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배달래 작가의 퍼포먼스
 배달래 작가의 퍼포먼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올해는 국내외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던 삼일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일제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불꽃처럼 일어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애국지사들 정신과 그들 모습을 붓으로 표현한 순국선열 인화전(人畵展) <그리고, 100>이 열리고 있어 주목 받는다. 장소는 전북 군산시 번영로 2(팔마광장)에 자리한 예깊미술관(옛 팔마농협). 주제는 참여 작가들 정신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리고, 100>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100>은 지난 8월 서울 마포문화재단을 시작으로 경남 MBC 아트홀, 충북시문화회관에 이어 11월 1일부터 군산 예깊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전시 기간: 11월 1일~12월 15일까지) 군산 개막식 날 화가이자 공연예술가로 활동 중인 배달래(Dallae Bae) 작가의 퍼포먼스 공연도 함께 해서 의미를 더했다.  

"만세운동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인화전 <그리고, 100>을 기획, 추진한 탁노 작가
 인화전 <그리고, 100>을 기획, 추진한 탁노 작가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저희는 그 시절 살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를 구하는 운동(독립운동, 삼일만세운동)에 참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으로나마 애국지사들의 얼과 정신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되어 독립운동하는 마음으로, 만세운동 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100> 추진위원회 대표 탁노 작가의 기획 취지다. 탁 작가는 "우리는 이번 작업에 큰 의미 부여나 미화시키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어려운 시기에 불꽃같이 일어나 일심을 보였던 선열들을 기리고 싶은 것뿐이다. 미약하나마 후손들에게 자긍심이 되고, 작은 움직임이 모여 아름다운 문화를 만드는 비전의 영감이 되면 좋겠다."라고 부연한다.  

독립운동가 얼굴을 화폭에 담아보기는 처음이라는 탁노 작가. 그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1년 전부터 준비해왔다. 혼자 하려니까 대작도 그려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작업도 힘들고 벅차지만 혼자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 뜻과 마음을 함께 하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게 훨씬 더 모양이 좋고, 의미도 있겠다 싶어 섭외에 들어갔다. 너무 사실적이고 기록화적인 작가는 섭외 대상에서 빼고 개성 있는 작가를 만났는데 거절하는 작가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개성 강한 독립 영웅들, 감각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받아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한 선열들의 피와 희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유산이다. 이름 없는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민족지도자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영혼을 불살랐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들의 눈빛과 외침은 가슴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화가로서 이 숭고한 희생을 붓과 색으로 표현하고자 함이다. - 전시회 팸플릿"
 
 
 탁노 작가 작품(왼쪽부터 만해 한용운,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탁노 작가 작품(왼쪽부터 만해 한용운,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김구, 김원봉, 김상옥, 남자현, 박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안경신, 윤동주, 한용운, 함석헌, 홍범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독립운동가와 애국지사들이다. 추상과 구상의 적절한 배합으로 탄생한 작품들. 스케일이 큰 대작도 곳곳에 보인다. 참여 작가는 탁노, 구광모, 노재순, 박승원, 아작, 오형숙, 유진숙, 이익태, 정의철, 최우, 신상철 등 현대미술 작가 11명. 이들 작품은 관람객들로부터 각자 개성이 강한 독립 영웅들 표정을 감각적으로 화폭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자, 호랑이, 말, 독수리, 늑대 등 주로 야생동물을 그린다는 탁노 작가. 그는 이번에는 만해 한용운, 백범 김구, 도산 안창호 등을 화폭에 담았다. 작업은 야생동물을 그릴 때처럼 인물도 야생적으로 표현했단다. 탁 작가는 "어느 특정 인물을 부각시켜 드러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작품 세계의 연장선에서 자유롭게 작업했으니 하나의 작품으로 봐주시면 고맙겠다"라고 말한다. 작가들이 각자 개성을 살려 작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것.

아래는 참여 작가들(오형숙, 윤진숙, 이익태)의 작품 설명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윤동주 시인과 함석헌 선생 그린 오형숙 작가
 
  오형숙 작가 작품(윤동주 시인과 함석헌 선생)
  오형숙 작가 작품(윤동주 시인과 함석헌 선생)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일제강점기 피해 청구권 소송으로 촉발된 갈등이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라는 강력한 경제 제재로까지 이어진 요즘, 일제 침략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통탄하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윤동주 시인과 독재 권력에 맞서 싸웠던 씨알 함석헌 선생 정신을 캔버스에 담아 봤다.

