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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당시 정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폭도'로 매도했다. 신군부의 삼엄한 검열 하에 어느 언론에서도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5.18 당시 정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폭도"로 매도했다. 신군부의 삼엄한 검열 하에 어느 언론에서도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 5.18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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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사태 초기에 6명의 기자가 광주보도와 관련하여 용공혐의로 구속되는 등의 시련을 겪었다. 이 신문은 광주항쟁이 발생하자 초기에는 가장 용기있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2일자 1면에 「광주일원 심각사태」란 보도를 통해 여타 신문과의 차별성을 분명히 했고, 23일과 24일에는 계속 관련기사를 삭제당해 급조된 광고로 대체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설과 논평을 쓴 간부 언론인들은 어느 신문에 못지않게 곡필을 일삼았고 현지 취재기자들도 왜곡에 열을 올렸다.

『경향신문』은 5월 29일자 「최 대통령의 성명과 비상사태 전국 확대를 보고」란 사설에서 광주문제를 일체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물론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단안'이라고 받아들인다.

이 사설은 "최 대통령이 우려한 대로 소요는 '과열ㆍ폭력화되어감으로써 극심한 사회혼란을 야기하고 치안력의 투입을 강요하는 사태로 발전되어' 정부는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생존을 수호하며 안정 속에 성장과 발전을 바라는 다수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여' 단안을 내리게 된 것이다"라고 정부측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5월 29일자 한 면에 「취재기자들의 방담으로 엮어 본 사태현장」을 특집으로 꾸몄다. '시위 도중 총기사용 분위기 악화' '대부분의 관공서, 방송국, 목재소, 철근상회도 큰 피해' 등 제목을 붙인 이 방담 기사는 특히 다음의 내용 등이 눈에 띈다.

"눈만 빠끔하게 나오게 하는 복면, 수건으로 입을 가린 사람 등등 정말 여러 모습이더군. 왜 그런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량배로 보이기도 했지."

"특히 은행, 농협, 귀금속상 등이 가장 불안 속에 있었는데 다행히 사고는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

"이날 아침 전남대병원에 들어온 시체 2구를 검안한 의사가 총기오발 사고로 숨진 것 같다고 하더군."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광주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광주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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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때 은행이나 귀금속상이 털린 곳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는 발언이나 '상당수가 불량배' 운운은 그 의도성이 뻔한 왜곡이라 하겠다.

『중앙일보』의 논평 태도 역시 여타 신문과 다르지 않았다.

5월 19일자 「자제와 화합으로 국가적 시련 극복하자」는 사설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계엄령의 확대 시행은 그 목적이 사회질서ㆍ사회활동의 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일 수밖에 없다"고 5ㆍ17조치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또 5월 26일 「거듭 국민적 화합을 호소한다」, 27일 「마음의 상처를 씻어주자」는 연속적인 사설을 통해 신군부의 잔혹한 살상문제 등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이 추상적인 화합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신문의 사설 「거듭……」에서는 특히 "우리는 다시 한 번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면서 지금은 뭣보다도 더 이상의 유혈참극을 막기 위한 과감한 조치가 취해지기를 두손 모아 기구할 따름이다"라고 하여 '과감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당시 희생된 시민들. 1980.5.25
 5.18민주화운동당시 희생된 시민들. 1980.5.2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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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새벽 계엄군은 무력으로 전남도청 등을 공격 '과감한 조치'를 취하면서 숱한 인명을 살상했음은 다 아는 바와 같다.

『한국일보』는 5월 18일 「시국수습 단안의 방향」이란 사설에서 시국수습에 관해 "정부와 정치인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는 하나마나한 일반론을 전개하고, 20일자 「위기 속의 생존권 수호」에서는 "5ㆍ17 조처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최 대통령의 특별성명에 접하고 우리 겨레의 슬기, 즉 이지(理智)의 힘을 일깨울 때라고 믿는다"고 완곡한 표현으로 이 조처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온갖 둔사로써 광주항쟁을 호도한 것은 23일자 「광주일원의 비극적 사태」란 사설이다. 사설은 서두에서 "18일 이후 광주 일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비극적 사태는 이미 진행된 것만으로도 국사상 두고두고 기록될 사건임에 틀림이 없겠다.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고 또 어떤 것이냐에 관해서는 누구도 예측 못하거나 혹은 말할 바 못된다. 우리 모두는 방금 이 순간에 국운의 백척간두와 국민의 사생안위에 가름에 서서 후세의 역사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처절한 살욕극을 지켜보면서 '국사상 두고두고 기록될 사건'이라는 표현이나, '후세의 역사 앞에 경건한' 따위의 어휘는 언어의 유희, 용기없는 언론의 둔사일수밖에 없다. 이 사설은 이어 엉뚱한 방향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적 심성에 깃들인 '한'이라는 누적된 역사적 불행에 연유한 것으로 심적인 공감대를 가르킨 말이다"

"양반층의 '청한문학', 근대화 선각자들의 '계몽문학', 현실도피형의 일부 소외권 지식인에 의한 '멋의 문학'을 제외하고는 대중적 기반을 가진 온갖 문학예술이 한에 젖어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미학 범주로서의 '멋'이란 도피 형식의 비사회적 반응임에 그쳤다. 그것은 한의 일시적 발산형태이지 해결의 출로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누가 겨레의 한을 풀 수 있을까. 우리 자신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할까. 우리 모두의 슬기와 날램을 한데 모아 진정한 화합을 지향해야 한다."

'광주일원의 비극적 사태'라는 초미의 현안을 다루는 7~8매짜리 사설에서 문화사나 문학사상에서나 다룰 만한 '한'과 '멋'에 관해 장황히 설명하면서 정작 언급해야 할 대목에서는 꼬리를 감추고 있다.

이 신문은 「광주사태 속의 북괴동향」(5.24), 「광주사태의 평화적 수습책 - 대화로 해결하려면 무기반환해야」(5.27), 「광주사태의 수습단계」(5.28) 등 사설을 잇따라 게재한다.

특히 「광주사태 속의……」사설에서는 "필시 서울의 학생데모와 광주사태를 바라보면서 김일성은 지금 대남정세 상황판 앞에 쭈그리고 앉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그 무슨 결정적인 시기와 여건이 닥쳐왔다고 보면 불장난을 좀 하려들지 모른다"라고, 예의 안보논리를 적용하여 광주항쟁을 '주눅' 들이고자 했다.

사태 초기 5일간 무사설로 결기를 보였던 『동아일보』는 「북한은 오판말라」(5.26)는 사설을 실어 언론의 '북한 신드롬'을 내보였다. 이 사설은 "김일성은 행여 어떤 희망을 걸고 대남적화 책동에 열을 더 내는 일은 즉각 중단하고 평화통일의 기본조건인 남북대화에 성심으로 임해 줄 것을 촉구하며 한국의 반공태세를 오판하지 말도록 거듭 경고하는 바이다"라고 썼다.

한국의 신문들이 하나같이 북한문제를 들고나선 것은 혼란기에 발생할지 모르는 북한의 책동을 경계하자는 경고의 의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는 제도언론들의 통속성이 작용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5월 28일 「계엄군투입 이후의 과제」에서 사태의 본질이나 책임규명보다 '민심수습'이란 추상어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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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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