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C조 예선 경기를 하루 앞둔 5일 C조 각 팀 감독들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가운데 김경문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9.11.5

김경문 감독 ⓒ 연합뉴스

 
대망의 프리미어12 결승전 만을 남겨둔 한국야구가 2020 도쿄올림픽 본선출전과 세대교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며 희망을 밝혔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이미 지난 15일 멕시코와의 프리미어12 슈퍼라운드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초대 대회 우승에 이어 2회 연속 결승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이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티켓을 놓고 다투는 대만, 호주보다 최종순위에서 앞서며 도쿄올림픽 본선행도 확정지었다. 지난 16일 슈퍼라운드 최종전에서는 일본에 접전 끝에 8-10으로 패했지만, 17일 결승전에서 리턴매치를 통하여 설욕과 대회 2연패를 노린다.

아직 결승전이 남아있지만 이미 한국야구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충분한 성과를 올렸다. 한국야구는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을 비롯하여 2009 WBC 준우승, 2015 프리미어12 초대 우승 등으로 국제무대에서 연이어 호성적을 거두며 승승장구했지만 최근 몇 년간은 부침을 겪어야했다. 홈에서 열린 2017 WBC에서 1라운드 예선탈락의 수모를 겪었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따고도 병역혜택과 선수선발의 공정성 논란에 휘말리며 선동열 감독이 자진사임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KBO리그의 사건사고와 인기 하락으로 야구팬들이 한국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갈수록 싸늘해졌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한국 야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은 바로 '베이징올림픽의 영웅' 김경문 감독이었다. 2018년 NC 다이노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야인을 남아있던 김감독은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11년 만에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프리미어12 개막 직전까지 김경문호를 둘러싼 상황은 좋지 않았다. 10년 이상 한국야구를 지탱해온 베이징올림픽 세대가 노쇠하면서 세대교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김경문 감독은 일부를 제외하면 국제 무대에서 검증이 덜 된 젊은 선수들로 대표팀 감독 2기의 첫 대회인 프리미어12에 나서야했다. 도쿄올림픽 티켓이 걸려있는 아시아선수권에서 대학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 2진이 4위라는 졸전에 그치며 졸지에 김경문호가 프리미어12에서 호주나 대만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려야한다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땅에 떨어진 태극마크의 권위와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급선무였다.

김경문호는 새 판짜기에 나섰다. 베이징 세대의 막내격이었던 김현수와 김광현은 어느덧 대표팀 투타의 최선참급으로 올라섰다. 양현종, 박병호, 양의지, 김하성, 조상우 등 설명이 필요없는 포지션 리그 최고의 선수들이 합류했고, 여기에 이정후, 강백호, 고우석 등 최근 KBO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젊은 피들이 가세하면서 자연스러운 신구조화가 이뤄졌다. 이전 대회처럼 선수선발을 둘러싼 불필요한 잡음이 거의 없었고 젊고 활기찬 팀으로 바뀌면서 대표팀 분위기도 밝아졌다.

대표팀은 고척돔에서 열린 예선 1라운드를 3연승으로 가볍게 통과했다.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벌어진 슈퍼라운드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 미국을 압도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순조로운 항해에 다소 자만한 탓일까. 뜻밖의 암초는 대만전에서 나왔다. 한국은 한 수아래로 여기던 대만에게 선발 김광현의 난조와 타선의 침묵속에 의외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0-7로 완패했다. 대만을 상대로는 지난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이후 국제전 2연패이자, 프로 정예멤버가 구성된 이후로는 최다점수차 패배였다. 대회 결승행과 올림픽 티켓에 빨간 불이 켜졌고, 대표팀을 향한 비난 여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김경문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결과적으로 대만전 패배는 다소 느슨해져있던 선수들의 동기부여와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전화위복이 됐다. 미국이 대만을 역전승으로 잡아주는 행운도 따랐다. 한국은 최대 고비였던 멕시코전에서 한때 2-0으로 끌려갔으나 중반부터 타선이 힘을 내기 시작하며 7-3으로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행과 올림픽 티켓을 동시에 확정지었다.

사상 초유의 2연전으로 치러지게 된 WBSC 프리미어12 야구 한일전 첫 경기가 열린 16일 일본 도쿄돔. 이미 승패와 무관하게 결승진출이 확정된 상황에서 두 팀이 슈퍼라운드 첫 대결을 어떤 자세도 임할까 관심이 모아졌다. 양팀 모두 진짜 승부인 결승전을 대비하여 베스트 전력을 다하여 임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기에 조금은 싱거운 경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

기우였다. 승리한 일본이나 패배한 한국 모두 결승까지 올라온 팀들의 이름값에 걸맞는 멋진 경기내용을 보여줬다 특히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로 예상된 한국이 일본에 초반 크게 뒤지고도 뒷심을 발휘하며 마지막까지 대접전을 펼치는 모습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에 3회말에만 대거 6점을 내주며 1-7까지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이라면 일찍 경기를 포기하고 다음날 결승전을 대비하자는 마음이 들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곧바로 이어진 4회초에만 6안타 5득점을 뽑아내며 일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한국은 일본이 6-9로 달아낸 7회에도 강백호의 적시타로 8-9로 점수차를 좁히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게 했다. 이날 처음 선발 출전에도 3타점을 기록하는 맹타를 휘두른 강백호, 백업멤버의 설움을 날려버리듯이 고비마다 한 방으로 분위기를 살린 황재균과 박세혁, 김상수의 맹활약은 팀의 사기를 뜨겁게 끌어올렸다. 4년전 초대 대회 준결승에서 9회에 3점차 리드를 뒤집는 역전드라마를 만들어냈던 '도쿄대첩'처럼 일본에게 '한국은 끝까지 방심할수 없는 팀'이라는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 큰 의미가 있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결승전을 대비하여 주축 투수들을 아끼기는 했지만 이승호-고우석 등이 일본전의 압박감을 이기지못하고 대량실점을 허용한 장면, 5회 절호의 역전찬스에서 이정후의 아쉬운 주루사로 다시 일본에 경기흐름을 넘겨준 장면 등은 확실히 경험부족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승패의 부담이 없는 경기였기에 가능한 실험이었고, 성장중인 우리의 젊은 선수들에게는 꼭 필요한 값진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1패와 맞바꾼 것이 그리 아깝지만은 않은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고 할 만하다.

김경문호는 이제 홀가분하게 대회 여정의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야구팬들은 끝까지 후회없이 모든 것을 쏟아붓는 명승부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김경문호가 전날 경기에서 보여준 투지와 열정을 잊지않는다면 내년 도쿄올림픽까지 한국야구의 밝은 미래를 기약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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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호 야구한일전 프리미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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