씨알 함석헌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도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폭력에 거부하고, 권위에 저항하였다. 선생은 일생을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 반독재에 앞장섰던 분이다. 굉장히 훌륭하고 멋진 분이어서 학교 다닐 때부터 존경하였다. 학교 다닐 때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평전을 구입해 보는 등 깊이 알게 됐다

윤동주 시인은 회화로 잡아내기 정말 힘들었다. 얼굴이 밋밋하게 나온 흑백사진만 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소 작업을 거칠게 하는데, 윤동주 시인의 섬세한 이미지와 약하면서도 강한 그의 감성, 그리고 시어(詩語)들, 이렇게 정신세계가 상충하는 부분을 조화롭게 표현해내는 게 관건이었다. 결국 윤동주 시인의 시어들을 화폭에 날아다니는 물방울로 표현하였다. 제목도 그의 시집에서 골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정했다."


남자현 선생 화폭에 담은 유진숙 작가
 
 유진숙 작가 작품(남자현 선생)
 유진숙 작가 작품(남자현 선생)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남자현(南慈賢:1872~1933) 선생은 여성 독립운동가다. 그림에서는 남자현 선생만 이야기하려 한 게 아니다. 선생 주변 군중은 함께 독립운동하는 동료들을 표현한 거다. 그 당시 독립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엄청나게 싸우고 분열했다. 알력싸움도 잦았고, 배신도 하고, 밀정도 있었고... 그때 분위기가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어 다양한 표정을 통해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봤다.

남자현 선생이 단결을 호소해도 다시 또 싸우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한번은 남자현 선생이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서 국제연맹 조사단으로 보내 우리나라 사정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동료의 배신으로 분실됐다고 한다. 기록에 보면 밀정들의 감시와 공작은 끊이지 않았고, 그래서 독립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던 분들은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씩 겪었다고 한다.

남자현 선생이 손가락을 자르기 전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전해진다. <조선독립원>이라고 1932년 9월 17일에 쓴 편지다. 편지에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써서 손가락이랑 함께 전했는데 그것도 밀정이 중간에서 가로챘다고 한다. 그때 그 편지를 그대로 옮겨 적은 거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감동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몇 차례 울기도 했다."


약산 김원봉, 다양하게 표현한 이익태 작가
 
 이익태 작가 작품1(상복 차림의 약산 김원봉)
 이익태 작가 작품1(상복 차림의 약산 김원봉)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이익태 작가 작품2(국회로 향해 걸어가는 김원봉)
 이익태 작가 작품2(국회로 향해 걸어가는 김원봉)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인물 사진은 김원봉(金元鳳):1898~1958)이 장례식장에 가는 모습이다. 팔에 완장을 두르고 망건을 썼잖은가. 빨강, 파랑은 좌와 우를 뜻한다. 누구 장례식에 갔느냐 하면 김원봉 자신(이데올로기)의 장례식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완장을 두 개 두른 거다. 김원봉이 자기 장례식장에 가는 모습은 곧 이데올로기의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이데올로기가 사라져야 지상에 평화가 온다. 그러한 마음을 김원봉의 장례식으로 표현해봤다.

김원봉이 국회를 향해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그림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멀기 때문에 제목을 <김원봉의 머나먼 길>이라고 했다. 김원봉은 아나키스트고 민족주의자인데 남쪽과 북쪽 양쪽에서 배척당했다. 결과적으로 이념(이데올로기)의 죽음은 내가 원하는 바고, 아마 국민이 원하는 바이고, 김원봉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어느 유력한 정당의 정치인은 김원봉에 대해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는 식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김원봉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출발해 민족 좌파 노선을 견지했지만,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주변에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많았고, 그는 이들과 여러 일을 같이했다. 하지만 김원봉이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사회주의적 평등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정치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거리가 있었고, 프롤레타리아독재와 같은 공산당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원봉 관련 그림은 이데올로기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작가의 심정이 반영된 작품으로 보인다. 이익태 작가는 "이데올로기 갈등이 사라져야 평화가 오는데 인간의 마인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늘 편을 갈라야 하고, 어떻게 보면 인간의 숙명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아무튼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

덧붙임: 이 기사는 군산 예깊미술관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에잇> 11월호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군산 예깊미술관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에잇> 11월호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