 외모의 그 남자가/엄마가 열한 살 때 방으로/따라 들어와 강제로 엎드리게/했다고."('또 다른 사건' 중에서)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너는/끝없이 리셋하고/세팅하고/리셋한다."('뼈' 중에서) 그러면서 그녀는 배우와 모델이 되고, 뼛속 깊이 박힌 아픔들을 끄집어내어 인스타라는 이미지 광장에 널어놓는다. 그러다 시집 <뼈>로 세상이 알아주는 시인이 된다. 나는 <뼈>에서 시의 완성도를 굳이 따지지 않는다. 음지의 기억을 양지로 불러내는 행위 자체가 시의 본령이니까.

특히 몸의 기억이나 버릇을 풀어내는 몸말은, 몸의 의미를 탐문하는 몸철학이기도 하다. <뼈>의 페르소나들은 성애적이고 육감적인 몸철학을 선보인다. 거기서 드러나는 관계가 시한부인 게 안타깝다. '딱히 사랑은 아닌 사랑'이 대세여서다. 언제든 흩어질 수 있는 자유연애에서 쫄깃한 두려움과 포기는 일상이다. 속은 불안으로 썩어가도 내색하지 않은 채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둔다.

"하지만 바바, 너는 공포이자/찬란한 광휘야/그래서/나는 이미 내 몸에게/네 몸을/갈망하지 않고/그리워하는 법을 가르치는 그런 유의 여자야./나는 이미 내 심장에게 멎지 않고/네 심장을/그리워하는 법을 가르치는 그런 유의 여자야.// (...) //네가 방을 나설 때마다 나는/걱정해/그리고 어쩌면 너는/내 머릿속의 상상이 아닐까/어쩌면 내가 네 머릿속의 상상이 아닐까 생각해." ('싼드와 사미' 중에서)

문제는 그게 대물림한 세태라는 데 있다. "우리 아버지 또한/길고 어두운 동화였어./지금도/앞으로도 그런 식이겠지."('유산' 중에서). 그 콩가루 가족사가 아버지 장례식을 배경으로 한 시 '사실은 이렇다'에서 읽혀진다. 급기야 삼촌 집에서 자란 남동생 레비는 아버지 관에 침을 뱉고 돌아서고, 그녀는 부리나케 북부로 향하는 동생차에 오른다. 그러나 레비의 먹먹함과 남부를 향하는 그녀 마음은 애도가 분명하다.

"레비는 갓길에 차를 세우려/한다. 나는 불안하다. 다시 남부로/돌아가고 싶다. 북부는/심란하다. 귀청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침묵과/스트레스 가득한 권태./심심풀이로 할 일도 없고/사위가 뒈지게 조용해지면 위험한 짓을/할 여유가 생긴다. 이를테면/생각이라든지."// (...) 맙소사, 우리 정말로 출발해야 한다. 우리 둘 다/바쁜 사람들인데, 여기 이러고, 아직도/갓길에 세워둔 차 안에 앉아 있다니./전면 차창 밖을 빤히 바라보며, 눈알이 빠져라 울지도 않으면서."

그녀의 진솔함에 좋아요를 누르는 구독자가 많다는 건, 누구든 외진 삶에 노출되어 있다는 거다. 제가끔 뼛속에 아픔을, 즉 시를 잉태하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누구나 이르사 데일리워드처럼 시를 분만하는 건 아니다. 나는 자신 없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newcritic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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