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 시즌 NBA의 순위표를 보면 마치 2000년대 후반을 보는 듯하다. 케빈 가넷과 폴 피어스, 레이 알렌으로 구성된 '빅3'와 코비 브라이언트라는 전설적인 스코어러가 활약하던 2000년대 후반처럼 보스턴 셀틱스와 LA 레이커스가 나란히 양대 컨퍼런스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이라는 불멸의 라이벌이 경쟁하던 1980년대처럼 NBA 팬들을 양분했던 두 강 팀이 다시 순위표 맨 꼭대기에 서 있다.

사실 보스턴의 동부 컨퍼런스 1위 질주는 그리 새삼스러울 게 없다. 비록 이번 시즌을 앞두고 카이리 어빙(브루클린 네츠)과 알 호포드(필라델피아 76ers)가 팀을 떠났지만 보스턴은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 부임 후 꾸준히 동부 컨퍼런스의 상위권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도 보스턴은 켐바 워커의 가세와 제이슨 테이텀, 제일런 브라운 등 영건들의 성장으로 동부 컨퍼런스의 정상권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던 레이커스의 약진은 농구팬들의 예상범위를 뛰어넘고 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결성된 르브론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 콤비의 활약도 놀랍지만 현재 레이커스의 질주를 이끌고 있는 숨은 주역은 따로 있다. 많지 않은 출전 시간에도 뛰어난 에너지 레벨로 레이커스의 분위기를 끌어 올려주는 '식스맨 3인방'의 대활약은 이번 시즌 레이커스의 선전에 엄청난 힘이 되고 있다. 

운동능력-외곽슛-허슬플레이 갖춘 카루소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한 레이커스는 팀이 침체에 빠진 사이 많은 유망주들을 끌어 모았다. 그 중에는 줄리어스 랜들(뉴욕 닉스)과 디안젤로 러셀(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브랜든 잉그램, 론조 볼(이상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처럼 드래프트 상위 지명 출신 선수들이 많다. 물론 조던 클락슨, 래리 낸스 주니어(이상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카일 쿠즈마처럼 하위 지명 선수의 깜짝 활약도 있었다.

텍사스 A&M대의 알렉스 카루소는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 어떤 팀의 지명도 받지 못했다. 포인트가드와 슈팅가드를 오가는 듀얼 가드로는 비교적 좋은 신장(196cm)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근육질과는 거리가 먼 깡 마른 몸으로는 도저히 NBA에서 살아남을 선수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017년 10월 힘들게 NBA에 데뷔한 카루소는 세 시즌째 명문팀 레이커스에서 생존하고 있다. 특히 론조 볼이 47경기 만에 부상으로 이탈했던 지난 시즌 25경기에 출전해 9.2득점 2.7리바운드 3.1어시스트 3점슛 성공률 48%를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카루소는 이 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로스터 절반이 팀을 떠나며 분위기가 어수선했던 지난 여름 레이커스와 2년 55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카루소는 레이커스에 가드 자원이 많아지면서 출전 시간이 지난 시즌보다 다소 줄었지만 코트에 들어 올 때마다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플레이로 관중들의 많은 박수와 환호를 받고 있다. 특히 보기와 달리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지고 있어 속공 상황이나 돌파 과정에서 멋진 덩크를 성공시키곤 한다. 라존 론도의 부상 복귀로 레이커스의 가드진은 더욱 탄탄해졌지만 코트에서 분위기를 살려 주는 카루소의 입지에는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주전 가드 브래들리 부상 공백 완벽히 메우는 KCP

좋은 운동능력과 뛰어난 외곽슛, 여기에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갖춘 스윙맨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이하 KCP)는 안드레 드러먼드와 함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부활시킬 주역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리바운드 머신' 드러먼드가 점차 올스타 센터로 성장한 것과 달리 KCP의 성장 속도는 모터시티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경기 도중에도 들쭉날쭉하는 슈팅의 기복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네 시즌을 보낸 KCP는 2017년 여름 디트로이트의 5년 8000만 달러 장기 계약 제의를 뿌리치고 레이커스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 2017-2018 시즌 38.3%의 3점슛 성공률로 13.4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인정 받은 KCP는 레이커스와 다시 1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또 다시 슈팅에서 심한 기복을 보이며 주전 자리를 조쉬 하트(뉴올리언스)에게 내주고 식스맨으로 내려 갔다.

하지만 레이커스는 지난 여름 KCP에게 2년 1600만 달러 계약을 안겨 줬다. 수비와 활동량에서 강점을 보이는 만큼 쓰임새가 많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KCP는 이번 시즌 주로 식스맨으로 준수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3점슛 성공률은 여전히 33.3%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고비마다 결정적인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KCP는 주전가드 에이브리 브래들리가 다리 미세골절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후 주전으로 나서며 브래들리의 공백을 지우고 있다. 특히 20일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는 33분 동안 코트를 누비며 13득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4번 시도한 3점슛은 3번이나 적중시켰고 경기 종료 56초를 남기고 109-107의 아슬아슬한 리드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3점슛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했다.

'철치부심' 하워드, 진정으로 달라진 부분은 경기에 임하는 자세

드와이트 하워드는 전성기 시절 3년 연속 올해의 수비수상 수상과 8년 연속 올스타 선정에 빛나는 동부 컨퍼런스 최고의 빅맨이었다. 특히 슈퍼맨 망토를 걸치고 림을 부술 것처럼 강력한 덩크를 성공시켰던 2008년 올스타 덩크 콘테스트는 슈퍼스타 하워드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하워드는 샤킬 오닐 이후 쓸쓸히 마감된 센터의 시대에서 묵묵히 정통 센터의 자존심을 지키던 선수였다.

하지만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올랜도를 떠나 레이커스로 이적한 하워드의 기량은 빠르게 식었다. 물론 올랜도 시절 이후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기도 했고 하워드의 플레이스타일이 현대농구의 대세가 된 '스몰 라인업'에 어울리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NBA를 호령하던 하워드는 올랜도를 떠난 후 8년 동안 레이커스와 휴스턴 로키츠, 애틀랜타 호크스, 샬럿 호네츠, 워싱턴 위저즈 등을 떠도는 저니맨 신세로 전락했다.

그렇게 비운의 스타로 남는 듯했던 하워드는 새로 영입한 드마커스 커즌스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센터 자리에 구멍이 뚫린  레이커스의 부름을 받았다. 레이커스 복귀가 확정된 하워드는 비 시즌 동안 무려 11kg을 감량하고 올랜도 시절의 날렵한 근육질 몸매를 되찾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하워드가 과거에 비해 진정으로 달라진 것은 근육량이나 몸무게 따위가 아닌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이었다.

올랜도 시절 팀 공격의 1옵션이었던 하워드는 이번 시즌 레이커스에서 식스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하워드는 14경기에서 6.7득점 7.6라바운드 1.6블록슛으로 백업센터로서 역할을 완벽히 수행 중이다. 특히 동료들의 패스를 받아 손쉽게 득점을 올리는 하워드의 필드골 성공률은 무려 75%에 달한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받아들이고 리바운드와 스크린, 골밑수비 등 궂은 일에 전념하는 하워드는 현재 전성기 시절 만큼 환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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