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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둠바스(Dombas) 마을의 도브라공립도서관 사서, 싱엔나(Signe) 씨.
 노르웨이 둠바스(Dombas) 마을의 도브라공립도서관 사서, 싱엔나(Signe) 씨.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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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도착일에 저희가 향할 서쪽 피요르드 해안 고산지역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오슬로에서 북서쪽으로 갈수록 산정에는 이틀 전에 내린 눈이 흰 모자를 쓴 모습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산 아래에는 밀을 추수하고 건초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긴 겨울의 초입임을 알겠습니다.

자작나무잎이 좀 더 노랗게 된 마을에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운 이 지역에서 그래도 사람들이 눈에 띄는 둠바스 Dombås 마을입니다.

저희 부부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바로 목표로 한 곳으로 향했습니다. 잠시 발길을 멈춘 것은 참새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열매를 탐하는 그 모습에 끌려... 제가 문을 밀고 들어간 곳은 '도브라공립도서관(도브라 포리크비브리오테크 Dovre folkebibliotek).
 
'도브라공립도서관(도브라 포리크비브리오테크 Dovre folkebibliotek)' 외경
 "도브라공립도서관(도브라 포리크비브리오테크 Dovre folkebibliotek)" 외경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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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소파들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입니다. 이곳은 처음이지요. 제가 이 도서관을 이용해도 될까요?"

정면에 앉아서 책의 표지를 싸고 계신 단 한 분의 사서께 물었습니다.

"왜 안되겠어요? 얼마든지... 한국이라면 필경 남한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아주 먼 곳이지요. 그곳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이요. 만약 그곳에 간다면 저는 아는 사람이 있는 셈이군요. 이제..."

"그렇습니다. 저는 안수입니다만..."
"저는 싱엔나(Signe)입니다. 공무원 사서입니다."

"이 도서관은 주로 누가 이용하나요?"
"보다시피 작은 도서관이에요. 이 지역민 모두를 위한..."
 
도브라공립도서관의 내부
 도브라공립도서관의 내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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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월요일인 오늘은 10시부터 7시까지, 화요일인 내일은 3시까지이고, 수요일과 목요일은 휴무입니다. 금요일은 3시까지이고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닫고요."

"소장도서들은 장르 불문입니까?"
"네, 고루 소장하고 있어요."

"음악이나 영화자료도 있나요? 디지털 자료요?"
"영화는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 CD는 없어요."

"저 디지털 자료는 무엇이지요?"
"아, 그것은 오디오북입니다."

"최대 1인당 몇 권이나 빌릴 수 있나요?"
"기한은 1개월, 한 번에 빌릴 수 있는 권수의 제한은 없습니다."

"그럼 한 명이 1백 권을 빌릴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보통은 몇 권씩을 대출해가나요?"
"1~2권이요. 하지만 어린이의 경우는 여러 권을 빌려 가는 경우도 있답니다."
 
도서관 내부 곳곳에 편히 독서할 수 있는 편한 의자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도서관 내부 곳곳에 편히 독서할 수 있는 편한 의자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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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이 도서관 곳곳의 모습들을 사진에 담아도 될까요? 혹시 한국 작가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왜 안 되겠어요. 남한에서 오셨다니까 찾아볼게요. 한국인 소설가의 소설 한 권 있어요."

그녀는 소설 코너에서 등이 아닌 표지가 전면으로 드러나게 놓인 한강 작가의 작품을 바로 찾아주었습니다. 맨부커상 수상 소설가 한강은 올 4월 노르웨이의 공공예술단체인 '미래도서관(Future Library)'으로부터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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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엔나 씨는 한국 작가의 도서가 있는지를 묻자, 금방 한강 작가의 소설을 찾아 주었습니다.
 싱엔나 씨는 한국 작가의 도서가 있는지를 묻자, 금방 한강 작가의 소설을 찾아 주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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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도서관'은 2014년부터 100년간 매년 작가 한 명의 미공개 작품을 받아 2114년에 출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한강 작가는 다섯 번째 참여 작가로 지난 5월에 직접 오슬로를 방문해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를 전달했습니다. 작가가 공개한 제목 외에는 모든 것이 비밀에 부친 채 봉인돼 오슬로 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95년 뒤에 출판됩니다.​

한강은 원고전달식에서 "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100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합니다. 거기 아직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이 아닌, 100년 뒤를 생각하는 사람들. 한강 작가의 말대로 미래가 희망일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노르웨이의 가을 햇살은 누구도 거부하지 않듯, 그녀는 불쑥 모습을 드러낸 저희 부부에게 시종 햇살 같은 미소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입구에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입구에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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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녀의 미소 같은 100년 뒤의 미래를 상상하며 희망으로 믿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친절에 감사해요. 당신의 말처럼 이제 당신은 한국에 지인을 두신 겁니다. 한국에 오실 기회가 있다면 연락 주세요."

저의 연락처를 받아던 그녀는 노랗게 물던 자작나무 잎의 표정이 되었습니다. 작은 도서관에 대출권수 제한을 두지 않는 그 넉넉한 마음일 수 있는 것은 결코 수십 권을 한 번에 대출해 가지 않는 동네분들의 이웃 배려의 상식을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노르웨이, #공립도서관, #한강, #미래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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