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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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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홍콩이공대학교에서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상태로 교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교정에는 시위 흔적들이 가득하고 안전모와 옷 등으로 만든 구조신호 'SOS' 주변으로 시위대의 요구사항이 적혀있다. ⓒ 이희훈
 
"홍콩이공대학교(홍콩폴리테크닉대학교, 이하 홍콩이공대) 집회 학생이자, 17일 경찰의 진압 작전 당시 학교에 남아 저항한 사람 중 하나다. 경찰은 17일부터 수천 발의 최루탄과 다른 종류의 총알을 사용하며 학교를 공격했다. 뒤이어 우리들을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학교를 전방위로 포위했다."

헨리(익명)는 17일 홍콩 경찰의 '홍콩이공대 진압 작전' 때 탈출에 성공한 학생 중 한 명이다. 홍콩 시위대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홍콩이공대는 경찰의 진압 작전에 의해 무너졌다. 이때 경찰은 수많은 최루탄과 무차별적인 폭력을 자행했다. 당시 약 900명가량의 시위대가 탈출을 시도했지만 대다수가 학교를 포위한 경찰에 체포당했다.

"일부 시위대는 '투항할 경우 자유롭게 풀어주겠다'는 말을 믿고 학교를 나섰다가 모두 구속됐다. 일부 시위자들은 해외로 나가려다 공항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앞서 신변상의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던 헨리는 지난 25일 돌연 인터뷰를 자청했다. 그는 "많은 시민들이 이공대에 갇힌 시위대를 지지하고 있다,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인터뷰 의사를 밝혔다. 

<오마이뉴스>는 25~26일 헨리와 서면 인터뷰를 주고받았다. 경찰의 홍콩이공대 진압 당시 상황을 물었고, 헨리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은 안전상의 이유로 모두 배제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분노와 공포가 교차한 이틀
 
26일 오후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홍콩이공대학교. 현재 30명가량으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경찰의 포위로 학교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9일째 발이 묶여 있다. ⓒ 이희훈
 
- 지난 17일 경찰이 홍콩이공대를 무차별 진압했다. 경찰이 학교를 포위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심경이 어땠나.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나를 비롯해 학교를 지키기 위해 남아있던 사람들 모두 일순간 패닉 상태가 됐다. 절망감도 들었다. 체포되거나 다치지 않고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분노도 치밀었다. 어떻게 경찰이 대학교에서 총기를 휘두를 수 있으며, 내 학교에서 왜 학생인 내가 도망쳐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18일 탈출에 성공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준다면?
"먼저 17일의 일이다. 경찰이 끊임없이 시위대를 공격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학교 내부도 상당수 망가졌으며 시위대가 보유한 자원들(무기, 식료품)도 빠른 속도로 고갈됐다. 

초반에는 홍콩이공대에 있던 시위대 다수가 상당히 흥분해있었다. 시위대가 경찰의 무기 차량을 불태운 동시에 경찰의 공격을 단기간에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일순간의 일이었다. 17일 저녁, 홍콩이공대가 경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됐다는 것을 깨닫자 시위대의 사기는 급속도로 저하됐다. 모든 것이 시위대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급변했다.

그리고 18일, 시위대는 오전 7시부터 총 네 차례 탈출을 시도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은 성공했지만, 많은 사람이 경찰에 붙잡혔다. 다친 사람들은 탈출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18살 아래의 사람들은 우울함과 무기력함 때문에 더 힘들어했다."

- 당시 경찰의 진압은 어떻게 이뤄졌나.
"진압 초기, 경찰은 대학에 최루탄을 수차례 발사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학교에 진입을 시도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이후 홍콩이공대 인근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자, 진압 경찰들은 시위대 양쪽에서 물대포를 쏘고 고무탄을 발사했다. 뒤이어 '랩터(홍콩 경찰 내 특수전술반을 비하해 부르는 말)' 일행이 뒤에서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고 시위대 상당수는 체포돼 구타당했다.

당시 경찰은 이미 진압된 사람들을 계속 때렸고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사용했다. 경찰은 폭력을 멈출 의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이때 자행된 경찰의 폭력은 분명 불필요했다."

- 당시 학교 안에 있던 시위대는 어떻게 경찰에 맞섰나.
"시위대는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 나름의 방법으로 저항하려 했다. 경찰 진입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기도 했다. 초반까지 학생들과 시위대의 사기는 분명 좋았다. 왜냐하면 학교 인근 거리에서도 함께 경찰에 맞서고 있는 홍콩 시민들의 행동이 우리에게 크나큰 지지가 됐기 때문이다. 홍콩 시민들과 함께한다는 연대가 우리를 계속 맞서게 만들었다."

- 이 기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단결한 것을 본 적이 몇 안 된다. 당시 시위대는 우리 홍콩이공대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경찰에 맞섰다. 그런데 시위대 대다수는 홍콩이공대 학생도 아니었다. 이게 정말 대단한 일이다. 사실, 시위대 가운데 1/3 정도만 홍콩이공대 학생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중학생이거나 다른 대학 학생, 혹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이들을 홍콩이공대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우리 땅(학교)을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뿐이었다."

"경찰의 횡포와 정부의 불통"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범야권의 압승 결과가 나온 25일 오후 홍콩이공대학교 앞에서 경찰의 봉쇄로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의 구조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 아직 학교 내부에 30여 명의 시위대가 있다고 전해진다. 그들의 상태는 어떤가.
"열악하다. 식량도 부족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심하다고 한다. 학생 중 일부는 며칠 전 대학에 잠입한 경찰들에게 체포되거나 혹은 어떻게든 납치될까 봐 극도의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 대학의 위생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대학에서 페스트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 탈출을 시도했던 시위대 대다수가 체포됐다고.
"경찰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신뢰도 갖지 않는다. 일부 시위대는 '투항할 경우 자유롭게 풀어주겠다'는 말을 믿고 학교를 나섰다가 모두 구속됐다. 일부 시위자들은 해외로 나가려다 공항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경찰이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은 대학 내 학생들의 모든 신분증을 얻는 것이다. 경찰은 학생들이 시위에 직접 관여를 했든 안 했든, 관련자 모두를 체포해 고소하려 하고 있다."

- 신변 노출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듯하다.
"나뿐만 아니라 홍콩 사람들 대다수는 우리 신원이 정부에 의해 쉽게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정부가 시위 관련자들을 추적하고 감시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극도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체포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거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 '자유로운' 도시에서는 정부에 반대되는 내용을 발설했다가 경찰에 잡혀간 사례도 있었다."

-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홍콩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경찰의 횡포와 정부의 불통이다. 경찰의 잔혹성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또, 정부는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요구하고 있는 5가지 사항들에 대해 반응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5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대답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홍콩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 홍콩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침묵한 다수'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 '외치는 다수'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정부.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다."
태그:#홍콩, #홍콩시위, #이공대, #시위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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