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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를 폭력 시위를 규정하면서 "폭력시위를 반대한다!"라고 되어있다.
▲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대자보에 붙여진 게시물들 홍콩 시위를 폭력 시위를 규정하면서 "폭력시위를 반대한다!"라고 되어있다.
ⓒ 노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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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한국외국어대학교는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를 무단으로 철거했다. 철거 직후 학교 당국은 홍콩 항쟁 관련 대자보 부착에 대한 안내문을 부착했다. 다음은 그 안내문 전문이다.  
 
<홍콩시위 대자보 부착에 대한 학교 안내문>
 
최근 홍콩시위와 관련하여 교내에서 지지와 반대 입장의 많은 논쟁과 갈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지난주에는 이로 인한 외부단체와 중국유학생들 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대자보와 유인물 부착으로 갈등관계는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학교는 가장 우선적으로 학내 구성원들의 안전을 지키고 대학의 기본 기능인 면학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개개인의 목소리도 중요하며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의사표현으로 인해 학내가 혼란에 빠지고 질서가 훼손된다면 학교는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물리적인 충돌로 인한 인명 피해를 생각한다면 학교는 현 상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학교는 현재까지 일련의 상황들을 고려하여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상황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학교 구성원이나 자치 기구가 아닌, 외부단체의 홍콩시위 관련 대자보 교내 부착 및 관련 활동을 제한할 것을 안내해 드립니다. 학교의 허가 없이 활동하여 발생하는 모든 상황의 책임은 해당 단체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국제교류처장 ·학생·인재개발처장
     
철거가 진행되기 일주일 전, 한국외대에는 홍콩항쟁을 지지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지난 8일 홍콩과기대 학생인 차우츠록씨가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을 피하다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11일 그의 추모 집회에서 경찰이 또다시 실탄 사격을 한 뒤였다. 그러나 학교 각지에 붙여진 이 대자보는 찢어지거나 글을 읽을 수 없도록 다른 게시물들이 부착된 상태로 훼손되었다.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이 부착한 이 게시물은 대자보 작성자와 홍콩 항쟁에 대한 모독성 발언이나 시진핑 정부를 옹호하는 발언 일색이었다.
 
13일 대자보 훼손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중국인 유학생들 간의 대치가 있었다. 이후 학교 당국은 중재에 나섰다. 당시 마련된 자리에서 대자보 훼손에 항의하는 학생의 요구는 의사 표현 자유의 보장이었다.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한국외대 학생들'의 오수민(27)씨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들도 대자보를 통해 의사 표현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인 유학생들의 요구는 게시판에 부착된 모든 관련 게시물의 철거였다.
  
그리고 19일 홍콩항쟁 관련 모든 대자보가 철거된다. 대자보 부착에 대한 학교 측의 안내문은 철거 직후 부착된 것이다. 앞선 중재 상황을 떠올려본다면, 학교 측은 중국인 유학생들의 요구만을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철거에 이어 안내문의 내용은 학생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홍콩 시위를 폭력 시위로 왜곡하고 있다.
▲ 중국인 유학생들이 부착한 게시물 홍콩 시위를 폭력 시위로 왜곡하고 있다.
ⓒ 노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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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은 대학의 '면학 분위기 유지' 의무를 대자보 철거의 근거로 들었다. 안내문에 명시된 '무책임한 의사 표현'은 학교 당국이 학생들의 대자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철거 직후 학교 각 건물에 부착된 거의 모든 대자보는 이에 대한 반론을 담고 있다. '면학 분위기 유지'와 더불어 '학생들의 민주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또한 대학의 의무인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측은 이전에 발생한 학생들 간 갈등과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이유로 조처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학교 측의 대자보 철거를 규탄하는 한 대자보는 "대자보를 두고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이견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자를 막는 것이 대학의 의무이지 학생들의 입을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20일 부착된 이 대자보를 작성한 '홍콩 항쟁을 지지하는 한국외대 학생들'의 이건희(23)씨는 "학교 당국자들이 학내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것이 대자보 철거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며 "당국자들 스스로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안내문에는 '외부단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는 그간 대자보 중 상당 부분이 '노동자연대'와 '정의당 학생위원회' 등 곳곳에 대학지부를 둔 조직의 이름으로 부착되었음에 기인한다. 하지만 학교와 독립된 단체라고 하더라도 단체에 소속되어 대자보를 작성한 주체가 한국외대 재학생들임을 생각해보면 '외부단체'에 대한 언급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외대 학생의 자유를 팔아 얻은 차이나 머니가 그리도 달달하더냐"고 질문하고 있다.
▲ 한국외대 건물 게시판에 부착된 익명의 한 대자보 "외대 학생의 자유를 팔아 얻은 차이나 머니가 그리도 달달하더냐"고 질문하고 있다.
ⓒ 노진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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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반발은 21일 학교의 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으로 이어졌다. 한국외대 본관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학교 측이 학생들의 민주적인 의사 표현을 가로막고 있고, 홍콩 시위 지지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 나선 학생들의 요구는 세 가지이다. 대자보 철거에 대한 사과, 대자보 부착 제한 방침에 대한 입장 철회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이다.
 
익명의 한 대자보는 "외대 학생의 자유를 팔아 얻은 차이나머니가 그리도 달달하더냐"고 질문한다. 이는 학교의 특징상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고 그중에서도 중국인 유학생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바, 한국외대 당국이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추론에 근거하고 있다.

태그:##한국외대, ##홍콩항쟁, ##대자보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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