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회째를 맞는 KBO리그 2차 드래프트는 각 구단에게 전력 보강의 장을 열어주고 선수들에게는 새 팀에서 재기 혹은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적지 않다. 하지만 2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2차 드래프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구단도 있다. 2차 드래프트가 열릴 때마다 매번 많은 선수들을 내줘야 하는 두산 베어스다.

두산은 흔히 '화수분 야구'로 불리는 팀이다. 두산은 매년 주력 선수들이 FA 등으로 팀을 떠나지만 두꺼운 선수층을 앞세워 강한 전력을 유지하며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따라서 다른 구단에서는 두산 출신 선수들을 합법적으로(?) 영입할 수 있는 2차 드래프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실제로 두산은 지난 4번의 2차 드래프트에서 무려 19명의 선수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켰다.

올해도 두산은 한 구단에서 데려갈 수 있는 상한선인 4명의 선수가 팀을 떠났다. 특히 한화 이글스는 2, 3라운드에서 나란히 두산의 2011년 입단 동기인 외야수 정진호와 좌완 이현호를 자명하며 '믿고 쓰는 곰표'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과연 두산에서 주전으로 확실히 자리 잡지 못했던 두 선수는 한화에서 선수 생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주전 같은 백업' 정진호, 한화에선 풀타임 주전도 꿈 아니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 38순위로 두산에 입단한 정진호는 백업 외야수로 활약하며 2년 동안 1군에서 93경기에 출전했다. 2012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입대한 정진호는 2013년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서 MVP에 선정됐고 2014년엔 83경기에서 타율 .341 3홈런 64타점을 기록하며 남부리그 타점왕에 선정됐다. 상무에서의 활약이 이어지자 두산 구단과 팬들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유망주 정진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두산에 합류한 정진호는 2015년 77경기에서 타율 .234 4홈런18타점 37득점 6도루를 기록했고 2016년엔 31경기 밖에 나가지 못했음에도 타율 .375 3타점 9득점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 때부터 정진호는 많은 야구팬들로부터 '외야가 약한 팀에 간다면 충분히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주전으로 활약하진 못했지만 정진호가 맞은 첫 번째 전성기는 두산의 4번째 외야수로 활약했던 2017, 2018년이었다. 정진호는 2017년 역대 최소 이닝 사이클링히트를 비롯해 97경기에서 타율 .283 5홈런 31타점 43득점을 기록하며 데뷔 첫 풀타임 1군 선수로 활약했다. 정진호는 작년 시즌에도 조수행과 외야 한 자리를 놓고 주전 경쟁을 벌이며 111경기에서 타율 .301 2홈런 37타점 53득점 8도루로 최고의 시즌을 또 한 번 경신했다.

하지만 올 시즌 군복무를 마친 '잠실 아이돌' 정수빈이 복귀하면서 두산의 백업 외야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정진호는 66경기에서 타율 .208 1홈런 3타점 13득점 5도루로 부진했다. 두산이 곧 김인태와 조수행,김대한 등으로 외야진이 정리되는 만큼 30대 선수인 정진호의 활용도는 점점 낮아질 수 밖에 없고 결국 정진호는 20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비록 두산에서는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한화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현재 한화 외야수들 중 정진호보다 공수주에서 확실히 앞선다고 할 수 있는 선수는 외국인 선수 제라드 호잉 뿐이다. 이용규는 올해 공백을 무시할 수 없고 이성열과 최진행은 수비, 신예 장진혁은 경험에서 정진호에 미치지 못한다. 정진호에게는 프로 10년 차를 맞는 2020시즌이 데뷔 첫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20대 마지막 시즌 맞는 이현호, 유망주 껍질 벗을 수 있을까

제물포고 시절 광주일고의 유창식 다음 가는 전국구 좌완이었던 이현호는 2011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두산에 지명됐다. 하지만 고교야구를 주름잡던 '특급좌완'도 프로에서는 한낱 경험 없는 신인에 불과했고 두산에서는 2012 시즌이 끝나고 이현호를 상무에 입대시켰다(그렇게 프로 입단 동기였던 정진호와 이현호는 군대 동기로 또 한 번 남다른 인연을 이어갔다).

상무에서 구위를 가다듬은 이현호는 2015년 전혀 다른 투수로 변모해 돌아왔다. 당시 두산은 FA로 영입한 장원준과 유희관, 이현승의 활약으로 좌완 투수가 포화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현호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으로 활약하며 49경기에서 86이닝 동안 6승 1패 2홀드 평균자책점 4.19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특히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 등판하면서 두산 마운드의 미래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현호는 2019 시즌이 끝날 때까지 여전히 통산 승수가 8승에 머물러 있다. 2015년 6승을 따낸 후 최근 4년 동안 단 2승 밖에 추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이현호는 때로는 선발로, 때로는 불펜으로 두산 마운드에 구멍이 생길 때마다 빈 자리를 메우는 역할을 잘 소화했다. 하지만 함덕주나 이영하 같은 후배들이 팀의 기둥으로 성장하는 사이 이현호의 성장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결국 두산 구단은 이현호에 대한 기대를 접기로 결정했고 이현호는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3라운드로 지명되면서 또 한 번 '정진호와 함께' 팀을 옮기게 됐다. 물론 타의에 의해 팀을 옮기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는 거의 없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잠실(1군)보다는 이천(2군) 생활이 더 익숙했던 이현호에게는 새로운 변화와 경쟁이 필요한 시기였다. 

한화는 아직 FA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마무리 정우람을 비롯해 김범수, 박주홍, 송창현, 임준섭, 김경태 등 이현호와 비슷한 역할을 할 좌완 투수가 많다. 어쩌면 두산 시절보다 경쟁자가 더 많아졌다고 할 수 있다. 내년이면 20대의 마지막 시즌을 맞는 이현호는 이제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니다. 매년 가능성만 보였던 이현호는 독수리 유니폼을 입는 내년 시즌 풀타임 1군 투수로 도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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